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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Jun 01. 2023

‘나’는 누구일까요?


시작하며

종종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 ‘침착맨(전 웹툰 작가, 현재는 유튜버인 이말년의 유튜브 채널)’에 얼마 전 나영석 PD*가 게스트로 나왔습니다. 나영석 PD는 구독자 5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인 ‘채널 십오야’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유튜브 운영 노하우를 전문 유튜버에게 배우러 왔다고 말하더군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부끄러워하기보다 망설임 없이 배우려는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미 정상을 밟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 태도일까(?) 살짝 꼬인 생각도 했습니다만...
*KBS의 대표적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로 잘 알려진 그는 2012년 CJ ENM으로 이적한 후 tvN에서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알쓸신잡’ 등의 인기 예능 시리즈를 쏟아낼 만큼 콘텐츠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초 CJ ENM 산하 레이블인 에그이즈커밍으로 소속을 변경했습니다.



나영석 PD는 공중파에서 케이블 TV, 종편으로 그리고 다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의 본질-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죠. 콘텐츠 생산뿐만 아니라 많은 일이 그렇겠지만, 신경 써야 하는 건 우리가 만든 유무형의 그 무언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피드백을 주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우리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으니까요.


나영석 PD에겐 ‘자기복제’의 아이콘이란 비판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그는 “30대 말 40대 초가 창의력이 폭발할 때고 그게 지금은 끝났다. 4~5년 전에”라면서 “저도 사실 예전처럼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고 생각나고 그러지는 않지만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망하더라도 거기서 쌓이는 노하우가 있고, 나는 못 가지더라도 내 후배들은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라고 덧붙였습니다. 감각과 아이디어는 어느 연령대에 정점을 찍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가 비판을 수용하는 동시에 계속 시도하고 그 실패에서조차 뒤에 올 사람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한 부분이 좀 감동(?)이었습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 자기가 속한 업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러니까 애정이 느껴져서...말이죠.




협동조합=혁신의 아이콘?!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화하는 시대, 여기저기에서 ‘혁신’해야 한단 말을 합니다. 변화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바꾸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혁신(革新)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한자를 살펴보면 낡은 가죽을 벗겨낸다는 것인데요, 그만큼 각오하고,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새롭다’는 것이 혁신의 본질이라면,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혁신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협동조합이야말로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협동조합의 시작으로 이야기하는 영국의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하 로치데일)은 1846년 여성 조합원을 받아들였습니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경제적 참여에서도 배제된 시기에 말이죠. 로치데일은 단지 식품 소매 협동조합이 아니라 조합원의 삶에 협동의 의미를 전달하는 교육과 사회혁신 운동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제도화해 종업원지주제도(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s)의 가능성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고요. 기존 시스템과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죠.


ICA(국제협동조합연맹)에서 2015년 발행한 '협동조합 원칙 안내서(번역자료)'의 서문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초기 협동조합 선구자들은 협동조합기업을 설립해서 성공하는 그 이상을 바랐다. 이들은 사회 정의에 관심을 지녔고, 공통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업체를 통해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필요를 충족하겠다는 포부를 품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열정으로 움직였다.” 


살펴보면, 자본을 투자한 소수가 아니라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많은 조합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혁신이 협동조합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844년 영국 북부에 있는 로치데일의 면화 공장에서 일하던 28명의 장인은 현재 협동조합의 원형인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을 설립합니다. 당시 직공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렸는데요, 여기에 더해 값비싼 식품, 생활용품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부족한 자원이지만 함께 모은다면 생필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초기에는 밀가루, 오트밀, 설탕, 버터 네 가지 품목을 판매했습니다. 선구자들은 소비자들이 정직한 환경에서 존중 받아야 하며, 기여(구매)에 따른 이익이 공유되어야 하고, 사업 운영에 대한 발언권이 주어지는 등 민주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소비자가 조합원이 되어 사업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조직이 어떤 조직인데!

정체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본질을 잘 알고, 그에 맞춰 내면과 외면의 행동을 가능한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의 맥락에서 비롯된 일관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나'의 정체성을 알리는 거죠. 어떤 사람에 대해 또는 어떤 조직에 대해 종종 ‘~답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 자체가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구현한다는 것은 자기를 보는 자기의 눈, 그리고 자기를 보는 타인의 눈(나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일치시켜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협동조합을 여타의 다른 조직과 구별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물론 협동조합마다 그 정체성이 각기 다르겠지만, 협동조합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또 협동조합 바깥의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게 하는 요소 말이죠. 협동조합은 공동의 필요 속에 함께 일하도록 우리를 묶어주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과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게 협동조합 혁신의 시작이고 또 협동조합의 정체성이라면 그 정체성이 다른 유형의 사업체와 협동조합을 차별화하는 지점이겠죠. 협동조합이 지향하는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회·경제·환경의 변화와 도전에 조응하면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구성해가고 있습니다. 변화에 따라 조금씩 가치를 창출해가는 방식을 바꿔가는 거죠.


‘피식대학’은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튜브 최초로 예능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지상파에서는 코미디 채널이 사라졌지만, 유튜브에서는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거기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지난 5월, 지큐 코리아(GQ Korea)에 실린 코미디언 이용주의 인터뷰에서 코미디의 본질을 잘 살리기 위한, 또 코미디를 잘 전달하기 위한 그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수의 창법이 변한 건 대중이 음악을 듣는 기기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소극장이나 무대에서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발성이 좋고 목소리가 커야 하고 하이 노트를 잘 불러야 했는데, 기계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속삭이듯이 부르는 창법 스타일로 바뀌었다고요. (중략) 요즘은 8인치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보고, 유튜브 기능으로 보다가 뒤로 갈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고, 다시 볼 수도 있고, 댓글 읽으면서 볼 수도 있죠. 하드웨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변화에 따라 우리도 웃음 주는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고, 그렇게 변화를 주다 보니 ‘여기서 웃어라’ 떠먹여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 찾더라고요.”


안정된 세계관을 고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란 무엇이고, 누구와 결합하고 연대할 것인지, 또 어떤 수준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번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과정에서 기존과 다른 사업으로의 전환, 확장도 일어날 수 있을테고요. 실행하고 또 시행착오를 견뎌내는 힘, 그런 도전이 우리 협동조합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지난 2004년에 나온 ‘협동조합의 혁신논리와 발전잠재력에 관한 연구’입니다. 논문은 “혁신(innovation)은 새로운 것을 찾는 창조적 행위이며, 그 성과는 Property rights(재산권), 능력, 동기부여 등의 변수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재산권을 마련해 혁신을 주도하는 개인이 혁신의 성과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개인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능력은 “사회마다 각기 다른 재산권으로 인해 그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나며, 이에 따라 혁신 성과도 각기 다르다”고 정리하죠. 능력은 주변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데요, 그래서 어느 정도 알맞게 주변 환경을 조정하는 것이 혁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연구자는 혁신의 수용과 확산 프로세스 측면에서 ‘문화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협동조합은 여러 조합원들의 각기 다른 사회적 관계를 접할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경험과 정보 교환, 교육 등을 위한 여러 그룹의 결성 등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기에 우호적인 환경입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점진적이며 갈등을 해소시키는 문화병용의 프로세스를 통해 사회·문화적 역량을 결집하여 혁신 확산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보죠. 협동조합의 협력이 잘 안착할 때 그 자체가 협동조합 혁신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민주적 참여가 중심이 되는 조직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러한 구조 자체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좀 더 혁신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잠재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의 결론에서 현재 경쟁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동조합들이 협동조합 특유의 혁신력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조합원 스스로가 자기이익을 위해 협동적 혁신잠재력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조합원의 혁신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재산권 구조의 개선, 환경의 조성 등이 뒷받침되어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요. 조합원 중심의 조직으로 협동조합의 혁신력을 높이는 것, 어떻게 가능할까요? '힌트'를 찾아 논문을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유월입니다. 2023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 데 말이죠. 시간만큼 정직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시간만큼 정직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마냥 바라볼 순 없고 조바심이 납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해하며,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그 중요함을 인지하며 느끼게 되는 무거움, 이것이 ‘역사의 무게’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축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 시대에 맞춰 크건 작건 해야 할 임무가 있다. 소박하게는 부모가 나한테 못해준 것을, 나는 내 자식에겐 해주겠다고 맘먹는 것도 ‘역사의 무게’를 깨달은 사람의 결심이라 할 수 있다. 아, 지금껏 역사의 무게는 독립운동을 할 때나 느끼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도 잘난 척이나 불평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뭔가 각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칼럼을 읽고 마음에 묵직한 돌이 얹힌 것만 같았어요. 


모든 사람은 자기 시대에 맞춰 크건 작건 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말이 자꾸 머릿 속에 맴돕니다. 이전 세대를 탓하긴 쉽고, 또 그 세대의 잘못을 지적하긴 쉬운데 결코 그들처럼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뭔가를 해야 합니다. 협동조합 영역도, 사회적경제 영역도 마찬가지겠죠. 각자의 몫을 해내야만 합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은연중에 회피했던 그런 일들 말이죠.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고 이게 최선일까 싶은데, 그래도 해야겠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어떻게든 해봐야겠죠? 자책만을 해선 안 됩니다.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해야 할 몫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번 회차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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