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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Jul 06. 2024

혁신의 시대, 우리는 어디쯤에?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가 되고 싶단 생각에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여기저기 일에 치이다 소진되고, 다시 회복해서 불타오르고 그러다 또... 이 반복되는 순환고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8시간)을 제외한 16시간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일로 보내곤 하는 일반적인 패턴을 생각하면, 일과의 관계가 좋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삶의 만족도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일상을 조율하다 보면 1개월이, 1분기가, 1년이 금방 지나갑니다. 2024년의 1분기, 아니 벌써 2분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네요. 영국 그리니치의 자오선에서 측정한 그리니치 표준 시간이 있다지만, 각자 경험하는 시간은 달라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삶의 질이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구독자분들은 요즘 어느 지점에 있나요? 나를 챙길 수 있는 건 역시 ‘나’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종종 나를 향한 관심과 그에 적절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르락내리락, 그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질문 말이죠.



‘아샷추’를 아시나요?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커피를 말하는데요, 달달하고 상큼한 아이스티와 커피의 씁쓸함이 어우러져 묘한 맛을 냅니다. 이제 막 커피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커피의 쓴맛은 부담스러운데, 아이스티의 단맛이 그 부담스러움을 잡아줘서 은근히 인기가 많아요. 이미 여러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아샷추 메뉴를 별도로 두고 있을 만큼요(하지만 호불호가 꽤 있는 음료입니다..)


날씨가 더워질 무렵이면 저는 종종 아샷추를 마십니다. 제겐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지표 같은, 과장하면 일종의 제철 음식이거든요. 아샷추는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에서 비롯된 음료라고 해요. 개인의 취향에 맞춰 소비하려는 사람들의 필요가 공급을 만든 거죠. 인터넷을 찾아보면 카페별 커스텀 음료를 추천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음료뿐만 아니라 티셔츠, 운동화, 스마트폰 케이스 등 자신의 개성을 반영한 커스터마이징 사례가 곳곳에 있습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어느 정도 비슷해진 상황에서 기업들은 경쟁사와 비교해 차별화된 지점을 만들려 애씁니다. 그래야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으니까요. 끊임없는 혁신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 개발을 위한 혁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존의 경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니까요. 많은 사람의 노력과 자본이 투입됐다 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으니 혁신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때, 기존 제품에 변형 또는 수정을 가하는 방식의 혁신으로 변화를 꾀할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의 의견을 수용해 제품을 수정하거나 새 제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말이죠.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에 비판적인 의견도 많지만, 해마다 조금씩 개선된 제품이 나오고, 그렇게 제품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나올 수 있는 여지와 가능성도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제품을 새롭게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죠. 수정하다는 뜻의 모디파이(modify)와 소비자의 컨슈머(consumer)를 합친 '모디슈머(Modisumer)'의 등장 등 소비자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사람을 중심에 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의 혁신이야말로 사람들의 필요와 바람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적경제 조직의 혁신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경제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과 소셜벤처에서부터 공동육아협동조합과 돌봄 사회적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각자 만들어가는 혁신의 사례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고 기회를 발견하는 그 과정이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올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 간 협력의 사례와 비즈니스 교류를 촉진하며 혁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쿱 서밋(Global Innovation Coop Summit)과 같은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겠죠. 기술 혁신은 물론 사회 혁신, 경영 혁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이때 현재의 사회적경제와 앞으로의 사회적경제가 만들어갈 세계를 성찰하는 작업은 꼭 필요합니다.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사회적 회복력, 윤리적 가치,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는 주체로 사회적경제 조직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 조직 안팎의 교류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읽은 논문은 <한국 사회혁신 생태계 주체별 혁신 단계에 관한 연구: 정부, 사회적 조직, 시장(기업)을 중심으로(2021)>입니다. 논문은 2019년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정부, 사회적 조직, 시장 등 각 사회혁신 주체의 역할과 혁신 단계, 그리고 생태계를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혁신 생태계를 위한 협력구조를 제안하는 것에 목적이 있죠. 


본 논문에선 인터뷰 대상 기관이 특히 중요하다고 보이는데요. 2019년 기준, 정부(행정안전부, 전주도시혁신센터, 춘천사회혁신센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주 사회적경제센터, 서울혁신파크), 사회적 조직(희망제작소, 대전 풀뿌리사람들, 어반하이브리드, 청년창업네트워크 프리즘, 동그라미재단, 비영리IT지원센터), 시장(임팩트얼라이언스, 루트임팩트, SK행복나눔재단, 한국사회혁신금융, 크레파스솔루션) 총 17곳 기관을 진행했고, 이중 논문에서 분석한 사례는 정부(행정안전부, 서울시), 사회적 조직(희망제작소, 동그라미재단), 시장(SK행복나눔재단, 루트임팩트) 각각 두 개 기관입니다. 논문 85쪽의 <표 2>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잠깐 사회혁신의 개념을 살펴보면, 사회혁신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problem)보다는 필요(needs)의 관점에서 출발할 것을 제안합니다. 필요의 관점에 집중한다는 것은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부터 국가, 시장과 같은 큰 단위까지 다양한 주체의 역량과 자원, 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북미의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ship) 모형이 사회혁신의 담론을 주도했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시민사회가 사회혁신의 도입과 실천활동을 주도했다는 특징이 있죠. 한편,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같은 기술혁신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한 사회혁신 담론도 한 갈래로 자리합니다. 


연구자들은, 사회혁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재정적(공간, 물적 지원) 지원과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사회적 조직과 시장은 역량과 창업지원에 집중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가능성 탐색(1단계), 실행을 통한 학습(2단계), 규모화(3단계)라는 일반적인 사회혁신 단계를 역순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사회적 조직과 시장(기업)은 가능성 탐색과 실행을 통한 학습의 단계까지 진행했지만, 규모화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보고요. 연구자들은 사회혁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부, 사회적 조직, 기업 등 관련 주체의 사회혁신 모니터링, 성과관리 및 아카이빙 체계 구축이 필요한 것은 물론 주체별 역할이 명확히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2019년의 한계는 얼마나 보완되었을까요? 2024년, 현재 사회혁신 분야는 어떨까요? 사회혁신이 문제보다 필요의 관점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 사회의 필요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적 전환,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지역혁신 등일 겁니다. 그러한 필요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사회혁신 생태계의 기반이 갖춰졌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을 포함해 좀 더 최근의 사회혁신에 관한 논의는 지난해 3월 희망제작소에서 발행한 보고서 <사회혁신, 비판적 성찰과 전망>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5월 1주부터 3주까지, 주 4일제 체험판을 경험하는 셈인데요. 구독자분들께선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초록의 기운이 움트는 5월의 가장 좋은 이때,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즐기시면 좋겠단 바람을 담아봅니다.


불안을 끊어낼 순 없지만 희석할 순 있거든요. 그렇게 작은 재미가 오래 지속하면 콘크리트 같은 재미가 돼요.” 정신과전문의로 50년간 진료하고 학생을 가르친 이화여대 이근후 명예교수의 인터뷰(2019년)를 읽으며 건져 올린 구절인데 마음에 꼭 들어 옮겨왔어요. 걱정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야금야금 찾는 것, 오늘 저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은 재미를 찾는 5월 되시길요!


아름다운 순간을 찍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봅니다. 이렇게 초록과 파랑이 쨍쨍한 날엔 마음이 괜히 들뜹니다. 구독자분들에게도 제가 느꼈던 이때의 좋은 느낌을 전하고 싶네요.




뉴스레터 <오늘의 논문>의 글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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