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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19. 2022

습작

백아흔번째


 “지난해 당신은 ‘고양이 죽이기’ 카페를 개설해 수만 명의 회원을 모집했습니다. ‘길고양이는 털가죽을 덮어쓴 해충’이라는 표어를 걸고, 인터넷 상에 고양이를 쉽게 포획하고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자료로 만들어 회원들에게 공유했죠. 지역별로 그룹채팅을 만들어 조직적인 고양이 살해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이의는 없으시겠죠? 법정에서 다 밝혀진 내용이니까요.”

 “네. 맞습니다.” 남자는 마이크를 턱 쪽에 바싹 붙이고, 축축한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그건 꽤 멋진 일이었죠…….”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던 장내의 사람들 몇 명이 구역질을 했다. 남자의 태연한 태도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게 끔찍한 악몽이라는 듯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관계자들은 가설 펜스를 뛰어넘어 남자에게 달려들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솔직히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인터뷰이의 입장이나 상황을 가급적 이해하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그렇습니까?” 

 “네. 그렇지만 이 경우는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고…… 이해하려는 엄두도 나지 않네요.”

 “아, 이해합니다.” 

 “…….” 사회자는 순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추악한 남자를 향한 혐오감과 증오심, 차마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기겁하는 눈빛이 방송용 카메라에 그대로 담겨 전국에 송출됐다. “사실은 저도 집사거든요. 그래서 이 사건이 더더욱….”

 “아, 고양이를 키우십니까?”

 “……예. 집에 두 마리를”

 “뭐, 그것도 멋진 일입니다.” 남자는 산발한 머리를 좌우로 까딱이며 말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 아닙니까?”

 “고양이가 싫은 것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건 다른 문제죠. 저는 후자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사회자는 일부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그 말 자체는—그로 인한 결과를 배제할 수 있다면—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어쨌거나 논리적으로는 어긋나는 게 없었다.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점이 더욱 역하게 느껴졌지만. 

 “저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지만요. 머리도 엉망진창이고, 수염도 덥수룩하고, 몸도 뚱뚱하고 못생겼으니까요. 딱 봐도 지독한 냄새가 나게 생겼잖아요. 그렇죠? 그럴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괜찮아요. 익숙하니까요.”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아, 그게 아니면 제가 ‘고양이 죽이기’ 카페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몇 달 동안 수만 마리의 길고양이를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싶은겁니까?”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누구나 싫어하지 않을까요?” 

 “전혀요. 대부분은 싫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싫어한 건 아니었습니다. 길고양이가 들끓는 것에 대해 분노를 가진 사람이 저만 있는 것은 아니었죠…… 히틀러가 혼자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나요? 그렇지 않죠. 히틀러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사상을 실행에 옮겨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저 혼자 그 많은 길고양이들을 박멸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박멸이라는 단어는… 그보다 지금 자기 자신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건가요? 그를 존경합니까?”

 “이것봐요. 당연히 저는 히틀러가 아닙니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아서 사람을 죽였지만, 저는 기껏해야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서 고양이를 죽였을 뿐이에요. 그 두 가지를 어떻게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를 합니까?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아, 고양이 같이 약한 생명체에게 폭력성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살인도 저지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셈입니까? 하지만 여기서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고양이를 죽이고 싶었을 뿐입니다. 고양이를 보기만 하면 엄청나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어요. 그것 밖에는 없어요.”

 “그럼 묻겠습니다. 고양이를 봤을 때, 당신이 그토록 화가 나서 견딜 수 없게 되는 이유는 뭐였나요? 이유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나요? 고양이에게는 죄가…”

 “당연히 고양이에게는 죄가 없죠.”

 “뭐라고요?”

 “고양이한테는 죄가 없다고요.”

 “그렇죠?”

 “하지만 고양이를 보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요.”

 “그러니까, 왜 화가 나느냐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생각해봤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도 그랬고, 구치소에서도……”

 “자신이 왜 고양이를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반대로 저는 ‘사람들이 왜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한테 잘 대해주는 존재에게는 친절해지고, 짜증나게 구는 존재에게는 똑같이 짜증을 내게 되어 있죠. 하지만 고양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인간이 짜증스러워할법한, 화를 유발하는 행동을 수시로 저지르고…… 심지어 그 점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죠. 안 그런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그냥 길을 걸어다니기만해도 관심을 주고, 간식을 얻어먹고, 집도 지어주죠……”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회자를 비롯,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왜인지 남자는 아까부터 당연한 말을 하고 있었다. 으레 할 수 있을 법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가 고양이 살해범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추악한 동물학대범으로 인터뷰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들어볼만한 부분이 있다’고 까지 생각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고양이 죽이기’ 카페를 만들어 수만 마리의 길고양이가 죽게 만든 악의 본산이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 내놓는 주장 따위가 미묘한 논리적 완결성을 띠게 되는 순간을 경계하고 있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제가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고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관대함에 절반만큼도, 반의 반만큼도 같은 인간들에게는 베풀어주지 않아요. 나같이 잘나지도 않았고, 귀엽지도 않은 인간들한테는 국물도 없으면서. 고양이는 고양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모든 아낌과 보살핌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

 “보십쇼. 고양이는 인간을 할큅니다. 물어뜯고 상처입힙니다. 사람들이 아끼는 물건을 난도질하고, 집을 어지럽히면서, 길에 나다니는 녀석들은 허구한 날 발정이 나서 잠도 못 자게 만들죠. 철저하게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용서받습니다. 귀여우니까요. 고양이의 나약함도, 나태함도, 방종함도, 한심스러움도, 모든 것이 사랑의 대상입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요……. 그들에게 고양이는, 고양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존귀하고 소중합니다. 나같은 사람은, 하물며 법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데 말입니다.”

 “……당신은 고양이가 부럽습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전혀 그런 말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이 말입니다. 만약에 당신들이 고양이한테 관대한만큼 인간에게…… 길고양이 뿐 아니라. 소외받고 고독한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다면…… 그래도 전부 달라진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고요…… 반대로 이렇게 말해볼까요? 당신들은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처럼 고양이를 죽이는 사람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요…… 인간에게서 출발해 마땅히 인간에게 도착해야할 관심과 사랑이 고양이에게 낭비되고 있으니까요!”


 해당 인터뷰가 전파를 탄 이후, 많은 국민들은 그의 호소에 큰 울림을 받았다. 어쩌면 그 잔혹한 고양이 살해자의 동기라는 것은 ‘고양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였을지 모른다…… 그런 국민적 이해와 청원결과에 따라, 남자는 국제 사법거래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흉악범 수용소에 이감되었다. 하루 이십사시간 내내 고양이귀를 하고 있어야한다는 제약 덕분에, 그는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귀여움을 받으며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고양이 죽이기>

2022. 5





<Woman with cat>, Pablo Picasso.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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