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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과 만년필 Jan 25. 2022

너 나하고 공부할래?-2

졸업 후

같이 공부하자는 이야기는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그 학생이 그리 쉽게 대답할 줄 몰랐었다. 약간 당황했던 것도 같다. '얘가 아직 잠이 덜 깼나?'라고 생각도 했다.


다음날 확인해 보니 기특하게도 책을 구해 왔다. 


"선생님! 근데 그 책이 절판되었나 봐요. 그래서 알라딘에 갔더니 다행히 있더라고요."


서점에 책이 없어서 알라딘 중고매장까지 가서 구했다니... 기대치가 낮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 적극성에 난 조금 감동했다.


이야기처럼 쓰인 영어 문법책을 가지고 하루에 한 챕터씩 공부하기로 했다. 정해진 진도까지 읽고 연습문제를 풀어오면 내가 설명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라 부르기엔 짧은 10분에서 15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종례만 끝나면 교무실 내 자리에서 칼 같이 기다리던 학생의 열의 덕에 금방 책 한 권을 끝내게 되었다. 


"야 어때? 좀 뿌듯하지 않냐?"

"네 그렇네요."


위의 뿌듯하다는 표현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영어로 된 동화책 몇 권을 함께 읽으며 독해력을 향상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수능시험 이후에는 학교 일정이 들쑥날쑥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개별 방과 후 수업'은 끝나게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그 친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운동부를 했던 체력으로 '까대기'라 불리는 힘든 택배 분류 작업 등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그러다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한번 뵙고 싶어요!"

"그래 좋다. 감자탕이나 먹을까?"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자기가 돈을 좀 벌었다며 내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네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라고 생각했지만 고맙다고 말하며 퇴근 후 학교 근처에서 만났다. 


젊은 놈이 담담히 말하는 힘들게 돈 번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감자탕 냄비 옆에는 소주병이 늘어났다.


"힘들지?"

"네."

"나도 너 만할 때 참 힘들었던 것 같아. 너보다는 경제적으로 힘들진 않았지만 미래도 막막하고 그랬던 것 같아."

"그래요? 근데 제 주변 어른들은 저보고 맨날 '제일 좋을 때다'라고 해요. 전 하나도 안 좋거든요?"

"야,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있으면 닥치라고 해! 큰 소리로 하지말고 속으로 만... 하하하!"


술이 오르고 감정도 올랐기에 목소리도 좀 커졌던 것 같다.


감자탕 값을 내가 계산하자 2차는 꼭 자기가 사겠다고 하길래 편의점에 가서 수입 맥주 4캔과 과자 부스러기를 사서 근처 공원으로 갔다. 내가 추천한 맥주를 맛보고서 큰 소리로 너무 맛있다며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한동안 또 맥주 관련 TMI를 늘어놓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각자 두 번째 맥주캔을 마실 때쯤 그 친구가 말했다.


"선생님, 아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뭐가?"

"제 때가 힘들다는 그 말씀요."

"뭘 그런 걸 가지고..."

"저는 지금도 무지 힘든 데 나중에 지금 보다 더 힘들다면 저는 희망이 없어요."


오래전 일이고 술도 좀 마셨기에 대화의 내용이 정확하진 않겠지만 글을 쓰며 그때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니 그때처럼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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