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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11. 2022

여로에서 (29)

그땐 알 수가 없다


야간열차가 어떤 밤길을 뚫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갔는지 나는   없다.




 나는 곧 도착한다는 승무원의 말에 잠에서 깼다. 화장실에 가서 왜인지 퉁퉁 부은 얼굴을 더듬어가며 세수를 했다.

 페이퍼 타올로 얼굴을 닦고 거울을 보는데 진짜 존나 못생겨서 놀랐다. 단순히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라거나,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서 모양이 빠진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턱과 목이 함께 접혔다. 밤새 운 것처럼 눈두덩이가 부풀어올라 있었기 때문에, 눈도 완전히 떠지지 않는등 전체적으로 추하고 볼썽사나운 몰골이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간다면 “러시아가 사람을 이렇게 망쳐놨네…” 같은 소리를 무조건 듣게 되겠지.

 ‘아직은 여로… 아니, 여행 중이니까 괜찮아. 원래는 이렇게까지 생기지 않았을 거야’

 나는 비겁한 자기위로와 함께 조용히 마스크를 올려썼다. 하차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혼자 마스크를 쓰고 있는 . 같은 객실의 사람들은 ‘ 친구는 방역의식이 뛰어나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열차는 오전 여덟시오십분  상트페테르부르크역에 도착했다. 모스크바와 연결된 노선의 종점이어서인지 역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콥스키Moskovskiy 지어져 있다.  내부 구조는 중세교회의 신랑처럼 길쭉한 직사각형 홀이다. 광장같은 중앙부로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양측으로 상가들이 늘어선 모습이 전날밤 출발한 레닌그라츠키 역과 흡사했다.   가운데에는 누군가를 기념하는 동상이 솟아있다. 그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주변 돌바닥을 거니는 비둘기들의 조합이 이채롭다. 플랫폼에서 통하는 길이든 천장 어디서 뚫린 곳이 있든, 어딘가 비둘기가 드나들만한 야외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역사에서 맞는 아침은 왜인지 쌀쌀한 느낌이 있다.



 역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든 생각은 ‘뭐야 생각보다 훨씬 춥잖아’ 였다.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어서 날씨 정보를 다시 확인해봤다. 역시 기온은 영상 2도로,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이정도면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아주 따뜻하기라도 할 줄 알았다. 나는 이미 영하 이십도 밑을 넘나드는 혹한의 도시들도 몇 군데나 지나오지 않았나? 영상 2도의 추위(웃음)쯤이야 춘추용 셔츠 한겹만 입고도 내집처럼 활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가지고 있는 옷을 거의 다 껴입은 상태였음에도 매서운 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걸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역 앞까지 나가서 택시를 호출했는데, 도착 예정시간인 칠 분을 그대로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도로 역 내부로 들어가 몸을 녹이기까지 했다.

 ‘왜, 왜 이렇게 추운 거지? 기온 상으로는 서울보다도 여기가 따뜻해야 하는데. 항구도시라서 바닷바람이 부는 건가?’

추위의 본질이 낮은 기온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날씨였다. 기온은 낮아도 바람은 자주 불지 않았던 시베리아의 아침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좀처럼 해가 들지 않는 흐린 날씨 때문에,  번화가라는 넵스키대로고골의 단편소설에도 등장하는 거리조차 황량하고 음울한 대도시의 퍼즐같아 보였다. 순전한 첫인상에 의존해 이야기했을 ,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결코 유쾌하다고 말할  없는 도시였다.



 택시를 잡아 타고 삼십 분쯤 도시를 가로질렀다. 숙소인 Issac Square는 성 이사악 성당이 위치한 바로 옆 블록에 있었다. 성 이사악 성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오면서 그런 성당을 몇 채나 봐왔던지. 이제는 그런 걸 봐도 ‘와, 진짜 크네… 짓는 데 꽤 힘들었겠는데…’ 같은 감상밖에 남지 않았다. 그대로 밖에 있다간 손이 얼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곧장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숙소에 진입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건물 오층을 개조해 호스텔로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내부에는 당연하게도 엘리베이터가 없다. 나는 이제 이런 것들에도 진력이 났다. 이런  밖에서 봤을 때나 ‘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지, 정작 그런데서 며칠이라도 생활을 할라치면 낡은 계단과 화장실, 당최 이해가 안되는 건물 구조 등에 짜증이 솟는다. 체크인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알아서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래도  자체는 깔끔하고 창문 밖의 도심뷰도 나쁘지 않았다. 창가가 협소하고 창백한 것이 <피아니스트> 나오는 은신처 장면을 연상케했다. 물론 나는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유태인도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방안에 갇혀있을 필요는 없어서 침대에 누워 쉬다가, 글을  쓰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숙소에서 도보로 불과 이십 분 거리에 있었다. 가는 길도 지극히 단순했다. 길 왼 쪽으로 뻗어있는 공원길을 따라 죽 걸어가기만하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미술관 가운데 한 곳이 등장한다. 제대로 보려면 열흘 넘게 미술관에 살다시피해도 부족하다는 초 거대규모… 그에 비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 남짓이다. 선택과 집중은 필수다. 체력은 기본이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미술관 가는 길목에 있던 식당에 냅다 들어갔다. ‘탄두리’라는 이름의 인도 음식점이었다.  

기합이 너무 들어갔는지 과식을 하고 말았다. 치킨 샐러드와 샤프란 볶음밥, 버터카레에 후식으로 커피와 라씨요구르트 음료까지  먹어치웠다. 도중에 ‘이거 오히려 몸이 무거워지는  아닌가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식당을 나가기전에 장을 비우면 그만이었다. 세계 최대 미술관을 작정하고 둘러볼 생각이라면  정도는 먹어둬야 하는 것이다. 식당 화장실 변기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신이 퍼뜩 들었다.  



 ‘말도 안 돼. 언제 이렇게 식탐이 늘었지? 서울에서는…’

있던 음식도 안 먹어서 썩히고 내다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밥은 반 공기를 겨우 먹었고, 가끔 치킨이 먹고 싶으면 반 마리를 사서 두 끼니로 나눠 먹었다. 러시아 땅을 밟고 나서 이것저것 많이 먹어대다보니 위가 확장된 게 틀림없었다. 몸이며 얼굴이 잔뜩 부은 것도 바뀐 식습관 때문이겠지. 어쨌거나 여행은 그 자체로 해방감을 담보하는 길이다. 감당 못할 해방감은 정신적 공허감으로 연결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텅 비어있는 듯한 기분’을 허기와 구분하지 못한다… 다들 여행길에 돈을 물쓰듯 쓰는 건 그런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사고, 먹고, 찍고—그 행위 자체만으로 보면 집에 있는 것보다도 단조로운 나날들에 큰 돈을 치른다. 이유는 그냥. 허전하니까….

 “하, 하하!”

 화장실 거울을 빤히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문 밖에 누군가 있었다면 내가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나는 먹는 양이 늘었다는 것 자체보다도 내게 그런 욕구가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웃겼다. 참으로 전형적인 욕구인 것이다. 거기엔 비장함도 특별함도 남다른 감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느끼는 지루함이나, 거기서 벗어나겠다고 머리를 굴린 결과까지 꼭 빼닮았다. 이국에서 먹는 새로운 음식들, 평소 보던 것과 다른 모양의 건물들,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 난 내게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돈도 없고, 상황도 여의치 않고, 같이 갈 사람도 전무한데 반드시 가야할 이유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나는 ’그런거 필요하지도 않고 원해본 적도 없어’라는 유아적 발상에 의지해 버텨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다참다 ‘저질러버리는’ 여행밖에 하지 못한다.  

 으끅끅 소리가 날 때까지 웃고 나서 보니 스스로가 조금 불쌍해지기도 했다. 마감이든 뭐든, 절벽같은 궁지에 몰린 뒤에야 허락되는 인간. 떨어져 죽든 어쨌든 간에 날갯짓은 해보고 싶어. 그런 생각도… 어째 표절 같기도 하다. ⌜날개⌟의 마지막 장면이었나? 날자, 날자, 날자. 내가 느끼기엔 너무도 희극적인 결말이었다. 자기연민에도 독창성은 중요한 요소다.



오늘날 예르미타시 미술관의 본관으로 쓰고 있는 건물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차르가 살았던 겨울궁전을 개조한 것이다. 민트색 배경에 백금기둥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모습을 보면 과연 미술관보다는 궁궐에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가히 할 말이 없어지는 화려함이다. 건물의 웅장함보다는 아름다움에, 코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저한 거리감에 압도된다. 혁명이다 뭐다 해서 복잡한 시기와 사건을 수차례 거쳐왔음에도 멀쩡하게 세워져 있는 걸 보면 ‘역시 이런 걸 부수는 건 좀 아깝지’ 같은 공감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미술관이 된 궁전. 그 앞에 있는 광장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장식돼있다. 높은 것만큼 두꺼운 돌기둥으로 돼 있어서, 얼추 보기에도 무지하게 견고해보인다. 그 앞에서 대충 휴대폰을 고정해놓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파랗게 뜬 하늘과 에메랄드 색 궁전, 그 앞에 선 내 모습이 하나하나 따로 놀고 있어서 마치 합성사진처럼 보였다.

 ‘기껏 갔다왔더니 뻥치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싶어서 몇 장 쯤 더 찍어볼까 하다가, 왕과 왕비 의상을 입은 관광객 헌터 한 쌍이 다가와 말을 걸어오려하기에 후다닥 미술관으로 뛰어들어갔다. 그거야 딱 봐도 사진 같이 찍은 다음에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할 것 같은 분위기 아닌가.

 예르미타시 미술관 내부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글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얼마쯤 함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표값은 매우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로 쓰이는 몇 개의 방만 제대로 본다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만한 레벨의 방이 수백 개나 되어서 문제일 뿐이다. ‘기왕 왔는데 전부 보고 가야지’ 같은 애매한 발상으로는 시간도 체력도 남아나질 않는다.

 누가 러시아 미술관 아니랄까봐 ‘존나게 많은 전시품, 상대적으로 빈약한 설명’ 이라는 기조는 예르미타시에도 적용된다. 역시 오디오 가이드가 있긴 하지만 귀에 뭘 꽂고 속편하게 보고 있을 시간까지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냥 웹으로 지도를 띄워놓고 관심있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주로 찾아다니며 감상하는 방법을 썼는데, 그만해도 금방 폐장시간이 됐을만큼 소장 컬렉션의 면면이 어마무시하다. 러시아가 서유럽에 가지고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반영하기라도 한듯.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시시각각으로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킨다.

 나로 말하자면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이 뛰어난 인간이라곤 할 수 없는 부류다. ‘엄청나게 유명한 화가의 매우매우 훌륭하다는 작품’을 보고도 ‘솔직히 내 눈엔 그저 그런데’ 하고 머리를 갸웃하는 일도 많다. 다만 서양미술사와 거기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아서, 책이며 관련자료를 심심할 때마다 찾아읽는 습관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미적 소양은 ’거기에 있는 컬렉션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겨우 눈치채는 정도라고   있다. 그러나 예르미타시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뒤러의 판화가 줄줄이 나오는가하면, 레이놀즈, 게인즈버러의 영국발 초상화에 루벤스, 반다이크, 렘브란트로 이어지는 것이 말그대로 거를 타선이 없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거의 삼십 분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특히 루벤스의 경우 본인의 초상화를 포함해 커다란 내실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난 루벤스의 그림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방에서 사십분 쯤 앉아있다가 나올 때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비싸게 팔리는 화구 브랜드가 아니라 위대한 플랑드르 화가의 이름이다.

하여간 그림  그린다는 서유럽 국가 그림은 거의  소장 중이었다. 벨라스케스, 고야의 스페인을 거쳐 르네상스 삼대장인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 이르는 전시장은 그야말로 전율의 연속이다. 인상주의 이후의 그림들은 대부분 본관 맞은편의 신관 건물에 전시돼있기 때문에,  이전까지 유럽의 회화 메타를 지배했던 이태리 컬렉션에 유독 공을 들인 느낌이 있었다. 레오나르도의  모자가  각각 리타와 브누아라고 부르는  하다이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카라바조의 그림도   있었다. 카라바조의 주요 컬렉션은 대부분 로마에 있기 때문에, 내가   카펫을 그린  뿐이지만. 좋아하던 화가의 흔적은 눈으로 더듬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된다.  외에 대리석을 망고처럼 썰어놓은 듯한 미칼란젤로의 조각상도 오랫동안 보았다. 알에 갇혀있는 새끼 조류처럼, 몸을 움츠려 앉은 모습의 소년상이었다.



만약 예르미타시나 다른 세계구급 미술관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가이드에게만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해본 다음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만약 루브르까지 가놓고 모나리자만 보고 나온다면—물론 그게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는 하지만—아무래도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아무리 멀리서 왔다 한들 모든 걸 담아 돌아갈 수는 없다. 나 자신이 좋아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두고 가면, 기대한 것과 함께 생각지 못한 발견을 덩달아 즐길 수 있다.

 선물용으로 기념품 몇 개를 샀다. 마그넷 하나에 구십루블밖에 안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해가 길어져 저녁시간이 되었는데도 날이 제법 밝았다. 슬슬 PCR검사를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검사소까지 걸어갔다. 반나절 가까이 미술관을 걸어다닌 통에, 이삼십분 걸어갔을 뿐인데도 발목 관절이 떨어져나갈 것같이 아팠다.

  심지어 검사소에서는 수고한 보람도 없이, ‘지금은 끝났으니까 내일 오후 세 시에 다시 와라’는 답변만 받고 돌아왔다. 핀란드 입국 절차에 코로나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얘긴 없는 것 같지만… 비행기 탑승까지는 적어도 확실한 문서가 있는 편이 나을 테니까. 만약 또 다시 양성이 나오면? 그쯤되면 살아있는 생물병기로서 크렘린궁에 쳐들어가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방문할 예르미타시 신관, 그리고 러시아 국립 박물관 입장권을 확인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한 번 눕고나니 다시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었다. 무릎 아래 종아리부터 발끝까지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부어있었다. 습관대로 종아리를 꾹 눌렀더니 어딘가 끊어진 것처럼 살벌한 통증이 느껴졌다.

 비단 다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온 몸에 누적된 피로가 이 날을 기점으로 만기해지라도 된 양 콸콸 터져나온 느낌이었다. 나로선 살아서 한 번 가볼까말까한 미술관 방문 이벤트에 지나치게 무리해서 몸을 움직인 것이다. 몇몇 작품들 앞에서는 몸이 바짝 굳어 숨까지 참고 그랬으니까. 내 몸의 같잖은 근육들이 파업상태에 돌입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데 이런 몸상태면… 내일 신관이고 나발이고 못 가는 거 아닌가? 숙소에서 잠만 자야하는 거 아냐?’

 나는 대자로 뻗은 뇌를 풀가동시켜 생각했다. 집을 나온지도 한 달이 됐으니 여독이 쌓인 건 당연한 얘기고, 진통제는 이미 먹었으나 효과가 시원찮다. 이럴 때는 마사지를 받거나 동네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게 직방인데. 병원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다. 남은 것은 마사지샵 뿐이다. 물론 비용이 만만찮겠지만.

 때마침 어떻게든 돈을 써야할 유인이 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제재가 갈수록 심해지자 루블화 가치가 겉잡을  없이 떨어져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면 환전 자체가  된다는 소식도 있었던 것이다. 이럴  알았으면 만오천루블씩이나 뽑아두지 않는  나았을 텐데. 지금으로선 이미 뽑은 돈을 다시 넣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러시아를 빠져나가는 순간 똥값이 되는 돈이니 국경을 넘어가기전에  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내가 러시아까지 가서 타이 마사지를 받게  사연은 대충 이렇다.



 그렇게 막상 큰 돈 주고 마사지를 받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혹시 찾아갔는데 불건전업소면 어쩌나’ 싶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판국에 러시아까지 와서 원정 성매수를 시도했다는 둥 하는 오해를 샀다간 새 책이고 뭐고 내 인생 자체가 끝장날 위험도 있다... 난 정말 몸이 너무 아파서 마사지를 받고 싶었을 뿐인데. 성매매업에 안마를 결부시킨 최초의 인간이 누군지는 몰라도, 멀쩡한 서비스업에 부적절한 단어를 엮어 여러사람 피곤하게 만든 죄값은 치렀길 바란다.

 나는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전 마사지’ 같은 키워드로 블로그 리뷰를 검색, 사진까지 일일이 찾아봐가며 ‘부적절한 기미라고는 전혀 없는’ 마사지샵을 한 군데 찾아갈 수 있었다. 안마사를 ‘마스터’라고 부르는 것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마스터라면, 아마도 내 몸을 믿고 맡겨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안정감이 있는 칭호다.

 구십분간 내 몸을 잘게 다져줄 마스터는 태국 출신의 중년 아주머니였다. 외국인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어서일까? 영어 구사에 거리낌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아귀힘도 강력해서 두피 마사지를 할 땐 머리통이 감자처럼 으깨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섰다. 나는 되도록 비명지르길 자제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한 달간 러시아를 돌아다니며 혹사한 다리에 이르러서는 “끄으흐으흐흑” “으우으우~” 같은 괴생명체의 음성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다리가 진짜 엄청나네요. 안 아파요?” 마스터가 공손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파요” 나는 대답했다. “죽을 것 같아요”

 “이건 따로 마사지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내일도 시간 되나요?”

 “밤쯤에는 될 것 같은데… 공짜로 해주시는 건가요?”

 “하하. 당연히 아니죠” 마스터는 단도직입적이었다. 오히려 방금 말이 조금 심기가 거슬린듯, 한 손에 걸터잡고 있던 발목을 확 비틀어 근육을 풀어주었다.

 “끄흐후후흐히”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근데 정말 발이 부츠같다니까요.”

 “부, 부츠?”

 “신발이요. 슈즈shoes. 발이 너무 딱딱하다고요. 걸어다닐 일이 많나요?”

 “그럴거에요. 앞으로 며칠은 더” 내가 말했다.

 “그럼 발 마사지만 예약해놓고 가세요. 이건 심각해요”

 …지금 뭔가 의사처럼 말하고 있지 않나? 나는 순간 마스터의 장사수완을 의심하면서 물었다.

 “뭐, 예약은 할 수 있지만… 못 올 수도 있어요. 다음날 일찍 다른 나라로 가야하거든요.”

 “그럼 그렇게 해요. 필요하면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못 오면 할 수 없고요.”

 나는 마스터의 말대로 다음 날 똑같은 시간, 늦은 밤에 맞춰 발 마사지를 예약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뭐, 국경을 넘기전에 돈을 다 못 쓰는 것 보다는. 발 마사지를 받을 가능성을 염두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사지를 받고 나니 몸이 훨씬 가뿐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몸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참으면서 여기까지 온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뭐, 그런 것이야 당장 눈앞에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되는 일들이지만.

 오후 열 한시. 나는 마사지샵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말린 파인애플 한 봉지,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탄산 없는 물과 레몬티 한 병, 그리고 꼬꼬면을 사서 숙소에 돌아왔다. 나는 돌아간 곳에서 물을 끓인 뒤, 라면을 먹고 양치를 한 것 까지만 겨우 기억해낼 수 있다. 다른 건 알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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