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잡문

낡고 오래된 골목에 대한 그리움

by 구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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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이나믹한 동네야."

상무지구에서 1년 가량 살다가 계림동으로 이사 온 지 반 년 정도가 되던 어느 날, 새로 이사온 곳이 어떠냐는 지인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이사올 때는 마사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단지 상무지구에 비하면 정말 조용한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첫 주말을 보내고 나니 이 동네의 평일과 주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실감하게 됐다. 마사회에 몰려드는 온갖 인간군상들과 그로 인한 번잡함, 소란스러움은 과연 이 동네가 평일에는 개미 한 마리 없을 것 같던 그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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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계림동이 좋았던 것은 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들과 어딘가 비슷한 그 분위기 때문이었다. 디지털 카메라보다 필름 카메라를, 스마트워치보다 기계식 아날로그 시계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낡고 오래된 계림동의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수동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대인시장과 계림동의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나는 고대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든 아이의 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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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나의 아버지는 부모님께 농사지을 밭 한 뙈기 물려받지 못하셨다. 어머니와 결혼하시고 나와 동생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평생을 살아온 영광을 떠나서 목포로 이주했다. 가뜩이나 작은 도시였던 목포에서, 가난한 우리 가족은 열 번이 넘게 이사를 다녔다. 몸으로 일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 아버지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어머니 덕분에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는 처음으로 당신 명의의 집을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부모님이 느끼셨을 비애가 어떠셨을지 나로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목포에서 살았던 그 오래된 골목과 공터, 거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만큼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대인시장과 계림동 골목길들이 그 그립던 기억들을 환기시켰고 그래서 나는 이 마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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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동네의 모습이 확 달라지게 되었다. 재개발의 바람이 불어왔던 것이다. 오랜 공사의 소음과 날리던 먼지들 끝에 높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 덕에 좁디좁던 도로는 넓어졌고, 전에 없던 온갖 생활 편의시설들이 생겨났다. 전보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게 된 동네의 모습을 누가 싫어할까. 다만 그리운 그 시절이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찌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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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과거의 추억을 미화해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이 이제는 사무치게 이해된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것은 어제와 그제, 그끄저께와 그보다 더 먼 과거의 나날들이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최대한 오래 버텨줬으면, 그래서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위로해 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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