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90년대에 태어났는지……
올해부터 90년대에 태어났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됐다. 다만 생물학적인 나이를 떠나서 90년대에 태어난 모두가 '어른'이 됐는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다. '잘 모르겠다'는 으레 이런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말인데, 우리 90년생들이 탄생시킨 최고의 유행어라고 하겠다. 의도된 유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글 뭉텅이 대부분의 내용이 '잘 모르겠다'는 것이니까, 의심이 된다면 끝까지 읽어보는 것도 권해볼만 하다.
태어날 때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성, 피부색, 국적, 지능, 신장과 체형, 부모가 될 사람과 그들과 닮은 나의 외모까지. 실상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라곤 몇 개도 없다. 음……뭐가 있었더라? 대체 뭐가 있었지?
몇 년 전. 살을 에는 바람에 이따금 진눈깨비가 섞여 불었던 그 날, 나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나왔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음. 끝났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수능에 걸었는데, 시험이 끝나도 인생은 계속 되는 것이었다. 지난 십이년 간(물론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고 할 수 있는 건 마지막 일 년 뿐이지만) 그 시험만을 위해 시간이 흘렀었는데.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꼼짝없이 끝난 줄 알았던 영화가 처음부터 다시 상영되는 기분이라고 할까? 것도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PC전원을 켜고, 평가원이 공개한 답지를 확인했다. 날 끝까지 괴롭혔던 그 '수리영역 나형' 문제의 답은 4번이었다. 아찔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4번과 5번, 이 두 선택지 가운데 답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5번을 마킹한 것은 명백한 내 의지였고 선택이었다. 불현듯 똑같은 유형의 문제를 수십 번은 풀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또 그 판단미스 하나로 깎여내려갈 점수, 그리고 내 남은 인생이 어느 정도일지를 상상했었다. 정말이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틀렸다'는 결과값을 돌려받는 것이, 당시의 내겐 감당할 수 없을만치 억울한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그런 일들 투성이들인데…… 그러니까.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들 때문에 예고없이 우울해지는 일들 말이다.
답을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수능이라는 시험 그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곧 '그따위 나약한 생각이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탈바꿈했고, 머잖아 도착한 수능 성적표며 그 점수로 지원가능한 대학교들의 목록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어른이라고 배웠으니까. 하기야 이제는 정말 스무살아니냐고.
한편 나는 스무살로부터 스물한살이 되면서, 또 스물두살과 스물세살, 스물네살…… 하여간 스물몇살이 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스스로 한 선택에 있어선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지만, 어쩔 땐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그건 부당해'라고 열을 올렸을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그건 부당해'라는 말로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두고 하는 표현이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담 내게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떤 게 있었나? 생각해보니 온전히 내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이 얼마나 있었지 싶다.배스킨라빈스 패밀리 사이즈 기프티콘을 선물받았던 그 때처럼, "엄마는 외계인을 다섯 번 주세요" 라고 했던 것만큼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소확행' 따위의 수십년 된 단어를 갖다 쓰면서까지 몇천 원 짜리 케이크며 키덜트용 장난감을 구매해대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과 그 저자분께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현재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가장 인기있는 그 책 말이다. 구태여 90년생 중의 한 개체로서의 입장을 말해보자면 그런 책으로밖에 우리 세대를 이해할 수 없는―달리 말해 '그런 책으로나마 이해하고 싶은'― 이 시대 자체가 터무니없이 슬프다는 쪽이다.
따지고 보면 불쾌할 이유도 없다. 내용의 신빙성이나 현실성을 떠나서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출간된 것과 우리 부모님 내지 상사가 되는 세대들이 그 책을 사서 읽는 것 모두 그들 나름의 노력이니까. 하지만 그런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90년생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 자체는 불가능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당신들인데.
기성세대가 이 글을 읽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90년생인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들 세대가 나를 모르듯 나 역시 그들 세대를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속편한 투정처럼 느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오히려 난 당신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억지로 힘들여가며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해해야할 것은 어떤 세대가 아니라 어떤 시대의 슬픔이다. 우리의 슬픔이 곧 당신들의 슬픔이 되고, 당신들의 슬픔 역시 우리의 슬픔이 된다는 사실이다.다른 세대로 태어난 우리는 같은 시대 위에 서 있고, 제각기 다른 영역에서 변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느냐면……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노력하고 있다. 당신들이 늘 해왔던 것처럼. 또 다른 방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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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