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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Sep 03. 2016

강정천(江汀川)의 아침, 범섬아 안녕!

흐르는 개천에서 인생을 보다




기억을 되짚어


'강정(江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으면 누군가에게는 오랜 세월 아름다운 공동체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힘 앞에 저항 할 수 없는 아픔으로 기억될 것이다. 난 사실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한창 강정 해군기지 문제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현안이었지만 그저 바다 건너 먼 곳의 일일 뿐이었다. 뉴스 볼 때만 잠깐 '아 저 사람들은 힘들겠구나' 순간의 감정만 스쳐갔을 뿐 이내 잊혔다. 





내가 처음으로 강정천 그 맑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던 때는 2009년 10월 가족여행으로 강정천 옆에 자리 잡은 리조트를 방문했을 때다. 이미 이때부터 해군기지 문제로 정부와 주민들의 갈등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근처에 있었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이렇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주변의 일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본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6년 8월, 7년 만에 같은 장소로 다시 휴가를 오게 되었고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에 어안이 벙벙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내 기억 속 그 아름답던 강정천 앞바다, 확 트인 풍경을 생각하며 왔는데 거대한 방조제와 군함 그리고 잠수함이 뇌리 스치는 예전의 풍경을 지워버렸다. 





흐르는 개천에서 인생을 보다


2009년 강정천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맑은 하천이 흘러 대양(大洋)과 만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고 심지어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환상적인 풍경이다. 


강정천은 바로 옆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쾌활하고 힘차게 흐른다. 


바로 앞 제주 앞바다 그리고 저 넓은 대양(大洋)을 만나기까지 불과 몇 미터, 사계절 힘차게 흐르는 1 급수 맑은 천(川)이다. 


내가 서있는 자리의 오른쪽은 물이 힘차게 흐르고 내 왼쪽은 물이 고여있다. 분명 방금까지는 같은 1 급수 맑은 물이었을 텐데 흐르는 맑은 물과 고여 썩은 물로 운명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 봐라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나? 고여있으면 이렇게 썩잖니' 흐르는 개천에서도 어머니는 인생을 보신다.  







'강정천에서 바라본 범섬'

그 흔한 제목, 그 특별한 제목


오전 7시 반 강정천의 아침햇살이 참 따사롭다. 한 여름인데 물은 시원하겠지? 발을 한번 담가볼까? 하고 발을 담그는 순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한 느낌, 얼음판 위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다. 차가운 물에 세수하니 뭔가 진짜 계곡에 온 그런 느낌이다. 



우리는 평생 살면서 한번 온 곳을 다시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상에 남는 곳은 몇 되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게 될 거라는 걸 7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지만 그 기다림 끝에 다시 이 그림이 내 눈에 들어오니 무척 감격스럽다. 무엇인가를 이렇게 멍하니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범섬아 안녕"



'강정천에서 바라본 범섬'

이 제목으로 많은 그림이 그려졌고 많은 사진이 찍혔을 거다. 내가 이 자리에 서서 나만의 사진을 찍듯이, 그 누군가도 자기만의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셔터를 누르는 그 흔적이 느껴진다. 



예전에 왔을 때는 사진 오른편 큰 바위더미만 덩그러니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큰 나무들이 즐비해있었다. 바로 옆 기지 건설로 보안상 시야 확보를 위해 다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 저 바위를 얹어 놓은 것 같다. 





한라산에서 제주바다까지



한라산에서부터 부지런히 내려온 시냇물이 

제주바다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이다. 

강정천 끝자락에서 만나는 제주의 이 푸른 바다

기억하고 싶다. 잊고 싶지 않다. 영원히!



강정 해안은 생물권보전지역
(유네스코, 2002년 12월) 

생물권보전지역
(제주특별자치도, 2002년 12월)

천연기념물 442호(문화재청, 2004년 12월)

천연기념물 421호(2000년 7월)

생태계보전지역(환경부, 2002년 11월)

해양보호구역
(해양수산부, 2002년 11월)으로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전 세계 유일하게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을 달성

특히 강정 앞바다에 연산호 군락이 존재

05년12월~06년 12월까지 멸종위기종으로 선정된 연산호들이 발견 





그리움이 될 강정천


세수도 하고 물에 발도 담가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멍하니 범섬도 바라보다 보니 

한 40여분 지났나 따스한 햇살은 

서서히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짧은 40분의 시간이었지만 

또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비경을 다시 한번 두 눈에 

그리고 마음에 고이 간직한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 만은 않았다. 

그리움이 될 강정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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