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흔한번째
오늘의 운세 행운은 나의 것
일기예보에는 빨래하기 좋은 날
그 햇살 좋은 주말 오후에 나는
누워있다 누워서 아무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다
활짝 열어놓은 베란다 문가에서는
초여름 바람이 기분좋게 불고
이름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
건넛길 유치원에서 갹갹 웃어대고 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냥 소파에 누워 뻐기면서 그런
그런 것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란 살아있는 것들
살아서 숨쉬는 일이 기뻐서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삶들 나날들
한달음이면 다다를 수 있는 그곳을
앉은뱅이처럼 나는 쳐다보고 있다
기왕 병신이 될 일이었다면
눈이 멀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좋은 날 젊은 날 누워만 있을 일이었다면
벚꽃이 진 연인들은 바다와 카페를 보러가고
화면 속 여자아이들은 조명이 눈부셔 찡그리며 웃고
남자는 누르죽죽한 피부 위로 근육을 확인해보고
땀에 절은 인부 아저씨들 막걸리로 목을 축일 때
나는 누워있다 누워서
누워서 아무런 일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느리게감기>
202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