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당신들에게
얼마 전 부산시의 모 시의원들이 부산형 청년수당인 '취업디딤돌카드'에 대해 막말을 던져 부산 지역을 넘어 전국 청년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기사 확인)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300&key=20170813.99099005633
시간이 좀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막말의 실체를 확인하시길 바란다.
https://council.busan.go.kr/broadcast/group/view?num=6358&nums=27650
#자유한국당_조정화
https://council.busan.go.kr/broadcast/group/view?num=6441&nums=27954
#국민의당_전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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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의원들 발언의 대부분이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부정수급할 것'이라는 뿌리 깊은 빈곤혐오적 사고에 기초한 것들인데, 우선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서 이토록 시민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사람들이 한 지자체의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속상하다.
부산 시민분들,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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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특히 내 귀에 남았던 말은, 정책 대상인 청년들 중에서 공무원이나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는 성실한 청년과 알바를 전전하는 일반 저소득 청년을 어떻게 구별해낼 거냐는 조정화 의원의 질문이었다.
정확한 멘트는 다음과 같다.
".... 수당 지급에 대한 눈높이가, 정말 어려운 생활 속에서 학원 교재비와 학업을 통한 나름대로 공무원 시험을 치거나 정말 그나마 나은 정규직에 도전하는 청년들만을 뽑아낼 수 있느냐, 아니면 알바생을 포함한 저소득층까지 이 기준에 포함시킬 거냐, 그 기준점과 대상의 압축점을 묻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대상이) 계속 늘어날 건데, 그걸 어떻게 제어하고 대응할 수 있느냐..."
이 말은 곧 정규직 취업을 준비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들은 십중팔구 수당을 교재 구입 등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고 현금화해서 개인 용도로 쓸 것이며, 따라서 '믿을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서 제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정책대상과 규모에 대한 짙은 불안과 우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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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의문과 반박이 회오리치지만, 그중에 두 가지만 추려본다.
1. 저소득층이 지원되는 현물을 현금화해서 쓸 정도라면, 그 행위를 비난하기보다 경제적 어려움의 심각성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지원의 목적과 방향을 유연화하고 규모를 늘리는 것이 합당한 것이 아닌가?
(조 의원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거진(대부분)' 부정수급 또는 부정행위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발언이 통계적 근거 없는 수급자 집단 전체의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누군가가 지급받은 쌀과 약품을 팔아 현금을 마련해야 할 정도라면 쌀이나 건강보다 돈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상황일 거라고는 왜 생각하지 않는 걸까?)
2. 청년수당은 애초에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위해 시작된 정책인가?
청년수당은 원래 청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지 않거나 못하는 청년은 정책의 신뢰를 받을 자격조차 없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비좁고 척박한 공무원, 또는 정규직 취업의 기회를 놓고 무턱대고 경쟁하면서 현재를 소진하는 청년의 삶이 진정 정책이 바라고 신뢰하는 청년의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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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를 갖고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 청년기를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일자리 문제'로 포괄되는 고용 및 산업 구조의 문제, 노동 현실의 문제, 청년의 실업/미취업(니트)/저소득 문제 등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병폐로 인한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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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가난한 이유는 일하지 않아서'라는 무책임한 논리가 여전히 통용되는 이 사회가 심히 분노스러우면서도 걱정된다. 여기서 파생되는 논리가 바로 조정화 의원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청년이 가난한 건 일하지 않아서이다, 왜냐하면 게으르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라는 사고체계다. 도대체 오늘날 어느 청년이 게으르고 무책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단 말인가. 어느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현실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도대체 어느 청년이...
이는 명백한 빈곤혐오, 근거 없는 청년 불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이유로 크게 몇 가지를 가정해볼 수 있다. 과거에 자기 스스로가 풍요로운 기회와 자원 속에서 게으르고 무책임한 청년기를 실제로 보냈던 사람이거나, 여유 있는 삶을 선망했음에도 자원이 없어 척박하고 모멸스러운 삶을 살았거나(보상심리), 그것도 아니면 청년을 먹이를 주면 사냥과 채집을 게을리하는 '짐승' 정도로 취급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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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조정화 의원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취업성공패키지'라는 정부 주도의 구직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에게만 '구직활동수당'이라는 이름의 소정의 지원금을 주겠다는 고용노동부 역시, 정부가 인정하는 구직활동이 아니면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진정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의 현실적 어려움과 고민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지금의 정부는 80년대 경제성장 시대의 일자리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하며 청년의 삶을 정책에 구겨 넣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종일 노동을 하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청년들, 생계를 위해서 그저 그런 일자리에 자신의 정체성과 노동력을 '팔지 않으려고' 취업을 거부하고 창의적인 삶을 모색하는 청년들, 혹은 그 모든 가능성과 열정을 이미 내려놓고 정신적/육체적 건강마저 상실한 채 내일 없는 일상을 보내는 청년들. 청년을 위한다는 정책 안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굶어 죽어도, 노숙을 해도, 사고로 다쳐도, 그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돌보지 않는 정책.
2017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적 요구를 경청하지 않는 정부.
청년의 입장에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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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헬조선'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오늘도 분노조절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