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춘천 닭갈비는 또 먹을 거야.
� 춘천닭갈비 먹다가 응급실 간 썰 ��
11월 첫 번째 주 토요일이 됐다.
등산동아리에서 여느 때처럼 등산을 하고, 하산 후 밥을 먹으러 갔다.
이번 산은 팔봉산이었는데, 가을에 등산하기 참 아름다운 곳이다.
물론 아름답지만 네 발로 올라야 하는 산이기 때문에 (등산 대초보 기준) 굉장히 힘든 산이다.
그럼에도 무사히 넘어지지 않고 하산했다는 기쁜 마음을 안고 춘천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왼쪽 정강이와 무릎에는 멍이 들었음 ㅋ)
춘천닭갈비집에서 다 같이 먹는데, 앞에 계신 분이 말했다.
“다이어트엔 역시 쌈이죠!”
그 말을 듣기도 했고, 그날따라 쌈에 이것저것 많이 넣어서 먹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상추에 조금 큰 닭갈비, 양배추, 양파, 마늘을 넣고 한입에 쏙 넣었다.
그때 사실,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너.무.뜨.거.웠.기.때.문.에!!!!!!!!!
그런데 나란 사람에게도 사회적 체면이 있지 않은가?
나는 싹!!!!!!!!!! 뱉지 않고 꿀꺽 삼키기를 시도했다. (문제의 발단 시작!!)
조금 뜨거웠지만 뭐, 평소와 다름없었다.
나는 원래 애초에 많이 씹지를 않으니까(자랑이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하더니, 목이 너무 아팠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아프기 시작하더니, 헛구역질이 났다.
구역감이 지속되는데 실질적인 ‘이물질’은 나오지 않는 상황.
이제 다 같이 하임리히를 하기 시작함.
세 명에게 하임리히를 당해(????) 봤으나 아무 소용 없었다.
출처 : 나무위키
춘천닭갈비를 먹다가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을 가는 듯, 닭갈비집에서 자연스럽게
“강원대 말고 한림대로 가세요! 응급환자가 적어요!”
를 외치셨고, 나는 그렇게 친구 두 명의 비호(?)를 받아 한림대로 향했다.
토요일 15시 30분.
매우 놀기 좋은 프라임(??????) 시간대라 차는 막혔고,
중간중간 오는 구역감을 참으며 한림대에 도착했다.
응급실에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한 뒤 초조하게 기다렸다.
대기 순서는 세 번째였지만, 내 순서는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오질 않았다.
대기하면서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헛구역질을 여러 번 하고,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됐다.
기쁜 마음도 잠시.
“오늘 당직에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검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머릿속엔 물음표만 가득했다.
내가 병명을 말했는가? 예스.
내가 대기를 했는가? 예스.
내가 한 시간을 기다렸는가? 예스.
골든타임은 지났는가? 퍼펙틀리 예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는 작은 생채기 하나조차 제일 지독하게 아프고 슬픈 법이다.
목에 들어간 많은 쌈 친구들이 아우성치고 있는 이 순간에 너무 화가 났다.
“애초에 어디가 아픈지 말씀드리고 왔는데, 그럼 대기를 하지 말라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간호사 선생님은 침착하게 말했다.
“119에 직접 연락하셔서, 내시경 가능한 이비인후과를 직접 찾아가셔야 합니다.”
“트랜스퍼도 안 돼서 직접 가야 해요?????”
“정확한 병명이 없기 때문에 직접 가셔야 합니다.”
“와... 한 시간 넘게 대기한 결과가 이건 거죠?”
“네, 방법 없습니다.”
굉장히 열받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나는 카톡으로 밖에 있던 친구들에게 알렸다.
“이비인후과 없어서 불가.”
나가 보니 친구 한 명은 강원대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길로 119에 전화를 걸어 현재 위치 기준으로 영업(?) 중인 이비인후과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내시경은 불가능한 곳이라, 다시 119에 전화를 했다.
“내시경이 가능한 곳으로 리스트업 부탁드립니다.”
119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혹시 어디 지역 분이세요? 현재 강원도 내에는 강원대 말고는 없습니다.”
“서울이라서 아무 위치나 괜찮습니다!”
다행히 강원대에 연락이 닿아서!!! 문자는 받았지만 ! 5분 거리의 강원대병원으로 이동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강원대는 한림대보다 더 쾌적했다.
입구에서 접수하자마자 간호사분이 말했다.
“아, 쌈 먹다가 걸리신 분 맞으시죠?”
... 굉장히 부끄러웠다.
어디 가서 내가 아픈 이유를 이렇게 말하기 부끄러웠던 적이 있던가.
“네네, 맞아요.”
처치실에 덩그러니 앉아서 주변을 살폈다.
넷플릭스의 중증외상센터처럼 엄청 아파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도.
너무 아파서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
간간히 실려가는 두어 명의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위생장갑이 가득한 처치실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5분쯤 뒤 누군가 들어왔다.
“쌈 먹다가 걸리신 거죠?”
간호사와 의사로 보이는 몇 분이 내 목을 들여다보고 나갔다. (화끈거림 2회 추가)
그다음에 온 선생님은 내 목을 만지며 어느 쪽이 아프냐고 물었다.
내가 아팠던 부위는 목 중앙보다 살짝 아래쪽.
선생님은 갸우뚱하더니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죠” 하셨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오니, 장발의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날 이비인후과로 데리러 왔다.
그때의 나는 헛구역질과 어지러움,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아픈 목 때문에
그 선생님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지나 젊은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쌈 먹다가 걸리셨다고요?”
차트를 보며 말하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목을 만져보며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목의 위치에 따라 처치가 달라지는 듯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라고 하시더니, 거즈로 내 혀를 잡고 내시경을 넣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구역감이 심했기에 구역질이 났고,
선생님은 담담히 말했다.
“비위가 약하신가 봐요. 개수대는 저기입니다.”
간신히 개수대를 붙잡고 침을 뱉으며 진정했고,
다행히 여전히 이물질은 나오지 않았다.
“이게 상상 때문에 그래요. 마음에서 오는 공포가 커요. 눈을 감고, 안 들어온다고 마인드컨트롤 하세요.”
라고 하시더니 선생님은
“일단 진통제를 뿌려볼게요.” 하며 내 목에 칙칙---- 무엇인가를 뿌렸다.
그래도 “오늘 검사는 해야죠?” 하며 나는 또 내시경을 당했고,
결국 여섯 번쯤 반복했다.
결과는 이랬다.
“역류성 식도염, 편도결석, 편도는 조금 부었네요. 음식물은 안 보이는데요?”
“양파가 걸렸으면 이미 기침을 많이 했을 텐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안도하려는 순간, 또다시 청천벽력 같은 말.
“목젖 아래로 내려간 것 같아요. 거긴 소화기과 영역이에요. 위내시경으로 봐야 합니다.”
“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여러 번 물었다.
“선생님, 그냥 가도 되겠죠? 편도염은 아닐까요?”
선생님은 내 구강 사진과 편도염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아니에요. 염증은 살짝 있지만 편도염까진 아니에요. 일단 이비인후과에서는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없네요”
해결된 게 아무도 없이 나는 응급실로 찾아갔다.
가는 길에 너무너무 길을 헤맸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응급실로 돌아오자,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오셨다.
“엑스레이를 보니 목 쪽에 뭐가 보여서요... CT를 찍어봐야겠습니다.”
두둥.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이 진짜였던 것이다.
https://snubh.org/service/info/com/view.do?BNO=411&Board_ID=B004
목젖 아래로 관이 두 개로 갈리는데,
앞은 기도, 뒤는 식도라고 설명해 주시며
“기도로 갔다면 큰일 나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결국 인생 첫 CT를 찍었다.
생각보다 길고, 살짝 추운 공간이었다.
등산 복장이었던 내 레깅스를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덮어주시더니 촬영이 시작됐다.
저 초록색..................
CT 결과, 목에 정말 무엇인가가 ‘끼여’ 있었다.
다행히 기도는 아니었고, 식도 위치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말했다.
“이건 음식물로 보여요. 하루이틀 내로 자연히 내려갈 겁니다.”
4시간을 헤맨 끝의 결론이 ‘곧 내려갈 거다’라니.
그래도 동시에 ‘넌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지러움과 구역감이 여전했지만, 진통 주사를 맞고
응급약을 받아 퇴원했다.
응급처치 비용은 약 17만 원.
밖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친구들의 비호(?)를 받으며
춘천에서 서울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도 순탄하진 않았다.
겨우 찾은 약국에서는 조제약이 다르다며 거절했고,
다음 약국에서야 간신히 다른 약으로 조제받았다.
천둥번개와 비가 동반된 서울행이었다.
11월 1일 토요일에 벌어진 이 사단은
11월 5일 수요일인 지금까지도 여파가 남아 있다.
5일 치 약은 남았지만, 목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꼭꼭 씹어 먹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내 목이 노화돼서 닭갈비를 못 이긴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
.
웃긴 비화를 덧붙이자면,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이래서 춘천닭갈비 안 먹어요~
사람들이 놀러 와서 은근히 이렇게 많이 응급실에 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질질 짜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줬던 세미 언니와 성민이 고맙고,
그리고 정말 인자하셨던 응급의학과 서정국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