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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22. 2023

그야말로 난리 1

10

발단은 통장이었다.

할머니에게는 노인수당이 입금되는 농협통장이 하나 있다. 이는 우리가 결혼하기 전 부터 있었고, 우리와 살림을 합치기 전까지는 할머니께서 관리하며 동네 병원도 다니시고, 약값도 하시고, 비상금으로도 쓰시곤 했던 통장이었다. 먼저 사시던 동네에는 커다란 농협이 시장 초입에 있었기에 할머니가 필요한 때면 언제든지 가서 돈을 찾아 쓰시곤 했는데, 우리와 살림을 합치고부터는 그러기가 힘들어졌다. 우선은 할머니의 무릎 수술 때문이고, 그 다음으론 농협이 아파트 상가 2층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마저도 몇 년 전 농협이 이전을 하여 집 근처에는 atm기만 있을 뿐이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고 이듬 해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다. 당시(2016년) 할머니 연세는 85세였다. 병원에서는 할머니의 수술을 만류했다. 고령이신데다 당뇨와 혈압까지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술을 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완강했다. 수술을 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무릎 수술을 하고 싶다 하셨다. 돈이 없어 그러는 거면 내 돈으로 하시겠다며 하나뿐인 농협통장을 내놓으셨다. 양쪽 무릎 수술비에 입원비까지 하면 천여만원. 할머니 통장에 든 돈으론 발가락 수술도 어림없었다. 할머니의 병원비를 책임지고 있는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께선 노인네 소원인데, 수술 하다 죽어도 하고싶으시다는데, 그럼 하게 해드리자며 할머니의 통장을 받아가셨다. 물론 할머니의 무릎수술에 든 비용은 모두 작은집에서 부담했다. 혹여 할머니의 자존심이 상할까 할머니의 통장을 받아 그 돈 보태 수술했다 말하는 작은아들 내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돈 90만원으로 무릎 수술을 했노라 큰소리를 치신다. 그렇게 할머니의 통장은 자연스레 작은집으로 넘어갔고, 지금까지도 작은어머니께서 관리하고 계신다.

장을 본다거나, 세금을 낸다거나, 이런저런 할머니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은 우리가 부담했고, 병원비와 약값, 주간보호센터 비용은 작은 집에서 부담했다. 작은집에서도 할머니께 때마다 용돈을 드렸고, 내가 신랑의 일을 도와 재택근무를 시작하고부터는 나도 따로 할머니께 10만원씩 용돈을 드렸다. 할머니 생신 때, 혹은 할머니 앞으로 큰 돈이 들어가야 할 때를 대비해 모임통장을 만들어 작은어머니와 둘이서 매 달 각각 5만원씩 저금도 하고 있다. 나름 체계적이고 분담적이다 생각은 해봤어도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번 설 연휴의 어느 날이었다.

"내 통장 어딨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날카로왔다. 할머니의 오랜 친구분과 오랜만에 30분간 통화를 하시곤 뭐가 그리 또 기분이 나쁘셨는지 나를 불러 물으셨다.

"할머니 통장 작은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걸 왜 걔가 갖고 있냐?"

"할머니께서 병원비에 보태라고 주셨잖아요."

"내가 언제?"

"할머니 그 때 병원 입원하실때요."

"그래? 그럼 30만원 그거는 들어오냐?"

"네, 아마 그럴껄요? 그 전에는 들어왔으니까 지금도 들어오겠죠?"

"아니, 근데 왜 걔는 돈 들어온다는 말을 안하냐?"

"그럼, 작은어머니께 다음에 통장 가지고 오라고 말씀 드릴까요? 할머니가 갖고 계신 게 편하면 그렇게 하면 되죠."

"아니, 됐다. 걔가 갖고 있는 거 알면 됐지 뭘 갖고 오라그래. 갖고 와도 내가 찾을 수도 없는걸."

다행히 할머니는 이해하신 듯 했고, 며칠 뒤 할머니 병원 진료를 위해 작은어머니와 병원에서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선 언제든 통장을 찾으시면 가져다 줄테니 말만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다. 3주만에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신 할머니께서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물으셨다.

"야! 내 통장 어딨냐?"

"할머니 통장 작은 어머니한테 있다니까요~"

"그걸 왜 걔가 갖고 있어? 아니, 내 친구도 그렇고, 센터 노인네들도 그렇고 다들 30만원씩 나라에서 돈이 나온다는데 나는 나오는거냐, 안나오는거냐?"

할머니는 닷새 전 일을 까맣게 잊으셨다.

"할머니, 할머니 통장 작은어머니한테 있구요, 30만원 나오고 있어요. 그거 할머니가 병원비랑 약값에 보태라고 작은어머니께 드렸어요."

"내가 언제 줬어? 얘가 또 거짓부렁 하네!"

할머니의 우김이 시작되었음을, 이 때 눈치챘어야 했다.

"아니, 통장을 가져갔으면 30만원이 들어오는지 어쩐지 나한테 얘길 해줘야 할 것 아냐?"

"할머니께서 당연히 알고계신다고 생각하셨겠죠."

"근데 왜 그 통장은 지가 갖고 있어?"

"할머니가 주셨잖아요."

"내가 언제?"

"할머니 병원 입원 하실 때, 이제는 은행 가서 돈 찾을 수도 없고 쓸 일도 없으니 작은 어머니한테 그 통장에 들어오는 돈으로 할머니 병원비 보태고, 약 지을 때 쓰라고 할머니가 주셨어요. 저번 주에도 통장 말씀 하셔서 작은어머니한테 통장 가져오라고 하냐고 했더니 됐다고, 갖고있는 거 알았으니 됐다고 하셨잖아요."

"이이~ 그런 얘기를 언제 해? 나는 지금 통장 얘기는 처음 하는구만! 얘가 이렇게 거짓부렁을 한다니까~ 왜 없는 말을 지어서 하고 그러냐?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러냐?"

이쯤에서 그만했어야 했다. 그냥 "네~"하고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주간보호센터에 나가기를 거부하시고 나와 종일, 함께 있은지 3주가 다 되어가는 때였다. 그 3주의 초입엔 나의 두번째 코로나 감염으로 나름의 고생을 하던 중이었기에, 누웠다 할머니 밥상을 차렸다를 반복했던 며칠이 포함되어 있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두염이 왔고, 기침은 가시질 않았다. 이유없이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3주만에 지문등록을 핑계로 겨우겨우 할머니가 센터에 나가기 시작한 날이었고, 나도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날이었다.

"통장을 가져갔으면 가져갔다, 돈이 들어왔으면 들어왔다 왜 말을 안해?"

"할머니, 그럼 작은어머니께 통장 가져오라고 전화 할까요?"

앞뒤없는 우격다짐에 나의 목소리도 어느 새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 해! 전화 해! 어디 한 번 해봐!"

"네! 전화 할게요! 그 통장 가져오시라고!"

나는 작은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할머니 들으시라는 듯 큰 소리로 작은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할머니 통장 다음에 갖다 주세요. 할머니가 통장에 30만원 들어오는지 궁금하시다니까 그냥 갖다 주시면 여기서 매달 통장 확인시켜 드릴게요."

벌써 분위기가 빤히 보인 어머니께선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채시고, "그래, 알았어."하셨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전화통화를 하는 날 보던 할머니가 길길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언제 통장 갖다 달라고 그랬냐!!!! 그 돈 30만원 들어오는지 말이나 해달라고 그랬지!!! 저게 어디서 저렇게 이간질을 해?!!! 니가 그 따위로 고자질을 해!!!!??! 감히!!!!!"

"할머니가 통장 찾으셨잖아요! 전화 하라면서요!"

"내가 돈 들어오는지만 알면 됐다고 했지 통장 갖다 달라고 했냐?!!!!! 어디서 고자질을 하고, 어디서 이간질을 해!!!!!!"

"그러면 할머니가 직접 작은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통장 니가 갖고 있냐? 거기 돈 들어오냐?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왜 매번 저를 잡으세요? 통장을 갖다 드린다 해도 됐다. 그럼 안갖다드리면 통장 어딨냐? 저보고 어쩌라고요!! 작은 아버지, 어머니가 할머니 통장으로 집을 사셨겠어요, 차를 사셨겠어요? 다 할머니 병원비로, 약값으로 내고, 그마저도 모자라서 보태서 내시고, 용돈 드리고 하는데 도대체 왜, 뭐가 그렇게 화가 나시는데요?"

"걔네가 언제 나 용돈을 챙겨 줬냐? 용돈을 줬으면 그 봉투들이 다 어디갔는데?“(할머니가 한달 전에 서랍 정리하면서 봉투를 다 버리셨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손주들이 준 용돈만을 기억하시고, 작은어머니나 내가 드린 용돈은 까맣게, 아주 까맣게 잊고 계셨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핏줄이 어쩌다 준 용돈은 기억하시는데, 매 달 챙긴 며느리들의 봉투는 잊으시니 말이다.

"작은 어머니가 할머니한테 봉투 주는 걸 내가 몇 번을 봤는데요~"

"저게 또 거짓부렁을 하네~!! 저, 저~!! 니 둘이 짜고서 나 바보 만들려고 작정을 했냐? 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자꾸 거짓부렁을 해!!!"

나는 억울했다. 나는 서운했다. 할머니가 치매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냥 곱게 네~ 하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를, 작은 어머니를 걔, 저거 하면서 부르는 것도 화가 났고, 고자질이네 이간질이네 몰아부치는 것도 화가났다. 나는 결국 할머니한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만 좀 하세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뭐가 그렇게 불만이세요?"

"저게 어디서 나보다도 목소리를 키워?!!! 니가 뭔데 소리를 질러!! 어디서 감히 소리를 질러!!!"

"할머니도 지르는데 왜 못질러요? 그러니까 그만 하시라구요!! 제발!!!"


가슴이 쿵쿵쿵쿵 내려앉았다 튀어올랐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쿵쿵 거리며 방으로 들어가셔서는 "지깟게 뭔데 소리를 질러?!!! 그렇게 배워먹었어?!!!!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니가~!!!! 니까짓게~!!!!!" 소리소리치며 욕하셨다. 눈물이 펑펑 솟아올랐다. 할머니의 욕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가슴마다 빨간 눈물이 배나오는 것만 같았다. 참다 못한 나는 할머니 방 문을 닫으며 말했다.

"문 닫아 드릴테니까 실컷 욕하셔요!"

할머니는 닫힌 문 뒤에서 더 큰 소리로 욕을 하셨다. 나는 베란다로 피해버렸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순간, 방 안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나는 가슴을 쳤다. 이 바보야..... 아이구, 이 바보야........

아이는 다 들었을게다. 할머니가 엄마를 욕하고, 엄마가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는 것을, 아이는 다 듣고 있었을 게다. 조금만 참지..... 조금만 더 참지....... 아이를 향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나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먼저 진정을 하자. 진정을 한 후에 아이에게 잘 이야기 하자. 사춘기이긴 하지만, 속이 좁은 아이는 아니니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도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몇 시쯤 오냐고 물었다. 8시쯤 올 수 있다는 대답이 왔다. 나의 목소리가 이상함을 감지한 신랑이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할머니와 크게 한 판 했다고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가서 할머니한테 한 소리 해줄게."

할머니를 내게 맡긴 신랑의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니, 할머니한테 한 소리는 내가 했으니까, 자기는 이따 오면 할머니 좀 다독거려 드려."

40년도 넘게 어린 손주며느리가 바락바락 대들었으니 할머니 속이 속이 아닐게다. 나야 작은 어머니나 신랑이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을테니 어찌보면 참 안된 게 사실이었다. 할머니가, 할머니의 치매가 닷새 전 대화를 잊게 했듯이 이번 일도 까맣게 지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제발......


어느덧 할머니의 방 안도 조용해졌다. 작은 어머니와 통화하며 나의 마음도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다.

이제 할머니와 잘 풀고, 아이에게 잘 이야기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나는 생각했다.

더 큰 폭풍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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