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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Jan 10. 2022

불안이 디폴트 값이 된 우리들

큰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불안정성(Precariaty)과 프롤레타리어트(Proletatiat)의 합성어로 불안정한 고용 노동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파견직, 실업자를 총칭한다.

많은 꿈을 좇는, 혹은 꿈을 찾는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큰 불안함을 가지며 살아간다. 꿈을 찾는 과정에서, 혹은 꿈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성과를 가시화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나마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력하는 모습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들어오기까지 이 모든 과정만큼은 나의 눈으로 목격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오늘도 채찍질한다. 내 안의 내재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일단 집 밖으로 나선다.


고등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커다란 자유가 주어진다. 커다란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와 학원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도는 20%도 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방황한다. 하지만 제일 큰 것은 나태해지는 내 상태에 대한 불안함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스스로 경멸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에게 불안이 디폴트 값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오랜 기간 불안의 파도에서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는 합리화를 시작하고, 스스로 되뇌고 그렇게 모두 망망대해에서 유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젊을 때는 고생해도 된다는 사람들이 많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엔 그런 책들이 쏟아졌다. 젊을 땐 열정 하나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절엔 고생이 미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혹자는 이러한 고안된, 도구화된 열정은 개인의 착취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순수한 형태의 열정은 분명 우리 안에 존재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 혹은 꿈을 실현시키는 그 과정들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그 열정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나"라는 몸뚱이가 움직일 수 있도록 스스로 의지 기름칠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불안이 디폴트 값이 된 우리가 과연 불안에 해방될 날은 올까. 그러나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채 아직 찾지 못한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 비록 작을지라도.




::::::: 북저널리즘, 비 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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