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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r 10. 2021

죽음을 기억하라

"살면서 올해만큼 몸이 아픈 적이 없었어. 나는 암만 해도 오래 못 살 것 같다."

지난 설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께서는 30대 중반에 당뇨에 걸리신 이후 한해 한해 늙고 쇠약해지셨다. 하지만 생전 당신의 입으로 저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었다. 나는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부모님이 영원히 사실 리는 없고 언젠가는 영원히 이별할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굳이 죽음을 떠올리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애써 모른 척하였던 것이다.






콩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7년 동안 길렀다. 지금은 그 녀석을 다른 사람이 기르고 있다. 주위에서 간혹 고양이를 다시 길러보지 않겠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콩이와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르지만 나는 고개를 모로 저었다. 콩이를 기르면서도 한 번씩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먼저 죽으면 내가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보다 훨씬 그 친구를 잘 돌봐줄 사람에게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이 나에게도, 콩이에게도 좋은 선택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말이다.






어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다가 불현듯 마음에 꽂힌 문장이 있었다. 


죽음을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 영역에서 몰아내면 훗날 때가 되어 죽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더한층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게 된다.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고, 현자는 평생을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 움베르토 에코, <죽음은 어디에 있을까>


흔히들 '삶'의 반의어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미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에코의 말처럼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마냥 죽음을 두려워만 하고 회피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언젠가 나 혹은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때 어떤 모습으로 그것을 맞을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바르텔 브륀 1세, <제인-로이즈 티시에르의 초상화 뒤편에 그린 바니타스 정물>


사람은 특히 젊을수록 자신이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경향이 있다. 죽음은 생각만으로도 슬프고 절망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잊고 사는 것이 개인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하게라도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것이 나의 삶을 더 충실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 내가 죽은 이후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생전에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겠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것이 나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고 내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과 사랑을 늘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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