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것 1
대부분의 어머니가 그렇듯 우리 어머니도 나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렇듯 나도 어머니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스며든 그 가르침들이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그래도 사회생활을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 하게 된 것도 다 어머니의 잔소리 덕분이다. 그중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 한다.
1. 배가 고프면 엄마를 도와라.
2. 사람들 다니는 길 막지 마라.
3. 물건의 임자는 그 물건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다.
4. 여자도 똑같이 피곤하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까…. 밖에서 놀다 온 나는 어머니께 배고프다고 빨리 밥 달라는 소리를 했다. 손이 빠르신 어머니는 금방 부엌으로 가셔서 음식을 준비하셨다. 불에 음식을 올리고 부지런히 도마질을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지나니까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자 현기증이 나서 또 졸랐다.
“엄마! 빨리 밥 좀!”
안 그래도 시어머니까지 모시느라 신경 쓸 데가 많고 바쁜 어머니께서는 짜증이 나셨는지,
“야! 그렇게 누워서 말만 하면 엄마가 더 늦어지지! 빨리 먹고 싶으면 숟가락이라도 좀 놔!”
어머니께서 갑자기 소리를 높이셔서 기분이 나빠진 나는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 입만 다물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생각해 보니 나의 배고픔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말씀을 듣는 게 맞았다. 입을 잔뜩 내민 채로 주섬주섬 숟가락과 젓가락을 식구 수대로 챙기고 상 위에 어설프게 놓았다. 아버지는 그걸 보시고 대견해하셨던 것 같고 할머니는 “어린것한테 이런 것까지 시키냐~”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던 것도 같다. 잠시 후 어머니께선 금방 뭔가를 만들어내셨고 우리 식구는 맛있게 식사했다.
이 장면은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몇 차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 끝에 일어났을 거다. 내가 한 장면처럼 기억하는 것은 분명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다는 위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실무자인 어머니께 항의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만 지연시킬 뿐이었다. 나는 불평하기를 좋아하게 태어난 사람이지만 배고픔이라는 위기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가르쳐준 어머니 덕에 천성보다는 불평을 줄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조금은 더 협조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특히 집에서 음식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 이후로는, 식당에서 밥이 늦게 나올 때에는 화를 내기에 앞서 상황을 살피고 도울 게 없는지 살펴본다. (항상 그렇게는 못하지만…) 서빙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으면 반찬 등을 미리 가져다 놓기도 하고, 옆 테이블에 수저가 부족해 ‘여기요!’를 외칠 것 같으면 우리 테이블에 있는 여벌 수저를 건네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동료나 부서에 협조를 구한 일이 제때에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불평이나 책망을 늘어놓고 싶지만 일단 ‘일은 되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일이 진행되는 것을 도우려 한다. (이것 역시 매번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칭얼거림이 듣기 싫어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고, 아들 핑계로 잘 협조하지 않는 나머지 식구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을 하신 것일 수도 있다. 그때는 ‘엄마가 또 잔소리하네’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그 가르침은 지금도 나에게 질문한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빨리 밥을 먹고 싶은 거야, 아니면 화를 내고 싶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