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연 Oct 22. 2023

미친년, 망할년, 쳐죽일년

9

간혹 나는 검색을 해 보곤 했다. 검색어는 #치매 #치매대화법 #치매환자케어 뭐 이런 것들이었다. 네이버에서 치매에 관련된 블로그들을 찾아서 보고, 유튜브에서 치매에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서 보았다. 브런치에서 치매를 소재로 한 글들을 읽어보고, 인스타그램에서 치매라는 해시테크가 달린 게시물들을 찾아서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글과 영상들이 있어 한 번 놀라웠고, 그 많은 글과 영상에 치매 가족과 보호자를 위로하는 것들은 많지 않음에 두번 놀라웠고, 게시되는 사연들이 하나같이 감동적이어서 세번 놀라웠다.

나는 궁금했다.

그 글을 쓰고, 그 영상을 찍고, 그 만화를 그린 모든 치매인의 가족이나 전문가들은 정말 항상, 매번, 언제나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과 더없이 넓은 이해와 무한히 넘치는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시할머니는 대소변을 벽에 바르시지도, 수시로 밥을 안 준다며 소리를 지르시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에도 열두번 가슴이 터질듯 답답했고, 하루에도 열두번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했다. 마음으로 열두번 소리를 지르고, 머리로 열두번 도망을 갔다.


2023년 설 즈음 할머니의 치매는 조금 더 진행이 되었다. 원래도 세상 좋은 게 없는 양반이었지만, 치매가 진행될수록 세상 모든 것이 맘에 안드시는 듯 했다. 주간보호센터의 선생들도 마뜩잖고, 같이 다니는 할마씨들도 미친년들이다. 전에 입원했던 병원의 간호사년들은 나를 무시하고, 간병인은 순 도둑년이다. 날 시집살이 시켰던 시누이년들은 다 개같은 년들이고, 내 귀한 손주들 버리고 이혼해 나간 며늘년은 천하에 벼락맞아 뒈질 년이다. 할머니의 레파토리는 매번 이년, 저년, 그년을 돌고 돌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할머니와 앉아 이야기를 좀 나누려 하면 내가 아는 사람부터 내가 모르는 사람까지 누구 하나 좋은 사람이 없이 다 개년이고 쌍년이었다. 심지어는 TV 속 아나운서, 개그우먼, 탤런트는 물론 아역배우까지도 무슨무슨 년이 된다. 정말 신기한 건, 할머니의 욕 대상에 남자(이전에 가족에게 서운하게 했던 아저씨, 혹은 전에 살던 동네의 꼰대같은 영감은 제외하고)는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바람 피운 남편에게 울며불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소리치는 여자를 보고 할머니는 욕하셨다.

"저런저런 미친년. 저렇게 기집년이 싸나우니까 남자가 바람을 피우지~"

재연 드라마에서 의처증 남편이 속옷 빨래를 너는 아내를 때리며 남자 어디다 숨겼냐고 소리를 지르면,

"저 년이 의심받게 행동을 했어."

시골 여기저기를 다니며 마을 어르신들과 동네 소개를 하는 발랄한 리포터를 보면,

"기집년 드럽게 시끄럽네."

할머니 좋아하시는 트로트 프로그램에서 여가수가 남가수보다 점수가 더 잘 나오면,

"에라이~ 사기다 사기! 저 년 노래 하나 들을 거 없는데 어떻게 점수가 더 잘나와?"

그 프로에 어린 여자아이 가수가 어른 가수들과 어울려 응원하고 춤추면,

"쪼끄만 년이 저, 저, 잘난 척은 드럽게 하네~ 아유~ 꼴보기 시려!"

못생긴 걸로 유명한 어느 개그맨이 가족들과 TV에 나오면,

"여편네는 뭐 볼 거 하나 없구만. 애들이 아빠 닮아 인물이 괜찮네."

여자 MC는 따발따발 잘났다고 씨부리고, 여자 예능인은 웃기지도 않는 게 저 지랄을 하고 앉았고, 여자 의사나 박사는 뭘 안다고 떠들고 자빠졌고...... 할머니의 머릿 속엔 온통 년, 년, 년, 년들 투성이었다.

그게 힘들었다. 부정적인 생각들도 힘들고,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도 힘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전염되고, 싫어하는 마음은 쉽게 지치게 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못됐고, 세상 누구보다 내가 불쌍하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아프다는 할머니와의 대화에 나는 진이 빠지고 또 빠졌다.

세상 즐겁고, 좋은 게 좋은 나같은 사람도 무한 반복 부정의 늪에선 도리가 없다. 나는 조금씩 입을 다물었다. 혹여나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좋은 대답이 나올만 한 질문을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해가 반짝 떠 날이 따뜻해졌으니 날씨 이야기를 해볼까?

"늬미~ 며칠을 추워 죽겠더니 오늘은 또 더워 죽겠고 이 지랄이야~"


할머니가 좋아하는 게장이네~

"이거 누가 해왔냐? 산거냐? 입이 쓴 게 영 먹을 게 없다!"


오늘 새옷 입으셨네~ 예쁘다고 칭찬해드려야지~

"센터에 내 옆에 앉은 할매가 분홍색 옷을 입고 왔는데 이쁘더라. 옘병, 이건 소매가 왜이렇게 길어?"


어떤식으로 말을 시작해도 끝은 항상 늬믜고 옘병이었다. 그게 정말 힘들었다.

작은 어머니께는 내 욕을, 내게는 작은 어머니 욕을. 치매 이전부터도 그러셨지만, 치매가 시작되고는 그 또한 수위가 조금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응대할까? 저번 주에 화를 낸 내용을 이번 주에 똑같이 또 화를 내시고, 어제도 똑같이 화를 내시고, 오늘도 똑같이 화를 내시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달래드려야 하는걸까?


"치매이신 분들에겐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치매이신 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예쁘게 말해주세요."

"치매이신 분들이 무안하지 않도록 조심히 말해주세요."


어디에도 보호자의 마음을 보호해주는 내용은 없었다. 보호자의 상처를 들여다봐주는 내용은 없었다.

나도 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그들이 우선적으로 보호 받는 것이 마땅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을 가장 가까이서 케어하고 생활하는 보호자들은 단지 조금 더 건강하단 이유로 모든 책임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보호자도 환자에게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보호자도 환자에게 화가 날 수 있고, 보호자도 환자에게서 보호받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환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환자에게 푸는 것은 당연히 안될 일이다. 그렇다면 환자로부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방법, 무한 쳇바퀴같은 간병생활에서 보호자의 정신과 마음을 보호받는 방법, 환자의 증상이 나빠질 때 마다 족쇠처럼 줄줄이 매달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방법 같은 것을 누가 좀 알려줬음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보호자,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가끔은 화를 내도 괜찮다고, 너의 마음도 소중하다고...... 그러려면 이러이렇게 해보라고, 저러저렇게 해보라고, 그러그렇게 해보라고.


시종일관 욕을 하시고, 하루종일 투덜대시고, 매일매일 화를 내시는 우리 할머니같은 치매어르신께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할머니도 나도 상처를 덜 받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누가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


내가 본 많은 사연들 중 대부분은 어떻게 그렇게 감동으로 끝나는 것일까? 나를 잊은 치매 어머니가 사탕 한 알을 건네며, "새댁도 먹어요. 맛있어요."하는 순간은 내게 없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도 차려진 밥상 앞에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는 순간은 내게 없었다. 대소변에 푹 쩔은 기저귀를 안벗겠다며 고집을 피우다가도 간신히 씻겨 보송한 새옷을 입혀드리면 "아주마이, 고마워요~" 하는 순간은 내게 없었다.

내게는 아직 자식들을 잊지 않으신, 아직 돌아서면 배고프다 소리지르지 않으시는, 혼자서 화장실을 이용하실 수 있으신 너무나도 감사한 할머니가 계실 뿐이었다. 감동의 포인트를 기대하기엔 아직 이른걸까? 그저 아직 우리를 기억하시고, 혼자서 거동하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애써 모른 척 하고 "내가 상처받은 게 잘못이야." "내가 듣고만 있지 못한 게 잘못이야."하며 자책을 반복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답을 얻고자 찾아본 것들에 오히려 물음표만 더할 뿐이었다.


나는 검색을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좀 알려줬음 좋겠다.

누가 좀 가르쳐줬음 좋겠다.

누가 좀,

안아줬음 정말 좋겠다.


이전 08화 선생님, 왜 제게 죄책감을 더해주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