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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y 27. 2021

낡고 오래된 골목에 대한 그리움


"참, 다이나믹한 동네야."

상무지구에서 1년 가량 살다가 계림동으로 이사 온 지 반 년 정도가 되던 어느 날, 새로 이사온 곳이 어떠냐는 지인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이사올 때는 마사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단지 상무지구에 비하면 정말 조용한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첫 주말을 보내고 나니 이 동네의 평일과 주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실감하게 됐다. 마사회에 몰려드는 온갖 인간군상들과 그로 인한 번잡함, 소란스러움은 과연 이 동네가 평일에는 개미 한 마리 없을 것 같던 그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계림동이 좋았던 것은 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들과 어딘가 비슷한 그 분위기 때문이었다. 디지털 카메라보다 필름 카메라를, 스마트워치보다 기계식 아날로그 시계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낡고 오래된 계림동의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수동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대인시장과 계림동의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나는 고대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든 아이의 심정이 되었다.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나의 아버지는 부모님께 농사지을 밭 한 뙈기 물려받지 못하셨다. 어머니와 결혼하시고 나와 동생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평생을 살아온 영광을 떠나서 목포로 이주했다. 가뜩이나 작은 도시였던 목포에서, 가난한 우리 가족은 열 번이 넘게 이사를 다녔다. 몸으로 일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 아버지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어머니 덕분에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는 처음으로 당신 명의의 집을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부모님이 느끼셨을 비애가 어떠셨을지 나로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목포에서 살았던 그 오래된 골목과 공터, 거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만큼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대인시장과 계림동 골목길들이 그 그립던 기억들을 환기시켰고 그래서 나는 이 마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의 모습이 확 달라지게 되었다. 재개발의 바람이 불어왔던 것이다. 오랜 공사의 소음과 날리던 먼지들 끝에 높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 덕에 좁디좁던 도로는 넓어졌고, 전에 없던 온갖 생활 편의시설들이 생겨났다. 전보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게 된 동네의 모습을 누가 싫어할까. 다만 그리운 그 시절이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찌하지 못하겠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과거의 추억을 미화해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이 이제는 사무치게 이해된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것은 어제와 그제, 그끄저께와 그보다 더 먼 과거의 나날들이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최대한 오래 버텨줬으면, 그래서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위로해 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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