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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근영 Jun 01. 2020

희다

공기 중으로 녹아드는 숨결

 창문을 투과해 비치는 투명한 햇빛 속에 수증기가 어린다. 막 우린 뜨거운 찻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다. 투명한 김이 투명한 빛줄기를 통과하며 퍼져나간다. 둘이 만나서 희었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희었다가, 또 사라진다. 찻물이 공기 속으로 녹아드는 것, 빛과 공기가 생생히 살아났다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찻물이 어느새 식어 더이상 아무것도 빛나지 않을 때까지, 잠시 동안, 혹은 한동안, 어쩌면 오랫동안. 

 그동안이 끝나려던 찰나에 또 시선을 뺏겼다. 책상 위에 하늘이 비쳤다. 창가에 놓인 식물들에 가려져 창문 귀퉁이의 한 조각뿐이다. 하지만 고작 그 조각에서조차 빛이 번져 나온다. 해는 저물고 있을 텐데. 방충망과 유리창을 거쳐 흐려진 빛이라고는, 더욱이 빛 자체가 아니라 책상 유리에 비친 귀퉁이 한 조각일 뿐인데도, 한참이나, 밝다. 그 빛에 이끌려 창문을 보았다. 번져 나오는 빛이 온 방을 밝히고 있지만 쳐다보아도 눈은 부시지 않다. 한 겹의 유리창 너머에 있는 방충망이 햇빛에 새하얗게 바랬다가 오색빛으로 어룽진다. 시선에 따라 무지개가 흰 파도를 탄다. 파도에서 오색빛 포말이 부서진다. 

 고작 두 번 시선을 빼앗겼을 뿐인데 본래의 일로 돌아가기에는 한참 멀어져 버렸다. 이제는 주변에 널린 것들이 확장된 감각에 잡힌다. 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리고 빛이 번지는 창문과 같은 색을 지닌 것들. 내 책상 위에도, 방바닥에도, 벽에도, 시선이 닿는 여기저기에 있다. 책상 위에 놓인 토분에는 뽀얀 백화가 끼었다. 식물을 심지 않고 있을 때는 2년이 넘어도 그대로더니, 식물을 심자마자 조금씩 분이 끼기 시작해서 3년이 지난 지금은 입구 주변이 온통 하얗다. 그 주변에는 A4 용지들이 이리저리 널려있다. 수업할 때 쓰는 출력물들이라 토너로 찍힌 까만 글자들과 그 주변에 유성 잉크로 쓰인 알록달록한 글자들이 어지럽게 자리했다. 그래, 찻잔에서 피어올라 사라지는 그 움직임에 눈길이 끌리기 전까지는 이 출력물들에 글자를 더하고 있었다.

 그 빼곡한 활자들 위에 놓인 것은 거의 닳아 없어지기 직전인 몽당 지우개. 볼펜 자국과 지워지다 만 흑연이 묻어 지저분하다. 그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인 종이쪽지들, 책상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수업자료들. 한쪽은 너저분하고 다른 한쪽은 반듯하다. 반투명한 쓰레기통에 담긴 휴지 조각은 잔뜩 구겨져서, 마치 수분 없이 말라버려 부서지기 직전인 나비의 날개 같다. 그 주변에 놓인, 치우는 걸 깜빡한 납작한 도자기 화병에는 얼마 전까지 노란색의 버터플라이 라넌 두 송이가 담겨 있었다. 제자리에 가져다 두기 귀찮아서 방바닥에 버려두었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권은 엄마가 보던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서 얼마 전 막 뜯은 A4 용지 옆에 있으면 누렇다고 해야 할 정도다. 작년에 새로 산 노트북과 그에 딸려온 무선 마우스의 광택은 여전히 품질 보증 기간이 남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 마우스에는 또 희게 빛나는 창문 한 조각이 비친다.

 노트북 너머, 1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아리보리색으로 바랜 벽지 위에 우리가 붙어있다. 종이 액자 속에 담긴 찰나. 그 속의 너와 나. 행복하게 웃고 있는 너, 수줍게 너의 볼에 키스하는 나. 너에게 안겨 사진을 찍던 그 날에도 나는 하얀 티셔츠를 입었다. 봄하늘 같은 연청바지도, 너의 짙었던 티셔츠도, 내 티셔츠 한쪽의 작은 그림도 흑백으로 바랬지만 나의 티셔츠만은 여전히 희게 빛난다. 그날은 2018.05.22. 왼쪽 상단의 그 글씨도 희다. 흑백사진 속 희고 검을 뿐인 무채색들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빛이 머문 곳처럼 따뜻하다. 아마도 그건 그 속에 그날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날로부터의 시간들을 우리가 함께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잔 차를 우렸다. 펄펄 끓는 철주전자의 물을 찻주전자에 꼭 한잔만큼만 부어 초를 센다. 찻잔에 따르면 또다시 김이 피어올라 공간 속으로 녹아든다. 한국 도예가의 손에서 빚어진 찻잔은 따뜻하고 매끈하다. 그 속에 자박하게 고인 찻물에는 또 빛이 뿜어지는 창문이 담겼다. 따르다 흘린 물에도 그 조각이 반사되고 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대만의 청화 백자 주전자에는 찻잔과는 다르게 서늘함이 서렸다. 따뜻한 찻잔과 서늘한 찻주전자를 받치고 있는 중국산 자기 다판은 광택이 전혀 없는 게 어딘지 생기가 없어 보인다. 무기질스럽게 죽어 있는 모양. 나는 나도 모르게 팔뚝을 한 번 쓸어보았다. 축축한 내 손마저 차가웠다.

 그게 싫어서 다시 눈으로나마 따뜻한 빛을 쫓았다. 책장에 꽂힌 책등과 속표지에 빛이 머물러 있다. 흰색의 책등이 많은데 다 색깔이 다르다. 어떤 건 색이 바래 누런색이 섞였고, 어떤 건 너무 하얘서 정이 없고, 어떤 건 지저분하고, 어떤 건 따뜻하고 또 어떤 건 차가웠다. 빛을 받아 따뜻해진 곳에 절로 시선이 멈추었다, 또 다른 빛을 좇아 옮아갔다. 그 아래 칸의 광목 코스터가 따스하다. 다이어리 사이에 삐죽 나와 있는 엽서 귀퉁이에도 온기가 느껴진다. 빛이 머문 곳에 온기가 번진다. 잠 못 들고 지새운 밤을 지나느라 창백해진 얼굴에도 그 빛이 옮겨오는 것 같았다. 빛을 받아 따뜻해진 피부와 김이 오르는 찻물로 데워진 속이 느껴졌다. 새삼스레 얼굴에 더운 피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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