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PRICORN Sep 02. 2021

내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 나이를 불문하고 대부분 사람은 이 단어를 들으면 설렌다. 그리고 보통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추억 속에서 미화되곤 한다. 남들에겐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오는 그 첫사랑은 나에게는 유독 거리가 멀었다. 어째서인지 나의 첫사랑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스물한 살 나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었다.

미국으로의 교환학생은 첫사랑과는 더 거리가 멀었다. 영어를 하는 외국인들은 정말 마음속 거리가 너무 멀었다. 특히 남부지방의 시골에 있었던 내 학교는 다른 문화에 조금 배타적이었다.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친절함은 있었지만 다른 음식을 경험한다거나, 전통문화를 궁금해한다거나 이런 것들은 별로 없었고 그저 친절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투명한 벽을 경험하면서 학교에 몇 없던 일본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처음 유우키의 인상은 최악이었다. 일본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방으로 뻗은 머리에 마른 체구에 록을 할 것만 같은 비주얼. 심지어 유우키의 눈빛은 세상에 대한 불만이란 불만은 가득 담고 있었다. 나는 최악의 첫인상의 그와 거리를 두었고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나라는 달랐지만 서로 문화에 대한 궁금증과 공통점들을 발견해 나가며 친해졌다. 주말이면 다 같이 밥을 해 먹고 각 나라에서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그렇게 친해지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dry county’라는 법적으로 술을 먹지 못하는 지역에 속해있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술을 먹다가 걸리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기숙사에서도 마찬가지. 학교 친구들과 갖는 미국의 홈 파티는 디즈니와 팝콘을 먹는 딱 그 정도.

청개구리 기질은 항상 발동했다. 술이 금지라도 차가 있는 친구들은 1시간 밖의 거리의 동네에서 술을 사 올 수 있었고 그렇게 $2~3의 웃돈을 얹어서라도 나와 친구들은 술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런 청개구리 기질이 특히 맞았던 친구가 바로 유우키였다.

보이지 않았던 공통점은 술을 마시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매사에 반항적으로 보이던 그 아이는 오히려 배려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렇게 마음이 맞는 우리 몇 명은 기숙사 곳곳 혹은 CCTV가 없는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우리끼리의 작은 술판을 벌였다.

그러던 중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순간이라고 명확하게 말할 순 없었다. 그 순간은 갑자기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코올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라고 믿었던 그 느낌은 생각보다 질겼다. 나는 앞서 말했듯 첫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물렀고 나의 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의 감정에는 확신이 없었지만, 타인에 대한 눈치는 빨랐다. 그리고 나는 유우키가 나에 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낮의 그 반항적인 눈빛이 어느 순간부터는 열렬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곳을 보다가 그를 돌아보면 항상 나를 보고 있는데 못 알아채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도서관에서도 식당에서도 항상 함께였다. 그리고 이때는 각자 나라에 돌아가기 고작 한 달 전이었다.

가랑비 젖듯 자연스럽게 찾아온 감정에 오히려 혼란스러운 것은 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애나 사랑을 글로만 배웠던 나에게 첫사랑이란 보자마자 빛이 나는 존재여야만 했고 열사병과 같은 불타오르는 존재였다. 그러나 실제로 나에게 찾아온 첫사랑은 열사병이 아니었다. 오히려 길가의 들풀과 같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언제 있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피어난 꽃처럼.

무엇이든 처음은 어려웠다. 시작하기 어려운 나에게 유우키는 보폭을 나에게 맞추었다. 첫 디딤발이 어려움을 그는 이해해주었다. 그의 고백을 처음에는 거절했다. 우리는 어차피 한 달 뒤면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연애는 어려운 법이다. 이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밀어내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무리하게 당기려 하지도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린아이 같이 치대고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며 이 사랑을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을 리 없음에도 그는 성숙했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나 스스로 이 감정을 인정할 수 있는 때를.

하지만 그렇게 학기는 끝이 났다. 이제는 각자 계획했던 겨울 방학을 맞이할 시간이었다. 나는 미국 동부 여행을 친구들과 여행하기로 했고, 그는 시카고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사이를 무엇이라 매듭짓지 못하고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나는 뉴욕으로 떠났고 연말이 다가오던 때, 아직 서로 미국에 있던 그때 스카이프로 대화했다. 장장 한 달 동안 마음도 행동도 오락가락하는 나를 가만 듣고 있던 그는 입을 열었다.

"나 뉴욕 가, 만날래?"

크리스마스와 새해맞이로 모든 미국인이 여행을 떠날 시기였다. 호텔비와 비행 깃 값은 천정부지로 높은 가격이었고 놀란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이미 나의 여행 계획을 알고 있던 그는 오랫동안 고민 끝에 그의 계획을 취소하고 나의 계획에 일부가 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기존 예약을 취소했다고 조심스럽게 그의 마음을 전했다.

"내가 만나지 않으면 어쩌려고 했어?"

"그러면 나 혼자라도 여행하면 되지."

무모함이 뚝뚝 묻어 나왔지만, 한편으로 그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끔찍하게 나를 배려하는 모습은 나의 마지막 장벽을 허물기 충분했다. 그렇게 우리는 뉴욕 여행을 같이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둘만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불이 잔뜩 켜져 있는 거리와 춥지만, 연말의 특유 따뜻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녹일만한 그의 배려와 기다림은 나의 마음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그와의 감정을 인정했다.

우리는 만나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은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우리는 앉아서 서로의 감정과 지금의 심정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우리는 울다가 또 웃다가 그간의 추억을 곱씹었다. 하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끝을 얘기하지 않았다. 끝을 얘기하면 우리의 사랑이 마침표가 될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서로가 하루를 일주일처럼 쓴다고 해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에 우리가 처음 헤어지는 날이 왔다. 워싱턴에서 새벽 비행기였기 때문에 늦은 밤 우리는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나는 그에게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는 그저 웃었다. 그리고 그 밤 자정을 알리는 시간에 우리는 호텔 앞에서 내가 제안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인사했다. 약간은 일그러진듯한 웃음이었지만. 그리고 나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짐을 싸며 펑펑 울었다. 영화는 틀렸다고. 웃는 헤어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다음 날이 됐다.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공항에서 수속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내 이름이 불렸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배려심으로 날 울렸다. 결국, 공항에서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워싱턴의 댈러스 공항에서, 너무 이질적이었던 검은 머리의 남녀는 다른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것도 잊은 채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맞잡고 울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장거리 연애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또 당분간은 서로 쉽게 보지 못할 것을. 그렇게 나는 워싱턴에서 한국으로 떠났다. 아직 학생이었고 서로의 일상 속에서 바빴던 우리는 쉽게 만남을 지속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그 공항에서의 울음은 우리가 끝을 예감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유우키는 나에게 사랑하는 법을, 사랑받는 법을 알려준 첫사랑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여느 첫사랑들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의 조각 1 _ 시애틀(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