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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22. 2022

습작

백아흔한번째


오늘의 운세 행운은 나의 것

일기예보에는 빨래하기 좋은 날

그 햇살 좋은 주말 오후에 나는 

누워있다 누워서 아무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다

활짝 열어놓은 베란다 문가에서는 

초여름 바람이 기분좋게 불고

이름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

건넛길 유치원에서 갹갹 웃어대고 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냥 소파에 누워 뻐기면서 그런

그런 것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란 살아있는 것들

살아서 숨쉬는 일이 기뻐서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삶들 나날들

한달음이면 다다를 수 있는 그곳을


앉은뱅이처럼 나는 쳐다보고 있다

기왕 병신이 될 일이었다면

눈이 멀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좋은 날 젊은 날 누워만 있을 일이었다면


벚꽃이 진 연인들은 바다와 카페를 보러가고

화면 속 여자아이들은 조명이 눈부셔 찡그리며 웃고

남자는 누르죽죽한 피부 위로 근육을 확인해보고

땀에 절은 인부 아저씨들 막걸리로 목을 축일 때


나는 누워있다 누워서

누워서 아무런 일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느리게감기>

2022. 5




<The nap>, Gustave Caillebotte.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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