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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를 해야 하는 이유

세상에는 학위를 한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영끌을 불사한 우리 세대나 베이비부머인 부모님에게도 집은 생의 족적이자 꿈이자 사는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코로나 헬리콥터 머니를 거둬들이면서 부동산 거래절벽이 닥쳤고, 금리가 오르며, 부모님의 노후에 대한 계획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도를 하고자 했던 아파트를 팔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높은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닥쳤고, 세금을 내기 위해 저축을 해지해야 했다.      


    우리 부부가 결혼 후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은 것은 없다. 하지만,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를 번갈아 갈아타고 차례상에 올릴 사과, 배를 나눠주시려고 배낭에 이고 지고 오시는 부모님에게 긴 연휴에 여행패키지를 끊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열흘가량 되는 추석 연휴 말미에 우리의 행선지는 괌이다. 수화기 너머로 친정엄마에게 우리 세 가족이 여행을 간다고 어렵사리 말문을 꺼냈는데,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신랄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일 있을 때마다 빚내서 여행 가고 뭐 사고하면, 그 빚 갚으려 쩔쩔매는 네 손해지, 그게 뭐냐.” 


    마음이 아픈 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도피하는 형식으로 남들이 부리는 여유를 쫒아서 행색을 하다 보면 내 주머니에 남는 돈은 없고 빚을 갚을 길도 요원하다. 영끌을 할 때는 오로지 빚만 빠르게 갚으리라는 각오와 다짐이 있었던 것인데, 가족 간 갈등이 있거나, 학교에서 힘든 일 있을 때, 아이에게 크고 작은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나를 위한 소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지금 충분히 행복한데 굳이 나를 위한 여행이 필요한가?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잃게 되는 것 사이에서의 저울질 고민이 시작되었다. 


    대학원생 시절 존경해 마지않던 교수님으로부터 박사학위 취득에 대한 축하말을 다음과 같이 듣게 되었다. "세상에는 학위를 한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그분이 평소 몸소 실천하던 교육철학과 사회에 공헌하시던 면모를 흠모하던 나의 경외심이 일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누구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이론가들의 사상과 철학의 궤를 쫓고 싶다는 근원적 지적 호기심과 탐구에의 열망이 있을 것이다. 심연의 욕망을 캐취 하는 자들은 현실에서의 고단함을 무릅쓰고 금전적 시간적 부담을 감내하며 대학원 과정을 등록하고, 실무에서 깨닫는 기술과 지식의 축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면 굳이 학위과정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대학의 교수 입장에서는 우수한 재원을 발굴하여 자신의 이론과 사상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겠으나, 기업이나 사회 현장에서 학위자체로는 어떠한 자격증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십 대 후반이 되도록 석사급"연구생"이던 나에게 박사학위를 선물한 귀인이 바로 나의 남편인데, 미국과 유럽에서 꽤 오래 공부하고 일을 하여 선진사회에서 박사가 가지는 영향력과 명예에 대해서 나보다 높게 평가하여 의지가 약해지는 나를 다독이고 격려하여 학위과정을 잘 마칠 수 있게 인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세 살배기 아들을 친정부모님 혹은 남편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했고, 살림은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으며, 논문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한 달 정도 학교 앞 호텔을 잡아 새벽이나 늦은 밤 구분 없이 연구실에 가서 논문작업을 하곤 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세상에는 두 분류의 사람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오로지 하나의 작은 내 세상이 완성되는 과정을 쟁취해 내는 박사학위자와, 아이가 아프면 함께 아프고, 연세 드신 부모님께 아이라도 맡기는 날에는 아이 걱정과 부모님 걱정에 글 한자 써지지 않는 중도포기자로 분류할 수 있달까...생활비 중 학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담스러워 학위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생에서 이토록 독하게 이기적이 될 필요는 한 번쯤 경험으로는 그래 나쁘지 않다.(나같은 F에게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결과 실질적으로 얻게 된 것은 나의 연구실과 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내 과목, 내 수업이다. 작지만 따박따박들어오는 급여와 육십오세까지 보장된 직업과 이후에 수령할 수 있는 연금까지.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 다면 아주 손해보는 과정은 아니었다. 학위를 더 빨리 취득해서 직장생활을 더 빨리 더 오래 했더라면 좋았었겠지만...


      안정된 직업을 얻고 나에게는 "10kg"이상의 살이 덤으로 왔다. 마음이 너무 편한 것인지 은연중의 스트레스가 살이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진짜 모르는 건가?), 이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찾아왔고, 편한 삶의 스타일을 추구하다보니 움직일 일도 별로 없고, 식욕도 참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정하기로 내 뇌에도 살이 찌는 느낌이다. 예전같으면 벼락치기로라도 읽고, 쓰고, 쥐어짜내서라도 말하였지만, 이제는 강의에서 일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 외에는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일상의 대화도 줄어들고, 읽지도 않으며 쓰지는 더욱 않는다. 위기의식이 온다. 나의 강의를 듣는 아이들이 질문을 할 때, 나를 방어하는 "화"가 난다면...실망스럽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리프레쉬할 필요가 있겠다. 새로운 지식과 교육철학을 탐구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에 열려있으며, 지적자극을 환영하고,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생각근육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만약 무리를 해서 여행을 간다면, 그것도 혼자, 긴 시간을 빼서 멀리.

목적은 두 가지가 될 것이다. 

1. 10kg 감량

2. 생각근육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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