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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 Sep 22. 2016

함께 꾸는 꿈의 대화, 게이스케

프랑스 롱샹 (July 2004)

나에게 애초에 프랑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없었다. 흔히 꿈꾸는 파리(Paris)에 대한 동경이라든가, 에펠(Eiffel) 탑에 대한 로망이라든가 하는.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그저 스쳐 지나가려고 했던 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파리의 한 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감격하고 말았다. 그때까지의 난 서구의 여러 나라를 여행해보지도 못했고, 유럽이라고 해도 고작 영국과 그리스, 이탈리아를 조금 둘러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파리는 그들과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기를 가졌다. 약 두 달간의 여행 중에 새로운 경험을 하는 대신 자연스레 멀리 할 수밖에 없었던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가난한 여행자였다. 처음 배낭여행을 하게 되었던 계기도 공부하던 건축 때문이었으니, 오랜만에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프랑스만의 기운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건축을 전공하는 것이 입증되는 학생증만 들이밀면 웬만한 미술관과 박물관은 모두 무료입장이 가능했으니 나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가고 싶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골라 예술작품에 둘러싸여 하릴없이 보내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이었다. 


이왕 프랑스에 발을 딛게 된 김에 보고 싶었던 건축물이나 실컷 보기로 작정했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한 건축물이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떠올랐던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의 롱샹성당(Notre-Dame du Haut, Ronchamp)이었다.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는 건축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건축가였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든 첫 경험이 가장 큰 인상을 남기듯, 그렇게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는 나에게 건축을 계속 공부하게 만드는 원동력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를 나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대학 새내기 시절 내 첫사랑이었던 선배 오빠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건 내가 건축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나는 롱샹성당을 보러 가야만 했다. 

사실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가 근대건축의 4대 거장으로 불리고 있고, 롱샹성당이 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라고는 해도 찾아가려고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다. 롱샹은 프랑스와 독일 혹은 스위스의 국경 가까이까지 가야만 하는 조그만 마을이었고, 파리에서는 아침 일찍 출발해 기차 시간을 아주 잘 맞추어야 당일치기로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나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 내 하루를 투자하여 롱샹행 기차를 예약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가까이 지냈고 같이 건축을 공부했던 일본인 친구 하루나 Haruna가 영국에서 건너와 나의 프랑스 건축 및 예술기행을 함께 하던 참이었다. 롱샹성당으로 향하기 전날 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하루나 Haruna와 나는 조명으로 빛나는 에펠탑 아래에서 우리만의 기도를 했었다. 이토록 멋진 건축물을 존재하게 해주어 세상의 모든 건축가들에게 감사하고, 이토록 멋진 건축물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 경험에 감사하고, 또 이토록 멋진 건축물을 언젠가 우리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며.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새벽 6시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숙소를 도둑고양이처럼 빠져나왔다. 롱샹(Ronchamp)까지는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없어서 중간에 베줄(Vesoul)이라는 곳에서 갈아타야 했다. 파리를 출발한 기차는 처음 보는 프랑스의 전원풍경을 선물로 보여주며 3시간 여 만에 베줄역에 도착했다. 롱샹행 기차를 탈 때까지 2시간쯤 기다려야 했는데, 하루나 Haruna와 나는 비가 보슬보슬 오고 쌀쌀한 프랑스의 한여름 날씨를 탓하며 근처 카페에 가서 핫 초콜릿 한 잔을 들이켰다. 각자가 그려왔던 롱샹성당의 이미지를 공유하며. 

시골 간이역 같았던 롱샹 역

롱샹행 기차에는 어림잡아 열 명도 채 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굳이 롱샹에 가야 할 이유가 없을 만큼 작은 마을이기 때문이었다. 언뜻 보아도 기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건축과 관련 있어 보인다며 우리끼리 시시덕거렸다. 그때 옆 좌석에 앉은 한 동양인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난 일본에서 온 게이스케 Geiske라고 해. 혹시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루나 Haruna와 나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짐작을 못한 모양이었다. 역시나 우리의 생각대로 그 역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로 건너가 한 대학에서 6년째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방학에 3주간의 유럽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보다 특별했다. 졸업 후에 유럽에서 건축 실무를 해보고 싶어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유명 건축사무소에 인터뷰를 요청하며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몇 군데 인터뷰를 보았다고 했다. 

“우와, 게이스케 Geiske 멋진데. 나도 4학년인데 아직 그런 생각조차도 못했어.”

“너희들도 곧 졸업이니까 미리미리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 난 요즘 건축계의 판도는 유럽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여러 나라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호주보다 훨씬 다양한 건축을 접할 수 있고, 그것들이 경계 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여기니까. 그래서 나는 꼭 유럽에서 일해보고 싶어.”

그가 꺼내어 보여준 자신의 포트폴리오는 아직 학생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던 내가 보기에는 질투가 날만큼 굉장했다. 그는 이미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건축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빛나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건축분야의 일은 아직 환경이 열악하고 힘들어 3D업종으로도 불리는 데다 건축은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분야라서 그만큼 더 큰 열정과 의지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내 건축 인생에 초심 같은 롱샹성당을 보러 가는 기차 안에서 나에게 자극이 되는 게이스케 Geiske를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 같았다. 


시골의 간이역 같은 롱샹 역에 도착해서도 산길을 따라 꽤 올라가서야 롱샹성당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그 앞에 맞닥뜨리자마자 거대한 거인을 오롯이 홀로 마주하게 된 것처럼 아, 하고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으며 각자의 감상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구석마다 어느 한 곳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롱샹성당의 대표 이미지가 되어버린 남쪽 파사드는 두 번째로 치고라도 책의 이미지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었던 빛과 자연이 그대로 흡수되어 건물에 투영이 되는 느낌은 공간 자체를 참으로 진중하면서도 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 작은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경건한 기운과 거대한 아름다움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얼마를 그렇게 둘러보았을까. 아직도 건축물과 공간이 주는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나는 성당의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에 주저앉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을 그림으로 옮겨보아도 모자랐다. 그곳에서 느낀 나의 감흥과 영감 따위를 미친 듯이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그러는 중 하루나 Haruna와 게이스케 Geiske도 어느 정도 둘러보았는지 내 주변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우리의 토론 아닌 토론은 시작되었다. 

롱샹 성당

“건축물에 자연을 활용하여 끌어들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 멋진 건물만 우뚝 서 있다고 해서 그것이 최고의 건축물이 되지는 않잖아. 주변 경관과 얼마나 어울리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맞아. 내 첫 번째 배낭여행이 일본이었어. 내가 안도 타다오 Ando Tadao의 건축에 심취했을 때라서 그의 건축물들을 실컷 봤거든. 그때도 느꼈었어. 건축이라는 인공물에 자연 소재인 빛과 물을 이토록 잘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안도 타다오 Ando Tadao의 건축도 참 좋지.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 중에 한 명이기도 하고. 오늘이 곳에 와서 느낀 거지만, 어쩌면 그의 건축 콘셉트의 대부분이 롱샹성당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롱샹 성당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어. 지붕과 벽이 맞닿지 않고 빛이 새어 들어오게 한다거나 두꺼운 콘크리트 매스 사이로 자연광이 들어오게 해서 주어지는 극적인 효과 같은 것들이 유사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조금 달라. 안도 타다오 Ando Tadao의 건축에서는 직선적인 요소가 많아서인지, 자연 상태의 흐르는 물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물을 활용한 경우가 많아서인지, 인위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 그런데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의 건축은, 아니 이 롱샹성당은 전체적인 형태마저 자연친화적이랄까. 네 면의 파사드가 모두 다른 것만 보아도 자연 상태 같지 않아? 자연에는 똑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네. 그러고 보니 네 생각도 맞는 것 같아. 건축이 독불장군처럼 인공물로만 존재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기본 콘셉트는 같지만 건축가마다 각자 그것을 구현한 방식이 조금은 다르다고 봐야겠지.”

롱샹성당을 마주하고 오감이 뼛속까지 깨인 우리는 롱샹성당에 대해,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에 대해, 위대한 건축에 대해 신이 나서 얼마 간을 떠들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점심 삼아 준비해 간 빵과 과일을 나누어 먹고, 이 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대화는 계속되었으니. 계획하지 않았던 프랑스 여행, 그리고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 속에서 우리는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그것에 대하여 입술이 마르도록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가까운 친구나 다름없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주제가 서로가 좋아하는 것일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게이스케 Geiske 역시 우리와 같이 파리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표를 이미 끊어놓은 상태였다. 롱샹에 도착하자마자 이 곳에 머물지 않고 당일치기로 기차표를 산 것에 대해 후회했지만, 나 혼자가 아닌 여정이라서 돌이킬 수 없이 돌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하루나 Haruna, 떠나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어줄래?”

 게이스케 Geiske가 하루나 Haruna에게 일본어로 부탁했다. 때마침 하루나 Haruna는 신발끈을 묶고 있었고, 내가 대신 찍어주겠다며 대답했다. 

“어? 승애 너 일본어도 이해하네. 일본어 할 줄 알아?”

“아, 잘하지는 못해. 학교에서 일 년 동안 교양수업 들은 게 전부거든.”

이때부터 하루나 Haruna와 게이스케 Geiske의 일본어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어린아이의 걸음마 수준이지만 제법 알아듣고 대답하는 나를 그들은 신기해했다. 

“승애 너 이러면 안 돼. 너 일본어 할 줄 아는지 모르고 기숙사에서 내 일기장도 보여줬는데, 그때도 다 이해한 거야?”

“아니야, 아니야. 일기 내용은 정말 안 봤어. 그 정도 수준은 못 된다고.”

“내가 봤을 땐, 일본에서 1년 정도 살아본 사람 같은데 뭐.”

하루나 Haruna와 게이스케 Geiske는 번갈아가며 나를 비행기 태웠다. 워낙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였지만, 여행을 통하여 더욱 언어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터였다. 여행 중에 세상의 언어를 모두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세상 어디를 가도 보다 수월하게 사람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또내 진심을 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모든 대화를 일본어로 할 수 있게 내가 노력해 볼게!”

나는 뜬금없이 자신만만하게 약속을 하고 말았다. 

“꼭 언젠가 다시 보자. 일본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농담을 하며 우리는 기차를 타고 어느새 파리로 돌아왔다.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우리는 또 헤어짐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내일 스페인으로 가. 거기서도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올 생각이야. 너희는 다음 행선지가 어디야?”

“하루나 Haruna는 파리에만 머물다가 독일을 들러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나는 파리가 지겨워지면 스페인으로 갈 생각이야. 스페인에서 다시 보게 될지도 몰라.”

“다시 만나면 좋지. 그땐 가우디 Gaudi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그럼 인연이 되면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보자.”

“그래, 게이스케 Geiske. 우리의 인연을 믿어보자. 즐거운 여행하고 꼭 꿈꾸는 건축가가 되길 바라.”

롱샹의 인연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이후 스페인에서도 그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는 졸업 무렵, 여러 가지 사정으로 꿈꾸었던 건축가 대신 건축시공기술자로 진로를 변경했다. 가끔 건축가의 꿈이 아쉬워 뒤돌아보게 될 때면 어김없이 롱샹성당과 그곳에서 꾸었던 세 사람의 꿈의 대화가 떠오르곤 한다. 간간히 온라인 상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게이스케 Geiske는 우리 셋 중 유일하게 진짜 건축가가 되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독일의 한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대에 꾸었던 꿈을 그대로 이루어내고 가꾸어 나가고 있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빛나는 눈빛에 가득하던 열정과 자부심을 기억한다.  여전히 어설프지만 진짜로 내가 모든 대화를 일본어로 할 수 있게 되는 날, 나는 하루나 Haruna와 게이스케 Geiske를 기적처럼 다시 만나 게이스케 Geiske가 설계한 건축물 앞에 주저앉은 채로 그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을 꿈 꾸고 있다. 롱샹의 그 날처럼 푸른 하늘 아래 입이 마르도록 서로의 꿈과 열정을 토해낼 수 있는 날을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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