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도 아니고 저출산도 아니지만
나는 글 쓰는 일이 좋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시와 소설, 수필, 희곡은 물론 손편지까지 가리지 않고 즐겨 쓴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누가 써놓은 글을 읽는 것보단 내가 쓴 글을 읽게 만드는 쪽이 몇 배는 더 좋다. 지금이야 취미로 삼았던 일이 돈벌이가 됐으니'좀 더 잘 써야 해'라는 압박이 아예 없진 않지만. 나는 내가 집중해야 할 부분을 알고 있다. 잘 쓴 글과 재미있는 글이 다르다는 걸 이젠 알고 있으니까. 나는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존경보단 진심 어린 사랑의 대상이 되고 싶다. 이게 꽤 오랫동안 콘텐츠 기획을 해온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디서 '(부끄럽지만)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고 나면, 십중팔구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어떤 로망이라고 할까? 하여간 기분 나쁜 시선은 아니다. 나로선 주변에 흔치 않은 직군에 대한 호기심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기야 요즘 들어선 글로 밥을 벌어먹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 데다(어떤 일이라고 쉽게 돈을 벌겠느냐만) 이십 대에선 더욱이 찾아보기 힘든 추세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따라붙는 질문이 두 개 있다. 바로 "글 쓸 때 영감은 보통 어디서 얻으세요?"와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으셨나 봐요?" 다. 뭐 이런 류의 질문이 너무 상투적이라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사람에겐 처음 던지는 질문이 내겐 수백 번째 듣는 게 되다 보니 그 같은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가 자주 있었고, 덕분에 내 나름대로 솔직하고 좋은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게 됐다.
사실 '영감'이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느낌은 없다. 대부분은 믿지 않는 얘기지만, 글 쓰는 일은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낭만적 모습―오래된 타자기를 앞에 두고 몇 시간 동안 씨름하다가, 벼락처럼 놀라운 아이디어가 꽝! 하고 머리에 내리 꽂혀 신들린 듯이 위대한 작품을 완성해버리는―과는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미 경험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을 재료 삼아 재조립하는 과정에 가깝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른 작가들이 어떤 방식과 느낌으로 글에 접근하는지는, 본인이 아니고서야 모두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작가 개인의 경험이 창작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무척 많다. 가령 헤밍웨이가 남긴 작품 중에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거나 적어도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무기여 잘 있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작가 본인이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다. 하다못해 <노인과 바다> 도 쿠바에서 살던 시절 어느 어부에게 주워들은 썰을 거의 그대로 썼다고 하니 실존했던 사건이나 시공간을 창작활동에 반영시키는 건 별달리 요상한 일도 아닌 셈이다.
한편 수필을 쓸 때에는 특히 내가 경험했던 것들, 그러니까 당시의 상황이나 떠올랐던 감각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편이다. 도통 기억이 안 나는 부분에선 서사적인 허구를 섞기도 하지만, 그야 개연성을 위해 그럴듯하게 채워 넣는 정도지 아예 없던 이야기를 실제 일어난 일처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슨 소신이나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굳이 있었던 일을 어설프게 과장해봐야 아무 재미도 없지 않나.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살다 보면 참 '꾸며진 것 같은 일들'이 내가 사는 현실에 들이닥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런 경우는 곤란스럽다.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뤘는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얘길 지어내냐' 같은 말을 듣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음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깊이 생각해봤지만, 이 글을 쓰게 된 몇 가지 동기 가운데 이보다 더 강렬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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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7년 초였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봄을 앞두고 바람이 아주 차가웠다는 걸 미뤄보건대 1월이나 2월 중에 있었던 일 아닐까 싶다.
그 무렵 나는 창업 준비단계에 이르러 초기 투자를 유치하고자 꽤 자주 판교에 드나들었다. 창업자로서의 구색을 갖춘답시고 어울리지도 않는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2호선과 분당선을 타고 판교에 와서, 두 곳의 투자사 미팅을 끝내고 나오니 그새 해가 지는 중이었다.
국내 유수의 IT기업을 등에 업은 벤처투자사들. 이런 투자사의 사무실들은 꼭 거대한 유리 궁전의 가운데층쯤 위치해 있었다. 나는 그 건물들의 1층 로비에서 대략 세 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 정작 심사역들과 투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다 합쳐도 한 시간이 될까 말까 했다. 벤처투자사 직원들은 하나같이 말끔한 인상에 잘 다려진 정장을 입고 있었고, 나는 긴장한 나머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가 하면 생각이 얼어붙어 1분 넘게 아무 말없이 앉아있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 망쳐버렸다. 무려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날의 마지막 미팅을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던 길이었다. 사십 대 정도로 보이던 그 심사역은 날 건물 아래로 배웅하면서, "다음에 좋은 기회로 꼭 다시 봅시다" 하고 인사했다. 물론 그 투자사와 두 번째 미팅은 없었다. 나와 만났던 그 심사역 역시 다시 마주치지 못했다.
투자사 사무실에서 나오기 직전에, 나는 '투자 의사가 없으시다면 그렇다고 메일이라도 한 통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심사역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그 말만 믿고 보름을 넘게 기다렸다. 메일은 오지 않았다. 나는 보름이 다 지난 뒤에야 내가 '심사에 탈락'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기회로 다시 봅시다'라는 게 그들만의 작별인사라는 것도.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크고 번쩍이는 건물들이 많았다. 해 질 녘 노을은 유리 외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튕겨 나왔다. 너무 눈이 부셔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그날 아침 옷장에서 급히 꺼내 입었던 싸구려 트렌치코트가 내려 보였다. 보기 흉하게 엉겨 붙은 먼지며 하얀 보풀이 눈에 띄었다. 나는 왠지 창피한 기분이 들어 버스도 택시도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차를 탔을 땐 지척에 있는 곳 같았는데 말이다.
역에 도착할 무렵, 하늘은 해가 완전히 기울어 어둑어둑했다. 판교역 주변에는 널따란 평지가 몇 곳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사방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 살을 엤다. 역 근처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둥근 돌바닥을 따라 놓인 벤치가 몇 개. 노숙자 몇 명이 그 위에 드러누워 바람을 피했다. 추레한 차림의 직장인 두 명이 맞은편 포장마차에서 오뎅꼬치를 집어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느닷없이 배에서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먹은 거라곤 미팅 당시 내왔던 커피와 녹차 한 잔이 다였다. 이제 보니 허기가 쏠려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길에서 오뎅먹은 지도 꽤 됐다 싶어 포장마차에 다가가 섰다. 오뎅은 꼬치 세 개에 이천 원이었다. 말없이 종이컵에 오뎅국물을 퍼담아 마셨다. 너무 뜨거워 입천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머잖아 세 번째 오뎅꼬치를 집어먹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곁에 다가오더니 내 팔을 툭툭치곤 말을 걸었다.
"학생, 저기 옆에서 종이컵 좀 뽑아줄래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퍽 정정한 인상이었지만 짧게 깎은 머리에 듬성듬성 흰 얼룩이 섞여 노인 같은 면이 있었다. 하나로 정의 내린다면 아저씨보다 노인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죠, 뭐" 별달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한쪽 손을 뻗어 종이컵을 하나 뽑아 들었다. "국물도 퍼드릴까요?"
"그럼 좋고" 노인이 살갑게 대답했다. 나는 곧 종이컵에 국물을 퍼담아 내밀었다. "……자네는 장갑 안 끼나?"
"네?" 나는 갑작스레 바뀐 노인의 말투에 당황했다. 깜빡이도 없이 '자네' 라니.
"손이 이렇게 빨간데. 장갑 안 끼냐고" 노인이 재차 물었다.
"아." 나는 뒤늦게 벌개져 있는 내 손을 쳐다봤다. 주머니에 넣는 대신 덜렁거리는 웃옷 단추를 싸매고 걸어온 탓이었다.
"쯔쯔. 젊다고 그렇게 몸을 막 쓰면 되나. 앞으로 살 날이 오래 남았는데"
"아뇨, 뭐…… 오래 살 필요 있나요. 살만큼 살다 가는 거죠" 내가 대답했다. 왜 그런 대답을 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치도 않은 소리!" 노인이 냅다 호통쳤다. 정말 이렇게 말했다.
"……예?" 나는 순간 당황해서 눈썹을 치켜뜨고 말했다. "갑자기 무슨……"
"자네 세대가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육십 년대, 칠십 년대 난 사람들 다 먹여 살려야지. 안 그렇나?"
"아하……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먹여 살리겠어요? 저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겨운데요"
"아니야. 능력이 있어서 먹여 살리는 게 아니야"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계속 살기만 하면 되는 거지. 계속 살면. 원하지 않더라도 먹여 살리게 돼"
"……그런가요?"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갈수록 이상한 노인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서 자네 같은 청년들이 고생이 참 많지. 아주 불쌍해. 우리야 얼마 못가 죽으면 그만인데. 자네들은……"
"……"
이쯤 되니 귀찮아져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도 말을 끊고 국물이나 마실 뿐이었다. 웃긴 건 오뎅을 다 먹고 계산을 마친 뒤에, 어쩐지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정중히 고개까지 숙여가면서.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윽고 서울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나는 노인이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계속 살아가기만 해도 먹여 살리는 거라니. 그래 놓고 우리더러 불쌍하다니…… 우리가 왜 불쌍하지? 그 노인이 내 나이였을 땐 뭐가 있었는데? 적어도 우리 때는 보릿고개 같은 건 없었어. 스마트폰도 있고. 스타벅스에서 오천 원 넘는 커피도 사 마시는데. 어디 그뿐인가? 그동안 교육 수준도 높아져서 대학도 가기 쉬워졌고, 평균적으로 갖고 있는 지식도 비교가 안 되잖아. 이건 뭐 꼰대도 아니고. 뭐지? 별 이상한 노인네가 다 있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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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