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근영 Feb 19. 2020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아빠, 그동안 고생했어

아빠에게


 아빠, 내가 서른이 된 것에서만큼이나 아빠가 퇴직을 한다는 것에서 세월이 빠르다는게 느껴지네. 아빠가 퇴직을 하다니, 그것도 정년퇴직을. 아빠가 학교에서 보내왔을 삼십몇 년간의 세월과 그 안에서 일어났을 수많은 일들을, 또 그 일을 통해 번 돈으로 우리를 키우는 동안 아빠가 느꼈을 수많은 희노애락을 가만 생각해보면 조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빠도 분명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테지. 나는 결국에 학교를 그만두고 말 때, 그 일을 정년퇴직까지 삼십년도 더 넘게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느꼈을 때 가슴이 너무 답답했었어. 그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에 다들 그렇게 좋다는 교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거고.


 아빠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학교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회의감이 들거나,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도전해보고 싶었던 순간들. 그런 순간에도 결국엔 학교를 선택했으니까 교사로서 정년퇴직을 하는 거겠지. 그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고 하나의 일을 몇십 년간 해온 아빠가 존경스럽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전혀 없을 수는 없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끝없이 나아갔다는 거잖아. 분명히 그 길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도 많을 거야. 한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는 건 한 분야에 대해서 꾸준히 정진해 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테니까.


 아무튼 아빠, 존경해. 다른 선생님들처럼 중간에 명예퇴직하지 않고 끝까지 교직을 붙잡고 있었던 그 마음을, 인내를, 꾸준함을. 아빠는 우리 세대에는 평생 한 직장에서 다니다가 은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정말로 대단한 거라고 말하고 싶어. 아빠는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해낸 거야. 모두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거라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미안하기도 해.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아빠는 아빠의 그 축복 받을 순간을, 아빠의 일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이 순간을 마음 편히 기쁘게만은 즐길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래도 나 열심히 할게. 내가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동안 아빠도 많이 힘들어했던 걸 알아. 이제는 아빠가 바라왔을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더이상 걱정 안 끼치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좋은 것만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또 하고 싶은 말은 너무 고맙다는 거야. 그동안 아빠가 우리만을 생각하면서 애써왔던 거, 아빠에게는 당연했던 그 일들이 사실은 얼마나 수고스럽고 큰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일인지 어느샌가부터는 깨닫게 됐지. 아빠한테는 학교를 끝나고 치는 테니스가 일상을 버티는 힘이었는데도, 그 테니스를 미뤄두고 집에 잠깐 들러서 내 저녁밥을 차려주곤 했잖아. 또 아빠에게는 저녁 반주로 곁들이는 막걸리 한 잔이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기쁨이었는데도 내가 재수를 하던 해에는 그 기쁨을 참았다가 나를 데리러 오곤 했잖아. 그게 참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그때는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지, 나에 대한 큰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수고로운 일이었는데도 그때는 그걸 몰랐어.


 하지만 이제는 알아.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운 일들을 당연하게 해주었는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아빠. 그동안은 그저 나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해서, 살아나가는 게 너무 힘든 나날이었어서 아빠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했었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받았던, 아빠에게는 큰 수고로움이었을 그 사랑이 나를 살아있게 한 것 같아. 정말 고마워 아빠.


 또,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내가 고등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혼자서 인도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리고 이번에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아빠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었잖아. 그 결과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지만 아빠의 그 한결 같은 지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걸 요즘 많이 느끼고 있어. 내가 힘들 때도 버텨왔던 그 힘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뚜렷한 주관은 다 아빠 덕이야. 


 아빠가 퇴직을 할 때가 되어서야 이런 말을 하는 못난 딸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에는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아줘. 또 항상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느라 바빴던 이기적인 딸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나도 다시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엄마랑 아빠랑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 봄 되면 꽃 보러 가고, 여름 되면 시원한 산으로 놀러가고, 가을이 되면 화려한 단풍을 즐기고, 겨울 되면 따뜻한 방 안에서 찻자리를 가지는 거야. 아빠랑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울 것 같아. 아빠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만두의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