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어느 여름날의 공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제자와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 만나기로 했다. 제자의 회사가 분당이고 일도 일찍 끝나는 날이라기에 5시 30분에 AK 플라자에서 만나기로 했다. 10분쯤 일찍 도착해서 시계탑 아래 앉을자리를 찾았으나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그곳엔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서서 그 친구를 기다리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제자가 나타났고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7년 만에 만났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개성 있던 그 친구의 예전의 모습이 떠올라 함께 웃으며 식사를 마쳤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6시 40분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자 만나러 간 것 뻔히 아는데 왜 전화했을까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아서 다행이야. 당신 지금 어디야?"
"응 서현역 스타벅스에서 차 마시고 있어."
"지금 서현역 AK플라자에서 칼부림 났다고 뉴스에서 난리야."
서현역 쪽으로 향한 창을 통해 폴리스 라인이 보였고 앰뷸런스 몇 대가 불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일찍 들어가겠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제자도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카페 안을 둘러보니 여러 명이 핸드폰을 보거나 창 밖을 살폈고, 조금 전까지 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옆자리 젊은 남자는 전화 통화를 하며 연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자의 어머니 역시 뉴스를 보고 전화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얘기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제자가 말했다. 나는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집에 들어가야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으신다 말하며 함께 카페를 나섰다. 카페를 떠나며 다시 주변을 살피니 옆 자리 청년은 짐을 챙기고 있었고, 구석에서 공부하던 여러 손님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후였다.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지만 버스 정류장까지 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자는 서현역 역사 2층으로 연결된 고가 도로에 있는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더운 날씨에 방호복까지 입고 있던 소방관이 땀을 뚝뚝 흘리며 거기도 현장이라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피의자가 그곳에서 차로 사고를 내고 건물 내로 들어왔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대로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경찰관들이 교통을 통제해 차들이 돌아가고 있었고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한 배달원은 도로를 막고 있는 경찰관과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의무와 생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무더운 여름 저녁보다 더 높은 온도로 부딪치고 있었다.
제자를 버스에 태워 보낸 후 핸드폰을 보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아내는 범인이 두 명인데 한 명은 아직 안 잡힌 것 같다며 얼른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중에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으나 목격자 중 두 명이라 말한 사람이 있어 그런 내용의 기사가 나왔었나 보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서현역 쪽을 바라봤다. 구름이 흩어진 전형적인 여름 저녁의 하늘이었지만 내가 느끼는 공기는 훨씬 더 무거워져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평소 같으면 타지 않았을 먼저 온 좌석버스를 탔다. 조금이라도 더 그 '현장'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제자랑 함께 있을 때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마음은 불안하고 불편했다.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의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리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 발생 시 그 '현장'에서 2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고 30분만 늦게 약속을 잡았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평범하고 반가운 만남이 계획되었던 하루는 평온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부상당하신 분들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