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추워지는 날이면 후쿠오카에 가야한다 (完)

돌아오는 마음에 대해

by 이묵돌

오전 여덟 시에 알람을 맞춰 놨다. 료칸에서 제공하는 조식이 여덟 시 반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덟 시 십 분 쯤에 나란히 일어났다. 가운을 그대로 입고 나갈까 하다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실에 크게 나있는 창문을 열었다. 이슬내 섞인 찬바람이 풍겨 들어온다. 여덟 시라고 하면 해가 쨍쨍했던 것 같은데.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IMG_0262 (편집됨).JPG 일어나자마자 찍은 사진. 왜 찍었는 지는 기억이 안 난다


료칸에서의 조식은 특별했다. 밥 한 끼를 위해 별실까지 마련됐다. 내려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분주하게 상차림을 정돈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 친구가 '조식을 꼭 먹자'고 강조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난 기껏해야 부페식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정갈하게 차려진 일본 가정식이었다. 상이 차려진 모양이 무척 이쁘다고 생각했다.


IMG_0264 (편집됨).JPG 별실에서의 조식. 뭔가 대접받는 느낌


밥을 메인으로 반찬을 집어먹는 구조는 똑같다. 차이는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쓴다는 것. 순두부를 떠먹는 데 쓰는 숟가락이 있었지만 밥도 떠먹으라고 만든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밥은 적당한 찰기에 씹는 맛이 있어 무척 맛있었다. 다만 반찬은 전반적으로 단 맛이 강했다. 우리나라가 짜고 매운 맛에 익숙하듯이, 일본은 달고 시큼한 맛을 즐기는 것 같다.


IMG_0270 (편집됨).JPG 밥과 된장국까지. 전반적으로 달짝지근했던 것 같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별실에 그대로 앉아 삼십 분쯤 바람과 햇살을 쬐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친구는, 조선시대 때 양반가 한량으로 태어났다면 매일 이런 기분이 아니었겠느냐,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글쎄, 그럼 삶이 재미없을 것 같은데, 하고 말았다.


IMG_0271 (편집됨).JPG 새 소리가 들리고 그랬다


료칸 로비층에는 일본식 정원이 있었다. 날이 화창해선지 뭐든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정원을 좀 둘러보다가,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했다. 객실에 올라가는 길에 탁구장이 있었다. 나는, 배운 적 없는 것 치곤 탁구를 잘 치는 편이다. 드라이브가 뭔지도 모르는 친구를 처참하게 발라주고 올라왔다.


IMG_0277 (편집됨).JPG 로비 카페에서 마신 그냥 커피. 아메리카노는 없고 그냥 커피 밖에 없다고..


객실 의자에 앉아 좀 쉬다가, 각자 샤워를 한 뒤에 짐을 챙겨 체크아웃했다. 체크아웃은 열한 시 였는데, 난 열 시 오십 분 쯤부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친구는 알아서 내려오라며 먼저 나가서 체크아웃 절차를 밟았다. 난 열한 시 오 분이 돼서야 객실에서 나왔다.


IMG_0281 (편집됨).JPG 객실에 있던 나무 욕조. 컨셉이 충실하다


날씨가 다시 한 번 좋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항상 날씨가 좋았던 것 같다. 국어사전에서, '화창하다'는 표현에 자료사진이 들어간다면 이 날씨를 찍어 넣어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짐을 들고 료칸에서 후츠카이시역까지 십오 분쯤 걸었다.


IMG_0286 (편집됨).JPG 안녕, 다이마루 벳소


전날 캄캄해서 보이지 않았던 마을을 둘러봤다. 햇살이 좋으니 아무 길거리를 찍어도 그럴듯해 보였다. 후츠카이시역은 플랫폼 외에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역이다. 우리는 떠나올 때 탔던 JR선을 그대로 타고, 하카타역으로 돌아갔다. 삼십 분 정도 걸렸다.


IMG_0297 (편집됨).JPG 역 가는 길에 봤던 학교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다섯 시 사십오 분으로 예약돼 있었다. 친구는 일곱 시쯤이었다. 하카타역에 공항으로 바로 가는 노선이 있으니까, 근처에서 서너 시 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짐을 맡겨놓을 곳이 필요했는데, 친구가 하카타역 근처에 있는 '편집샵'에서 천 엔 이상 구매하면 짐을 맡아준다더라, 하는 얘기를 했다. 나는 편집샵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잘 모르겠는데, 뭐 면세점에서 살만한 물건들 모아놓은 거겠지,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흠, 느낌이 안 좋은데, 싶었지만 일단 갔다. 편집샵이라는 곳을.


IMG_0302 (편집됨).JPG 편집샵 가는 길. 정작 편집샵 사진은 찍지 않았다


천 엔이면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다. 우리는 여행 중이고, 기념품 상점에서 만 원 정도 쓰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나 싶었다. 근데 가보니까 정말 살 게 없었다. 아무 거나 사기에는 돈이 아깝고, 누구한테 선물을 주든 내가 쓰든 살만한 물건이 있었으면 했는데, 구미가 당기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였다. '정말 아무 것도 살 게 없는데' 하고 한참 고민하던 친구를 위해, 나는 천육백 엔짜리 와인을 결제해버렸다. 포장 퀄리티만 봐도 바가지가 확실했다. 그래도 짐은 맡겨야하니까.


IMG_0307 (편집됨).JPG 상가에서 봤던 캡슐형 오락기. 해보진 않았다


우리는 짐을 맡긴 뒤에, 멋쩍은 표정으로 편집샵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하카타역에 붙어있는 한큐백화점과 쇼핑몰들을 둘러봤다. 난 명품에 취미도 없고, 딱히 쓸 돈도 없었기 때문에 금방 빠져나왔다. 조금 나른해져서 스타벅스로 갔다. 커피 두 잔 시켜놓고 얘기나 좀 하다가, 맞은 편 건물에 있는 상가를 한 번 더 둘러봤다. 칠 층인가 팔 층 쯤에 오락실이 있었다. 난 농구 게임을 두 판정도 했고,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있는 게 신기해서 하나 뽑아 먹었다.


IMG_0306 (편집됨).JPG 자판기에서 팔던 아이스크림. 자판기이면서 냉동실이기까지


편집샵에서 짐을 되찾아 나왔을 때는 이미 네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탑승수속은 이륙 한 시간 전에 마감한다. 공항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건 별 수 없었다. 하카타역에서 물어물어 공항선을 탔다. 이백육십 엔이었다.


IMG_0310 (편집됨).JPG 공항선까지 가는 표. 이백육십 엔


공항선에서 내린 뒤에는 국제선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한 번 더 타야하는데, 요금은 받지 않았다. 난 국제선 청사 앞에 내려서, 후쿠오카의 날씨를 마지막으로 가늠해봤다. 하늘은 몹시 높고, 구름은 드물며, 공항 너머 풀밭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후쿠오카에도 여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IMG_0316 (편집됨).JPG 날 인천으로 데려다 줄 제주항공 여객기


탑승수속은 금방 끝났다. 친구는 나와 어깨를 부딪치면서, 내년에는 서울에서 보자, 들어가서 면세점이 어떤지 연락해줘라, 같은 말을 하고 헤어졌다. 깔끔한 작별이었다. 사람이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은,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물며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편히 작별할 수 있는 지,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떠나보낸 시간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비행기에 올라탔다.


IMG_0315 (편집됨).JPG 면세점은 그냥 무난했던 것 같다. 선물용 과자를 몇 개 샀다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지난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영종도는 해가 넘어갔다. 바닷바람인지 가을바람인지가 불어 으슬으슬 추웠다. 바람막이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나는 공항버스를 타고 신대방역까지 갔다가, 택시로 갈아타 집으로 향했다.


IMG_0320 (편집됨).JPG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


귀국하면 곳곳에 보이는 한글에 어색할 줄 알았는데. 삼박사일로는 택도 없었던 모양이다. 너무나 익숙한 동네. 낯설음으로 낯설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한 집.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갔다. 한 때 자주 갔던 카페에 불이 꺼져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은 없고 '임대'라는 글자만 크게 써 붙여 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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