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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화 Apr 02. 2023

알로카시아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곧잘 버리는 편이 아닌데, 식물은 특히 더 그렇다. 상경 이후로 집에서 꾸준히 식물을 길러 왔다. 요즘에는 초록별로 보내는 일이 적지만, 회사 일이 바쁠 때는 많이도 죽여버렸다. 대부분 몇 주간이나 물을 주지 않은 채 방치한 탓이었다. 이미 시들어 버린 잎과 줄기를 보고 뒤늦게서야 물을 흠뻑 부어도 봤지만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항상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살아날지도 모르잖아’하는 마음이었다. 가족들이 집에 오는 일이면 말라버린 식물을 보고는 한마디씩 했다. 죽은 식물이 집에 있으면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던가, 버리는 일이 번거로우면 대신 버려주겠다는 말들이었다.


지난 겨울이었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던 어느 날에 인터넷에서 식물을 잔뜩 샀다. 영하의 기온에도 식물들은 건강하게 집에 도착했다. 개중에 알로카시아가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식물을 집에 적응시키는 일이 우선이지만 나는 알로카시아의 조잡한 화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분갈이를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기분은 며칠 못 갔다. 알로카시아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잎이 나려던 부분은 갈색으로 변했고, 흐물흐물해졌다. 놀란 나는 일찍 분갈이한 것을 후회하며 조잡한 화분으로 다시 옮겼다.


기대는 없었다. 앞서 화분을 버리지 못했던 것도 정말 희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잘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도 알로카시아를 버리지 못했지만, 물도 주고 볕도 주면서 반성했다. 일주일 전이던가. 뿌리 주위에서 무엇인가 솟아나고 있었다. 뿌리가 방향을 잘못 잡았나 하고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날마다 조금씩 자라더니 오늘은 손바닥만 한 잎을 펼쳐냈다. 나는 너무나도 감동해서 알로카시아 앞에서 박수를 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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