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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Jul 06. 2024

권위자

“또 날 놀리려는 거야?”


여자의 물음에 남자가 빙긋 웃었다. “지금처럼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잖아. 이럴 경우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경우라면, 네 얼굴이 약 95퍼센트 확률로 짓는 표정이 있지.”


여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대체 95퍼센트란 건 무슨 근거야.”


힘이 들어간 남자의 눈꺼풀이 도드라졌다 “이걸 일상적인 단어로 말하자면 ‘항상’이란 표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너의 반응에 관한 표준편차 값으론 신뢰도 99퍼센트 수준에서 예측 가능한 범위란 뜻이야.”


여자의 눈이 황당하다는 듯이 동그래졌다. “세상에... 이 아저씨가 뭐라는 거야.” 눈모양이 주는 대신 여자의 볼이 부풀었다. “그래서?”


“그럴 경우 눈동자가 위로 떠올랐다가 오른쪽으로 구르듯이 미끄러진단 말이지. 가속도가 마이너스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아주 부드럽게.” 남자의 진지한 눈빛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러면서 입술에 살짝 힘이 들어가고 입꼬리가 살짝 패이거든. 아주 잠깐 희미하게 미소 짓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주는 머뭇거림이지.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미묘한 순간이야. 그 뒤가 더욱 궁금해지는 시간.” 남자는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뻗어 여자의 한쪽 아랫볼을 톡톡 두드렸다.


짧은 웃음 뒤로 여자가 남자의 손을 받쳐 들며 볼을 부볐다. “내가 다 궁금해지네.”


“이제부터 확률은 반반이야. 내 질문에 대해 보충질문을 할지, 아님 답을 할지. 하지만 단서는 있어. 눈동자가 내려가다 중간쯤에서 멈추고 다시 되돌아가잖아. 그럼 대답이 나온다는 뜻이고 더 아래로 가라앉았다 떠오르면 물음을 던진다는 뜻이야. 내 입장에선 어느 쪽이든 흥미진진해. 그때 반짝거리는 눈과 달싹거리는 입모양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넌 짐작도 못할걸?” 남자의 손가락이 여자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뭐야... 사람 민망하게. 항상 그렇게 관찰한다는 거야?” 사선을 그리며 위로 구르는 여자의 눈동자 위로 여자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딴청을 부리던 눈동자가 다시 되돌아오다 멈짓거렸다. “ 앗! 그 눈빛! 지금 그런 식으로 관찰한다는 거야?”


“글쎄, 관찰이라기 보단 관심이란 게 옳지. 이분이 보통 관심을 끄는 인물이 아니거든.” 남자 손이 이번엔 반대편 볼을 꼬집었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이런 잡스런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선배 밖에 없을 걸.” 여자가 팔짱 낀 남자의 팔에 좀 더 깊숙하게 끼어들며 말했다.


“잡스럽다니요! 난 지금 아주 우아하고 섬세한 어떤 특별한 현상에 대해 논하고 있는 거라고.” 남자가 팔짱 낀 쪽의 어깨를 들썩거리자 픽- 여자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것에 관해선 하루 종일도 떠들 수 있어. 넌 몰랐겠지만 네 표정에 관한 한 나는 꽤 오래전부터 우주최고의 권위자거든.”


“세상에... 권위자래.” 여자가 남자를 올려보며 물었다. “너무 확신하는 건 아니고?”


확신이 아냐. 이건 확정적이면서 절대적인 사실이지.” 남자의 단단한 얼굴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도 잘 알겠네?” 촉촉해진 여자의 눈동자가 풍경에 흔들렸다.


“그건 다른 문제지. 마음까진 알 수 없어. 속단은 연구자의 입장에선 치명적인 단점이거든.” 남자의 음성이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그녀에게로 전해졌다. “논리적 관점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었지. 난 아주 조심스런 탐험가 타입이거든.”


“피... 너무 조심스러운 거 아냐? 어쩜 그 연구대상은 아주 단순한 대상일 수도 있는데.” 여자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잘 모르는군.” 남자가 여자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올리며 말했다. “여긴 말이야. 어느 방향이든 결코 도달하지 못할 만큼 방대한 곳이야. 난 그 끝을 보려는 것도 그 전체를 정복하려는 것도 아니야. 내게 허락되는 시간 동안 가능한 많은 곳들을 가보고 싶은 거지.”


“아...” 갑자기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뭔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의 방식을 만났어. 말과는 다르게 선배는 내 마음도 읽어 버린 거 같은데.” 여자의 눈이 반짝였다.


“우연이지. 너의 방식과 나의 방식이 교차한 우연. 체화된 방식은 보통 또 다른 비슷한 방식들을 부르는 법이니까. 그 우연이 확정되면 통시적으론 필연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아주 진부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순간 여자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난 이걸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어. 내가 보려던 관점도, 선배에게 어울리는 관점도 아니지만, 지금 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를 난 생각할 수 없어.”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남자가 여자를 한껏 안아 올렸다. “그 단어가 너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었네.”


여자가 방긋 웃으며 쪽- 입을 맞추었다.




# Leave the Door Open - Bruno Mars, Anderson .Paak, Silk S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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