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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Jul 02. 2023

커피 단상

커피를 마시다 문득 떠오른 기억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소개팅을 하게 됐다.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커피 3스푼, 크림 3스푼, 설탕 3스푼의 소위 다방 커피만 알고 있던 나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사실 카푸치노가 어떤 커피인지도 잘 몰랐지만 이름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고 느꼈다. 부드러운 거품과 자극적인 계피향이 그녀 앞에서 얼굴도 못들 정도로 두근거리던 내 심장을 더 설레게 만들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요즘 표현으로는 썸을 타던 그녀와 데이트를 했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기 위해 그녀와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당시는 커피전문점들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커피는 다방 커피와 카푸치노밖에 몰랐다. 그때 벽에 걸린 메뉴판에 내 눈길을 끌어당기는 이름의 커피가 바로 에스프레소였다. 당시 모 광고에서 장동건 배우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의 의미심장했던 반문이 지금도 기억난다. 


"괜찮으시겠어요?"


무엇이 괜찮냐는 것인가? 나는 직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호기롭게 주문을 했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셔본 순간 직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마셔본 적은 없지만 사약의 맛이 이런 맛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한동안 카라멜 마키아또에 빠져 살았다. 그 달콤한 맛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는 것만 같았다. 또 다방 커피에 익숙한 입맛에는 달달한 커피가 취향에 아주 잘 맞았다. 바흐가 작곡한 <커피 칸타타>에 딱 어울리는 커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마시고 난 이후 입안에 남아있는 텁텁함에 곧 물리게 되었다. 마실 때는 좋지만 그 후로는 좋은 게 없는 커피. 그래서 처음에는 좋으나 시간이 지나면 실망하게 되는 사람처럼 카라멜 마키아또와의 인연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뒤로는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주로 마시게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옆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 커피에 관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라 혼자 미소짓는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분명 커피에 여러 추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가 커피를 사랑하는 것은 커피의 맛과 향 때문이겠지만 커피를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어떤 이유든 커피는 정말 매력적인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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