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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Mar 16. 2021

'가장못하는 것을 해보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

가장 하기 싫은 일, 가장 못하는 일

첫째 아이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질문도 많고 말하는 것도 즐겨 하루 종일 묻고 재잘댄다. 가끔 아이가 하는 질문에 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하기 싫은 것’을 하도록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다(나는 설득보다는 설명을 통해 아이가 선택해 가는 상황을 선호한다).


 “엄마, 나 오늘은 뭐 해? 유치원 가?”

 “응, 오늘 월요일이라서 유치원 가야 해.”

 “아직 다 못 쉬었단 말이야. 나 유치원 가기 싫어어~.”


나도 한때 회사를 9년이나 지겹게 다녀봤기에 월요일에 회사를 가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가수 스텔라장의 <월요병가>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워어어얼 화아아 수우 목 금 토 일’로 리듬만 들어도 한 주의 시작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월요일을 만든 놈은 대체 누구’냐고.


그래서 유치원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해 아이의 힘겨운 등원 상황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1주일 정도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의논을 했다. 이미 유치원을 1년 이상 다닌 상태에서는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어서 권유하지 않아 나도 강행하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막상 유치원에 들어서면 그런 기색 없이 너무 잘 어울리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는 것은 모두  ‘엄마를 위해(for mom)' 하는 일이라더니 정말인 것인가.


하기 싫은 것의 내면에는 그에 대한 예민한 이유가 존재한다. 다섯 살 때보다 어려워진 방과 후 영어수업은 재모에게 갈등을 일으키기에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안 하면 허전하고 막상 하면 하기 싫은 모순적인 아이의 마음은 엄마인 나도 갈피를 잡기 힘들 때가 많다. 그리고 후에,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견디고 해내야 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란 더욱 쉽지가 않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힘듦과 고통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경험으로도 설득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후의 보루인 ‘윽박지르기’는 더욱 먹히지 않는 아이임을 알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빨리 회전시킬 수밖에 없다.


요즘 나의 힐링 스팟.. 낮과 밤의 경계를 담는 순간이다. by @hzero_w


그래서 아이도 나도 각자 <하기 싫은 일>을 종이에 적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가 싫은 것을 마음에 동요가 일 때마다 하나씩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 역시 싫은 일은 최대한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내게도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익숙한 삶을 산다. 그러나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 인생의 90%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숙명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즐기는 과정에 무게 중심을 두면 그 여정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로 변모하기도 한다. 싫은 일을 하도록 추동하는 것에는 수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나와의 타협이 이루어진 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내한 후에야 비로소 그 깊이와 가치가 얼마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오늘 재모의 하기 싫은 일의 목록은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숙제’다. 나는 우리 집 ‘화장실 청소’다. 예전에 영어숙제를 하기 싫다는 날이 있어서 쿨하게 ‘그럼, 하지 마’라고 했다. 빈칸에 이름만 써서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숙제한 아이들만 스티커를 받아 가는 것을 보면서 본인은 스티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속상했었나 보다.


 “아아, 엄마는 이제 화장실 청소나 하러 가야겠다아..”


라고 재모 귀에 들리도록 크게 말하면서 일부러 터벅터벅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열심히 청소를 하던 중 밖이 조용하길래 살짝 문을 열고 봤더니 식탁의자에 앉아 영어숙제를 하는 재모가 보였다. 집중하느라 작은 입이 앞으로 튀어나와 작게 중얼거린다.


내겐 하기 싫은 일만큼 어려운 것이 ‘가장 못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려 이해하기 쉽도록 해 보았다. 가끔은 내가 못하는 것이라고 접어둔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는 용기만으로도 ‘못한다, 아니다’의 부정적인 감정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부정어에 대한 반감이 일부 호감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가끔은 못하는 일, 싫어하는 일도 들여다보자. 그리고 내가 얼마나 못하는지에 대해 직접 느끼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얼마큼 좋고 간절한 것인지 더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좋다’와 ‘싫다’는 따지고 보면 얇은 홑겹처럼 서로를 비추는 사소하고 빤한 이유일 때가 많으니까.


<엄마가 하기 싫은 일  vs.  아들이 하기 싫은 일>  by @hzero_w




*위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에 '가장 하기 싫은 일, 가장 못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이 외의 글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 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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