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A Sep 22. 2016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이집트인, 만도

이집트 룩소르 (May 2004)

고등학교 시절 흠뻑 빠져 읽었던 <람세스>라는 소설 덕분에 이집트는 언제나 꿈의 나라였다.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영화를 보고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려보는 고고학자를 꿈꾸었던 어린 나에게 이집트 연구가이기도 했던 프랑스 작가가 쓴 이 소설은 어찌나 사실적이고도 웅장했던지 언젠가는 꼭 이집트에 가서 람세스 2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리라, 다짐하고 또 했었다. 

결과적으로 이집트에는 더 이상 내가 꿈꾸던 람세스는 없었다. 카이로 박물관에서 이미 미라가 되어 버린 바싹 마르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을 실제 마주하고는 얼마나 실망했던지, 앞으로는 세상에 대하여 내가 가진 모든 환상을 꼭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상은 어쩌면 첫사랑처럼 환상 그대로 남아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거리는 거리와 밤새도록 떠들썩한 혼돈의 도시 카이로(Cairo)에 도착하여, 다양한 종류의 호객꾼에게 시달리며 다른 여행자들이 말하던 끈적끈적하고 집요한 중동 사람의 진가를 확인하는 하루하루가 고되다고 느낄 때쯤 나는 룩소르(Luxor)로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룩소르행 기차표


이집트를 여행했거나 여행할 예정인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이집트인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만도 Mando’. 만도 Mando는 고대 이집트의 신과 파라오의 삶, 그리고 사후세계까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도시인 룩소르에 살고 있었다. 

‘나도 룩소르에 가면 만도 Mando를 만날 수 있을까?’

룩소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궁금해 하긴 했지만, 장기 배낭여행이라 각 지역에 대하여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가지지 못한 채 발길 닿는 대로 하는 여행인지라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11시간 동안의 긴 여정 끝에 아직도 신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땅, 룩소르에 도착했다. 비몽사몽 간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도시 간이나 나라를 이동할 때, 새로운 곳에 도착하여 내가 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눈 감고 그곳의 향기를 듬뿍 담았다가 뱉어내는 일이다. 같은 나라일지라도, 같은 기후대라도, 각 장소가 갖고 있는 공기의 향기는 분명 다르다. 룩소르의 향기는 뜨듯한 열기와 함께 고운 모래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나만의 도착 의식을 치르는 동안에 나에게 달려들어 방해하는 호객꾼이 없었다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 사람이에요?”

“네. 그런데요….”

“반가워요. 난 만도 Mando라고 해요. 많이 피곤하죠? 숙소 찾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요.”

만도 Mando였다! 룩소르 기차역에만 도착하면 거의 100% 만날 수 있다던 만도 Mando가 거짓말처럼 내 눈 앞에 있었다. 그는 꽤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고, 자신이 만도 Mando가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을 꺼내 보여 주었다.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편지와 고마움의 인사들, 그리고 여행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넘쳐흐르게 쌓여 있는 그 자료들을 보지 않고도 그의 선한 눈망울 때문에 나는 그가 만도 Mando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만도 Mando와 함께 하는 룩소르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렴한 숙소를 찾고 있는 나에게 만도 Mando는 추천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데려가 일일이 방을 보여 주었고,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때까지 내 짐을 나누어 들어주며 함께 해 주었다. 무사히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후에야 고픈 배를 채우러 나가려는데 만도 Mando는 또 나를 졸졸 따라왔다. 

“만도 Mando, 고맙지만 식당은 나 혼자 찾아봐도 돼. 괜히 따라다니게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아니야. 룩소르에 처음이니까 싸고 맛있는 식당이 어딘지도 잘 모르잖아. 좋지 않은 식당들도 많으니까 내가 몇 군데 가르쳐줄게. 나는 한국 사람들 돕는 게 좋으니까 괜찮아.”

그의 선한 눈망울을 믿고 따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로에서 눈 감으면 코 베어갈 것 같은 사람들에게 몇 번 당하고 내려온 터라 먼저 호의를 베풀어 주고는 나중에서야 나에게 무언가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불신과 염려 때문에 왠지 옆에 있는 만도 Mando가 불편했다. 그러나 만도 Mando는 몇 번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고, 결국 아침식사를 해결하러 식당을 찾는 것도 함께 하게 되었다. 길을 걷던 중에 사탕수수 줄기로 즙을 내어 주스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만도 Mando, 나 저거 먹을래.”

“그래.”

나중에야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숙소 찾는 것을 도와주었으니, 고마운 마음에 만도 Mando에게도 사탕수수 주스 한 잔을 권했지만 만도 Mando는 자신은 괜찮다며 끝까지 거절했다. 사탕수수 가게 아저씨의 사진을 한 장 찍어 드렸더니 가게에 걸어 놓으면 좋겠다,며 그 사진을 꼭 갖고 싶다 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진을 인화하여 보내 드릴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아랍어로 한참을 만도 Mando와 상의했다. 무슨 말이기에 저렇게 심각한가, 싶었는데 주소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아랍어를 모르는 내가 그대로 잘라서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주소를 옮겨 써준 만도 Mando의 말에 의하면 아저씨가 불러준 주소는 이러했다.

사탕수수 주스 가게 아저씨

[룩소르 기차역에서 룩소르 신전으로 가는 큰길 왼쪽 편 사탕수수 주스 가게 누구누구 앞]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이 가게는 주소가 따로 없었던 것이었다. 설사 있더라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일지도. 어쨌거나 아저씨가 알려준 그 주소로 보낸 사진이 도착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는 나는 근처 빵집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만도 Mando는 사라졌다. 

“저녁때 혹시 한국음식 먹고 싶으면 내 식당으로 와. 네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물어보면 식당이 어딘지 알려줄 거야.”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밤새 기차에서 푹 잤던 덕분인지 많이 피곤하지 않아서 아침을 먹고는 바로 룩소르 구경에 나섰다. 룩소르의 동쪽이 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신전들이 세워져 있는 곳이라면, 룩소르의 서쪽은 이집트를 지배했던 왕들을 위한 공간으로 현재 남아있는 문화유적으로는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들의 계곡과 장례의식을 치렀던 장제전이 모여있다. 멀리 있는 곳부터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서안으로 출발했다. 

물론 규모 자체도 거대하지만, 책에서만 보았던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들의 무덤과 장제전은 눈 앞에 실제를 마주한 나를 전율케 했고 나는 어느샌가 모르게 이집트라는 나라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엄하고도 고귀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이집트의 고대문화유산을 눈 앞에 두고 소름 돋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40도를 훌쩍 넘는 날씨에 금세 기진맥진이 됐다. 이미 햇볕에 그대로 드러난 양 팔과 머리 속까지 새빨갛게 타서 따갑기까지 했다. 차 안에서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축축 늘어져 원치 않는 잠에 빠져든 채 다시 룩소르 시내로 돌아왔다.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서안 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들어가 차가운 물에 몸을 식혀 정신을 차리고 났더니 급격히 배가 고파졌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아침에 들었던 말을 기억하여 만도 Mando의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만도 Mando의 식당은 아직 간판도 제대로 없이 허름한 건물의 옥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하여 ‘만도 Mando네 레스토랑’.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와 있었다. 당시 이집트는 뜨거운 여름으로 비수기였던지라 많지 않았던 여행자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동석하게 되었고, 각자가 룩소르를 떠날 때까지 만도 Mando네 레스토랑에서 밥상 친구가 되었다.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서 학기를 마치고 바로 떠나온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제대로 된 한식을 먹어본 지 꽤 오래되었을 때였고, 룩소르에 도착하자마자 땡볕에 다녀온 서안 투어로 인하여 몸보신의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다 같이 닭백숙을 먹기로 했다. 사실 고대 문명의 꽃인 이집트에서 먹는 닭백숙이라니, 왠지 모르게 기대는 안됐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만도 Mando가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깜짝 놀랄만한 요리 솜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한국의 맛을 재현하고 있었다. 

“만도 Mando, 한국에 가본 적 있어? 완전히 한국 백숙하고 맛이 똑같아.”

“아니. 아직 못 가봤어.”

그저 오다가다 여행자들에게 배운 요리법의 닭백숙이라니 놀랍기만 하지만, 매일 만도 Mando가 만든 요리들을 하나씩 먹다 보니 더 놀랄 것도 없었다. 만도 Mando가 만들어 준 모든 음식이 훌륭할 정도로 맛있었으니. 볶음밥, 닭백숙, 계란말이, 샥슈카 등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이집트 음식까지 전부 말이다. 특히 나는 이집트에 와서 처음 먹어본 샥슈카의 맛에 반해서 거의 매일 먹었다. 그 이후에도 샥슈카의 매력에서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만도가 만들어준 것만큼 맛있는 것을 먹어보지는 못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만도 Mando의 음식에 대하여 장난 삼아 나누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만도 Mando가 기차역에 나갈 시간이 다가오면 뭔가 음식에 간이 덜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만도 Mando는 매일 카이로나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이동하는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면 기차역에 나가 한국인 여행자들을 기다린다고 했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기차를 이용해 카이로나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면 만도 Mando의 마음이 다급해져 왠지 모르게 싱겁다나. 우스운 이야기로 흘려들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만도 Mando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서 머나먼 나라, 이집트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 이집션은 어떤 계기로 한국을, 그리고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다음 날, 새벽의 룩소르 거리를 나섰다. 해가 떠서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기 전에 룩소르 신전에 산책하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네 고즈넉한 산사에서 새벽에 느끼는 공기가 더 좋듯이 이집트의 신전도 새벽에 마주하는 느낌이 훨씬 더 좋았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왠지 새벽녘에는 나를 둘러싼 우주와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느낌이랄까. 프랑스에 빼앗긴 오벨리스크의 자리가 못내 아쉬웠던 룩소르 신전에서 우주와의 교감을 흠뻑 나누어 충만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하루가 시작되는 룩소르의 거리를 다시 되돌아 갔다. 돌아간 숙소 로비에는 만도 Mando가 와 있었다.

“승애, 아침밥 아직 안 먹었지? 내가 맛있는 타메이야 사 왔어.”

그는 다른 여행자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타메이야가 든 커다란 샌드위치가 서너 개 들어있는 봉지를 건네주었다. 값이 싼 숙소를 찾는 데다 되도록이면 길거리의 현지 음식 체험하는 것을 좋아해 일부러 아침식사가 포함되지 않은 숙소로 정했는데, 만도 Mando는 내 말을 기억하고 현지 음식을 사 와서는 아침식사라고 나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값을 치르겠다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자기의 선물이라며 그대로 또 사라졌다. 만도 Mando는 내가 룩소르를 떠나는 날까지 매일 아침 숙소로 찾아와 우리를 깨우고는 아침식사를 챙겨 주곤 했다. 덕분에 나는 매일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오물거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만도 Mando는 나를 포함한 여행자들이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었다. 기차표를 사는 것도, 환전을 하는 것도, 기념품을 사는 것까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도와주는 데 발 벗고 나섰다. 만도 Mando는 전생에 한국과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룩소르 박물관에서 오래된 벽화를 손으로 직접 한 점, 한 선을 공들여 복원하고 있었던 아저씨처럼, 만도 Mando는 이렇게 정성스럽고 꾸준한 모습으로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룩소르에 머무는 동안 이집트가 나에게 보여준 어떤 문화유산보다 더 큰 감동을 건네 준 것이 이런 만도 Mando의 마음씨였다. 

내가 룩소르를 떠나기 전 날 밤에, 마지막으로 묘한 매력을 가진 밤중의 신전을 둘러보러 나가는 나에게 간식을 준비해 두었으니 다녀오면 꼭 식당에 들르라는 만도 Mando의 전갈이 있었다. 내 나름의 시간을 즐기고는 느지막이 찾아간 만도 Mando네 레스토랑에는 역시나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만도 Mando는 간식이라며 시원한 수박 한 통을 내 왔다. 어제 지나가는 말로 수박 먹고 싶다고 했던 나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이었다. 만도 Mando를 한 마디의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여행자들의 말 한 토막도 놓치지 않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 

다음날의 헤어짐이 아쉬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내 안경을 가져가 쓰고는 자신한테 더 잘 어울리니 놓고 가라던 만도 Mando, 아니면 안경을 다시 돌려줄 때까지 룩소르에 있으라던 만도 Mando. 언젠가 꼭 한국에 오고 싶다고 했던 만도 Mando이기에 그럼 한국 올 때 가져 오라며 두고 가겠다고 장난쳤더니 그제야 순순히 안경을 돌려주었다. 

“한국에 가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만도 Mando는 이렇게 친절하고 요리도 잘하는데. 금방 돈 많이 벌어서 한국에 올 수 있을 거야.”

“꼭 그랬으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은 돈 모아서 제대로 된 식당도 차리고 게스트하우스도 차리고 싶어.”

“만도 Mando는 식당이든, 게스트하우스든, 뭐든지 다 잘 해낼 거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심은 항상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사실 만도 Mando네 레스토랑은 친절함과 맛 때문에도 유명하지만, 여행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점이 또 하나 있다. 아직 정식으로 간판을 내 건 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부엌 시설도 엉망이어서 만도 Mando의 지저분한 주방을 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다는 소문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거뭇거뭇하고 엉망인 주방을 보고도 그가 만들어 준 음식이 참말 맛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그립다. 그것은 내가 가난한 배낭 여행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로지 사람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결하고 엉성해 보여도 그건 만도 Mando가 처해 있는 상황의 열악함을 보여주었던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만도 Mando가 정성스레 만들어 내어 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은 음식은 나를 배부르게 했고, 그 음식 때문에 나는 행복했었다. 나에게는 그거면 충분했다. 

만도의 경악스러운 부엌, 하지만 나에겐 사랑스러울 뿐

“만도 Mando는 한국을 왜 그렇게 좋아해?”

“음, 그냥 좋아. 예전에 한국인 여행자 한 명이 나를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한국인 여행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지. 아무 할 일이 없었던 내가 꿈꾸게 만들어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게 주어서 너무 고마워. 그래서 나는 계속 이 일을 할 거야.”

만도 Mando는 나름의 보은을 하며 살고 있는 셈이었다. 사람이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의 작은 호의가 머나먼 땅의 낯선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삶의 의미를 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호의를 받은 한 사람은 다른 많은 이들에게 몇 배로 불어난 큰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아직 어리다고 해서, 여자 혼자 여행한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경계하여 세상의 무서움을 먼저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사람이 가진 선한 본성을 믿기로 했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그 누군가도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줄 것을 믿었다. 만도 Mando가 나에게 가르쳐 준 귀중한 사실로 인하여 그 이후 내 여행은 더 행복하고 풍요로워졌으며,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더 많이 만들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만도 Mando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얼마 전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는 친한 동생에게서 만도 Mando의 소식을 들었다. 내가 만도 Mando를 만났던 2004년에서 꼬박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한국인 여행자들의 친구가 되어 룩소르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식당뿐 만 아니라,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까지 차렸다고 하니 내 일처럼 기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고 그 길에 그대로 서 있는 그가 내 오빠처럼 자랑스럽다. 또 어떤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 나를 감동시켰던 그때 그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고 있겠지? 

그의 낡은 옥상 식당에서 정성껏 내어주던 샥슈카가 먹고 싶은 저녁이다. 

그리운 만도의 샥슈카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꾸는 꿈의 대화, 게이스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