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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r 15. 2021

막장 드라마와 내 눈의 눈가리개

나는 얼마나 편협한 인간인가.

나는 늘 궁금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누가 보는지.

<아내의 유혹>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막장 드라마'라는 멸칭이 붙은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에는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사연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이른바 '막장'이라고 불릴 만한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나 연출가는 물론이거니와 그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도 나에게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외계인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늘 막장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나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이 그저 돈과 시청률에 목을 매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자주 다니던 커뮤니티에서 김순옥 작가의 인터뷰 캡처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 제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그 분들에게 삶의 낙이 된다면 제겐 더없는 보람이죠. 위대하고 훌륭한 작품을 쓰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몰론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에게 그저 재밌고 흥미있는 이야기로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작가의 말은 나의 편견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에서 양면성을 갖지 않은 게 얼마나 될까. 입에 쓴 약은 몸에 좋고 귀에 역한 말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 욕설마저도 감정을 정화하는 나름의 순기능이 있지 않나. 다만 나의 취향과 잘 맞거나 그렇지 않거나 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와 다른 76억 명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주마에게는 뒤나 옆에서 다른 말이 달려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 눈 옆에 차안대라는 이름의 눈가리개를 단다. 나는 가끔 사람도 이와 같은 차안대를 달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자신의 시각이라는 차안대를 말이다. 그 차안대는 자신의 주관이나 가치관이라는 긍정적인 기능도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재단해 버리는 부정적인 기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편협한 우리의 차안대를 좀 더 옆으로 넓혀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김순옥 작가의 인터뷰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나의 차안대는 얼마나 좁고 답답했던 것인가를. 하루하루 늘 치열하게 성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차안대가 내 눈을 완전히 막아버릴지도 모른다. 좀 더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상투적이지만 자주 망각하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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