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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22. 2023

그야말로 난리 2

11

할머니와의 한 판이 있은지 두어시간 후, 신랑이 퇴근해 집에 왔다. 울어서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신랑은 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자기가 할머니 좀 다독여드려. 아마 속이 많이 상하셨을거야."

나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비록 할머니와 소리를 지르며 싸웠지만, 나는 신랑이 할머니의 편을 들어주고, 내가 못한 위로를 해드리길 바랐다.


"애비야! 애비 이리 좀 와봐! 이리 와! 내가 할 말이 있어!"

할머니가 방 밖으로 나와 소리치셨다. 신랑이 나를 한번 슥 보더니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내가 작은애가 통장 갖고있냐고 물어본 게 그게 그렇게 큰 죄냐? 통장 갖고 있는지 물어본 게 그렇게 죽을 죄야? 그거 물어봤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죽일듯이 덤비는 게 그게 맞는거야?"

할머니는 신랑에게 하소연 하듯 말을 쏟아내셨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 더 크게 말씀하셨다.

"나는 통장 그거 작은애가 갖고 있냐고 좋게 물어본 거 그거 하나야. 좋게 얘기했는데 죽일듯이 덤비면서 작은애한테 전화를 해서 이간질이나 하고, 이게 옳은거냐?"

애써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말을 꾸며내는 것인지, 정말로 그렇게 기억을 하고 계시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슬펐다.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는 통장을 갖고 있고 싶은거야?"

신랑이 물었다.

"아니! 나는 통장 갖고싶지 않아!"

할머니가 답했다.

"그러면, 돈이 필요한거야?"

신랑이 물었다.

"아니! 내가 돈 쓸 데가 어딨어? 나 돈 필요 없어!"

할머니가 답했다.

"그러면 뭐가 문제야? 통장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는데 통장은 왜 찾아?"

"아니, 다른 사람 다 30만원씩 나온다는데, 나는 안나오니까...."

"할머니가 왜 안나와? 할머니 30만원씩 나오는 거 할머니도 알고 있었잖아."

"알고 있었는데, 지금도 나오는지는 통장이 없으니까 나는 모르지."

"그러면, 30만원씩 나오는 게 궁금하니까 통장을 할머니가 갖고 있다가 매 달 확인하고 싶은거야?"

"아니! 난 통장 필요 없어!"

"아니~ 그러면 통장은 필요가 없는데 왜 통장을 찾느냐고."

"30만원씩 들어온다고 얘기를 안하니까."

"그러니까~ 그 30만원이 필요해서 그래?"

"아니, 난 돈 필요 없어."

할머니와 신랑은 같은 이야기를 돌고, 돌고, 또 돌았다.

통장을 갖고있고 싶은 거냐, 아니다 필요없다, 그러면 돈이 필요한거냐, 아니다 돈 필요없다, 그러면 왜 통장을 찾는거냐, 30만원이 나온다고 얘기를 안해주니 그렇다......

"할머니가 병원비랑 약값 하라고 작은 엄마한테 통장 줬잖아. 그건 기억나?"

"응, 기억나." (나와 이야기 할 땐 기억나지 않으신다고, 거짓말 한다고 하시더니 신랑과 얘기할 땐 기억이 나신단다.)

"그 때 할머니가 통장 준 걸로 작은아버지랑 작은 엄마가 병원비 쓰고, 약값 쓰고 그러는 거 알지?"

"응, 알어."

"그러면 됐지 뭐가 기분 나빠."

"아니, 30만원이 들어오면 들어온다고 말을 해야지."

"당연히 할머니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을 안했지. 할머니가 그렇게 들어온 돈 그렇게 쓰라고 통장 준거니까."

"아니, 그래서 내가 통장 작은애가 갖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뎀비는 게 그게 잘하는 거야? 지가 왜 작은애한테 전화를 해? 왜 지가 고자질을 하냐고?"

"에미 입장에선 전화할 수 밖에 없지. 통장을 에미가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는 자꾸 통장에 돈 들어오는지 물어보고, 그러니까 작은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볼 수 밖에 없잖아."

"너도 쟤들 편드는거야?"

"편 드는 게 어딨어? 그렇다고 얘기하는 거지."

"나보다 지가 더 목소리 크게 소리지르고 그러는 게 그게 잘하는 거야? 돈 준 적 한번도 없는데 줬다고 거짓부렁이나 치고!"

"돈 준 적이 왜 없어! 내가 본 것만도 몇 번인데!"

"이이? 너도 거짓부렁하는거야? 관둬, 관둬! 다 필요 없어!"

할머니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신랑의 답답함도 점점 쌓여갔다.

할머니는 다시 통장이야기, 30만원 이야기, 내가 소리친 이야기를 버럭버럭 하셨고, 신랑은 결국 30번도 넘게 되돌아 오는 이야기 끝에 험한 소리까지 하시는 할머니를 앞에 두고 폭발해버렸다.

"그만 좀 해, 할머니! 아깐 다 기억 난다며! 근데 왜 자꾸 딴 소리를 해!"

신랑의 큰 소리에 놀란 나는 서둘러 할머니 방으로 갔다.

"자기야, 그만해! 나와!"

나는 덩치 큰 신랑의 팔을 잡아 뒤로 끌었고, 나를 보자 할머니는 더욱 더 크게 화를 내셨다.

"왜 소리 질러? 아주 할미 치겠다! 할미 때리고 싶어 죽겠지? 이 호로새끼 그냥. 죽여! 죽여, 그냥!! 그렇게 죽이고 싶으면 죽여!"

"죽여? 죽여?"

할머니의 죽이라는 말이 신랑의 정신을 나가게 했고, 완전히 눈이 뒤집힌 신랑은 할머니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는 안다. 할머니의 그 말이 신랑에게 얼마나 상처가 됐을 지를...... 엄마처럼, 아니 엄마보다 애틋하게 생각하는 할머니다. 사근사근 살갑진 못해도 할머니가 불편할까, 편찮을까 걱정하고 살피던 사람이 우리 신랑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죽이라며 덤벼드니 그 맘이 오죽했을까? 나는 신랑의 옷을 잡아 당기고, 온 몸으로 신랑을 문 밖으로 밀어냈다. "나가! 나가라고!" 나는 간신히 문을 닫아 잠그고 잠긴 문을 등지고 막고 서서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더 길길이 날뛰시며 소리치셨다.

"죽여어~~!!!! 저 쌍놈의 새끼! 여태까지 나 죽이고 싶어서 어떻게 같이 살았냐? 이 호로새끼! 나쁜놈에 새끼!! 죽여!!!!!"

신랑이 잠긴 문을 밀고 다시 들어왔다. 나는 엉엉 울며 신랑에게 매달렸다.

"그만해, 제발! 그만 하고 나가~!"

신랑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신랑의 팔을 콱! 물어버렸다. 그 덕에 정신이 좀 들었는지 신랑은 못이기는 척 나에게 떠밀려 방 밖으로 나갔다. 다시 문을 잠그고 뒤돌아 막고 서서 나는 펑펑 울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셨다.

"아이고 분해~!!!!! 아이고!!!!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이고 분해!!!!!"

할머니는 침대를 두 손으로 쾅쾅쾅 치셨고, 지팡이를 내게 던지셨다. 이불을 던지고, 발을 쿵쿵 구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내게로 달려드셨다.

"할머니도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나는 할머니께 울면서 말했다.

"할머니가 자꾸 이러시면 할머니도 힘들고 저 사람도 힘들잖아요. 이제 그만 하세요."

할머니는 한참을 소리치고 또 소리치셨다. 분하다며 주먹을 휘두르셨고, 쌍놈의 새끼라고 신랑을 욕했다.

이렇게 할머니를 죽이고 싶어 안달난 새끼가 있는 집에서 어떻게 살 수가 있겠냐시며 작은아버지댁으로 가겠다셨다.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고, 신랑에게는 데려다달라고 할 수 없으니 할머니는 작은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작은 댁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할머니는 내게 여관방을 잡아달라셨다.

"할머니, 내가 여관방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왜 할머니가 거길 가서 주무세요? 여기가 할머니 집인데."

"저렇게 날 못 죽여서 안달인 놈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여기서 잘 수 있겠냐?"

"할머니, 저 사람이 할머니 얼마나 위하고 생각하는지 아시잖아요~"

"아는 새끼가 저러냐?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이고 분해! 아이고 분해!!!!"

나는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문 앞에 서 있기로 했다. 할머니 스스로 분이 가라앉으실 때 까지. 할머니 스스로 진정되실 때 까지. 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위로의 말을 한들 할머니 귀엔 들리지도 않을테고, 다시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욕이 되돌아 올 뿐일테니까.


다행히 1시간쯤 후, 할머니는 어느정도 진정이 되셨다. 따끈한 쌍화탕을 가져다 드리고, 침대를 쾅쾅 치느라 아프셨는지 자꾸 매만지는 오른손을 주물러드렸다. 취침약을 드리고, 이불을 덮어드리고, 이내 할머니 방을 나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식탁 의자에 벗어 걸어 둔 신랑의 조끼가 찢어져 있었다. 안방 침대 발치에 벗어 둔 신랑 웃도리의 소매도 찢어져 있었다. 안방 침대에선 씻지도 못한 신랑이 잠들어 있었다. 신랑의 미간엔 세로주름이 깊게 패여있었다. 나는 내가 문 신랑의 오른팔뚝을 확인했다. 다행히 큰 상처는 나지 않은 듯 했다. 이제 겨우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졌다.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신랑은 처음 본 것이었다. 희한하게도 아들, 손주 앞에선 자상하고 또렷했던 할머니었다. 하지만 오늘, 할머니는 애지중지하는 큰 손주 앞에서 치매의 어느 지점까지 와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야 말았다. 짐작만 하다가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신랑의 마음 또한 얼마나 무너졌을지 알 것 같다. 신랑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신랑 옆에 모로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이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냥 내가 참을걸...... 아까 그냥 내가 네~ 하고 넘어갈껄...... 그랬다면 이 난리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믿었던 손주의 대듬에 할머니는 큰 상처를 받으셨을 것이다. 치매에 무너진 할머니를 보며 신랑 또한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할머니와 큰 소리를 주고 받지 않았다면, 그 둘이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다 내 잘못이다. 모두 다 내 잘못이다. 나는 밤새 베개를 이리저리 고쳐 베고 뒤척였다.


새벽 일찍 신랑과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전 날의 일을 얘기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나는 신랑에게 당부했다.

"자기가 그러면, 나는 앞으로 자기한테 아무 말도 못해."

나는 또 울고야 말았다. 신랑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더 참고,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나의 말에 신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한번은 겪고 지나갈 일이었어. 그게 지금이었던 거고. 그리고 자기 잘 하고 있어. 어떻게 더 잘해?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더 애쓰지 마."

신랑이 출근을 하고, 나는 할머니와 어색한 아침을 마주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물었고, 할머니는 대답을 하셨다. 말이 너무 길어져 감정이 상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얼른 핑계를 대고 그 자릴 벗어났다. 할머니에겐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대화 한다발씩이 치유의 방법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어느정도의 혼자만의 시간과 어느 누구와의 교류도 당분간은 쉬는 것이 필요했다. 나의 치유와 할머니의 치유 사이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했다. 어느 누구도 희생이 되지 않도록...... 어느 누구도 덧나지 않도록....... 어느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 가름되어지지 않도록......


입춘이 지나고 곧 봄이 왔다.

햇살은 따뜻해졌고, 꽃은 피어났다.

할머니의 치매는, 봄햇살처럼 따뜻한 모습으로 변하진 않았다. 다만, 봄꽃처럼 펑펑 더 거세게 피어났다.

그것이 할머니에게, 또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어떤 풍경을 선사해 줄 지 그 때는 가늠되지 않았다.

부디, 이보다 더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기를, 이보다 더 자신에게 가혹한 일은 없기를 그저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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