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쉼표
시간 추가 여름의 초입을 지나 한가운데로 기울고 있다. 장마철의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내 방 식물들이 푸릇푸릇 해져간다. 요즈음에는 식물들이 변화하고 자라는 것 하나하나 모두 놓치지 않고 눈길을 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버텨가며 내달리던 학기가 얼마 전에 끝난 덕분이다. 다시 시작하는 대학 생활은 즐거웠지만 그다지 여유롭지는 않아서, 나는 늘 흘러가는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가다 보니 당장 급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면 챙기기 어려워서 그저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팽개쳐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가 버려두었던 것은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작은 것들이었지만 내 삶에 있어서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어서, 그것들을 챙기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나’의 일부는 조금씩 마모되어 갔다. 사실 그 소중한 것들은 바로 ‘나’의 일부였던 거다.
식물을 돌보는 일, 깨끗한 책상에 소담한 찻자리를 차려 나를 대접하는 일,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는 일. 그런 작은 일상들을 가꾸는 일. 그것은 실은 급하지는 않아도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을 가꾸는 일이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그 작은 일들이 우리의 바쁜 일상 속의 쉼표가 되어준다는 걸 잊고 있었다. 문장 속에 찍힌 꼬리가 달린 작은 동그라미, 쉼표는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일을 해낸다. 쉼표는 우리가 잠깐 멈춘 그 호흡 속에서 문장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짧은 문장 사이에서도 긴 여운을 자아내며 문장의 한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삶에서도 쉼표 같은 순간이 필요하다. 일상을 가꾸고 보살피는 잠깐의 틈, 그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한 문장을 쉼표 없이 끝맺고 나서야 조금의 틈도 없었던 몇 달이 얼마나 숨 가빴는지 알아차렸다. 단순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 일상을 돌아보고 깎여나간 곳은 가꾸고 보살폈어야 했다. 적절한 곳에 쉼표를 찍어가며 써나가고 있는 새로운 문장은 그 전의 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여유롭다. 견딜 수 없을 것처럼 힘들지도 않고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치지도 않는다.
나는 요즘 식물을, 내 방을, 내 일상을, 마침내는 나를 가꾼다. 매일 식물을 살피고 변화를 관찰하는 건 내 삶까지 푸릇하게 만들고 있다. 돌돌 말려있던 연둣빛 새순이 쫘악 펼쳐질 때면, 곁가지를 뻗으며 쑥쑥 자라는 초록빛 줄기를 볼 때면 그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해서 웃음이 난다. 그 웃음은 식물들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웃음이기도 하다.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은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한다. 잘 정돈된 방에서 소담하게 찻상을 차려 나를 대접하는 일은 또 얼마나 나를 충만하게 하는지. 따뜻하고 향기로운 찻물이 내 속을 데워줄 때면 조금쯤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깨끗한 방과 향기로운 찻자리와 푸릇한 식물들이 숨 가쁜 나날 속에 소모된 나를 다시 채워주었다. 그것들을 가꾸는 일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한 부분인지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중이다. 가득 채워진 몸과 마음으로 하는 모든 일이 다 즐겁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식물을 살피며 매일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좋은 차로 나를 대접하려고 한다. 당신에게도 바쁜 나날 속에서 일상을 가꾸는 일이 있다면 부디 적절한 때에 그 순간을 챙길 수 있기를. 나처럼 식물을 돌보는 일이든, 방을 정돈하는 일이든, 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든, 좋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든. 어떤 일이든지 당신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그런 쉼표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다 보면 당신이 써 내려가는 한 편의 글은 당신을, 그리고 그것을 읽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