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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Oct 28. 2023

모든 실패가 의미 있을까

피크닉의 Entrepreneurship 전시를 보다가 든 생각 

어제 피크닉 Entrepreneurship 전시를 다녀왔다. 1층의 도입부에 표류된 선원 수십 명과 4개월 넘게 빙하에서 생존한 어니스트 섀클턴의 리더십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시작했던 전시. 2층에는 세대 별로 직업, 창업에 대한 생각이 담긴 통계와 참여형 콘텐츠가, 3층과 4층에는 기업 혹은 기업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담았다. 


몇 층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은 벽 한 면에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공간도 있었다. 빌 게이츠의 "성공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라는 명언과 함께, 실패한 결과물들만 모아 조명한 한 광고 기획자가 큐레이션한 사진들이 쭉 벽에 진열이 되어있었다. 벽면에는 손잡이가 잘못 설치되어 결국 닫히지 않는 문, 사진이 반으로 잘리고 순서가 뒤바뀐 옥외 간판처럼 NG 장면 같은 모습들이 모아져 있었다. 


문뜩 그 사진들을 보면서 '이것이 의미있는 실패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모습들은 실패라기 보다는 '실수 모음'에 가까웠기 때문. 우리는 실수로부터도 배우지만, 실수는 사실 조금 더 깊은 시뮬레이션으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 내가 생각하는 '실패'란, 명확한 의도와 결과에 대한 가설을 갖고 실행한 무엇이 어떠어떠한 변수로 인해 그 결과에 미치지 못한 경우들일 것 같다. 올해 초, 스트롱홀드 강연에서 누군가 나에게 실패한 마케팅 사례는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물어봤었다. 나는 성공한 몇가지 사례 빼고는 거의 다 실패했다고 대답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많은 양'을 실행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모든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앞서 말했던 수 많았던 실패 프로젝트들 중 뚜렷하게 배움이나 인사이트를 주었던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훨씬 많았다. 실패로부터 정확히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서 변수들을 하나씩 바꿔가며 가설을 검증해 나가야 한다. 마치, 퍼포먼스 마케팅에서의 A/B 테스트처럼! 하지만 우리가 같은 목표를 같은 레벨로 실행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 않은가. 또 보다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들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변인을 하나씩 바꿔가며 테스트하기 쉽지 않다. 시간에 따라서 시장 환경도 변하고, 실행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변해간다. 무언가 성공했을 때 원인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 처럼, 실패했다면 수많은 실패를 야기한 요인들 중 가장 크리티컬한 인자가 무엇이었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아쉬웠던 요인들을 리뷰하고, 다음에 더 발전시킬 수는 있지만. 


또한 실패로부터 정확하게 배우기 위해서는 결괏값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여 영향을 끼치는 매장 비즈니스의 경우, 실패를 향해 들어가고 있다면 어떤 것이 문제인지 찾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렵지 않다. 고객의 반응이 대부분 매장 내에서 관찰 가능하기 때문.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것을 고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두 촘촘하게 기록하고 관찰할 수 있다. 반면 닫혀있는 비즈니스 제안 상황에서 실패한 경우, 고객이 왜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것은 고객의 진심이 아닐 수도 있고, 실제로는 다른 이유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는데 고객 본인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도 있다. 이렇게 결괏값에 대한 정보가 제한된 경우에는, 실패로부터 러닝커브를 빠르게 확보해가기 참 어렵다.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이 꽤나 오래 걸리는 이유도, 팀이 실패했을 때나 팀원과의 관계에서 실패했을 때, 모든 팀원의 마음을 아주 투명하게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지 않을까. 


모든 실패에서 같은 수준의 러닝을 이끌어내긴 어렵지만, 그래도 실패는 계속되어야 한다. 듣기만 해도 무언가 설레고, 용기를 내게 되는 단어인 Entrepreneurship을 정의해 본다면 '주변 환경에 임팩트를 끼치고 싶은 마음, 도전정신 그리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끈기'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세가지 요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실 끈기이다. 도전을 시작하는 것, 도전을 2년 동안 하는 것, 5년 그리고 10년 넘게 하는 건 모두 너무나 다른 이야기.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끈기를 갖추고 있으면서, 스마트하게 계속 배워나가 본인과 조직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면 - 그는 '성공한 기업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를 위해선 역설적으로 과거의 실패한 사례에 대해서도 '다해봤는데 잘 안되었어'의 마인드가 아닌, '다해봤는데 잘 안되었는데 A/B/C가 주요 원인일 것으로 추측해.' 라는, 결과에 대해서 조금은 떨어져 바라보는 냉정한 마인드를 지닐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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