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의 미도리 Sep 09. 2021

사는 게 너무 창피하다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지 못했고, 사람으로서 온전한 자격을 가지지 못했다.

 내 몸을 안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해할 수 있을지 궁리하곤 했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더위 속에서 얼음물을 꿈꾸지 못하고 늘 그 자리에서 버티며, 책임감과 포기 속에서 자신을 저울질했다.

 나는 늘 나를 실패작이라고 여겼다. 결국 어떠한 곳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여리디 여린 생각들로 가득 찬 유리병 속에 몸을 가둔 채 거처 없이 떠도는.

사는 게 너무 창피하다.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나를 검은빛의 초원으로 내몰았다. 검은 하늘을 품은 끝없는 초원에서 지평선을 바라볼 때면,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히 살아가야 하는 삶의 지독함에 숨이 막혔다. 숨이 차올라도, 주어진 호흡의 의무를 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초원을 걸어가야 했다.

 도대체 나는 존재의 자격을 가진 인간인 것인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에게도 삶의 의미가 부여되는 것인지. 결국 나는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낮에는 눈이 따가운 태양을 바라보고, 밤에는 숨죽이고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 달에게 말을 건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과 동화되어 자연스레 살고 싶은 욕망에 나의 이기심이 발동한다. 나무의 꿋꿋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이를 본받고자 했고, 낮에는 란한 파도를 내비치지만 밤에는 검은 이빨을 드러내는 바다에 투영된 인간의 모습을 보게  후로 바다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본래 현실에서 인간적인 것이란 진실을 뒤로하고 미소에 자신을 감추고 시시때때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모습을 바꾸며 돈을 버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후로, 나는  이상 인간을 닮은 바다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호흡이 의무가 아닌 의지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나의 의지로 숨을 쉬고자 하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사는 게 창피하지 않고, 내일 입을 옷을 생각하고, 입이 텁텁한 날이면 자연스레 엄마의 잔치국수가 생각나며 입맛이 도는, 그런 보통의 날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