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월화수목금, 그는 아침저녁 꼬박꼬박 아내가 차려주는 백반 정식을 먹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토요일에는 일방적 수용이 아니라 취사 선택 하고 싶다. 그렇다면 가능한 분식이어야 한다. 머릿속으로 아내가 결정할 수 있는 폭을 최대한 좁혔다. 그리고 물었다.
“점심 뭘로 할 거야? 국수? 우동? 짜장면?”
“라면이 두 개 있는데 그냥 라면으로 하지... 아침밥도 남았고.”
아내가 너무 수월하게 대답한다.
입이 네 갠데, 고작 라면 두 개에 식은 밥이라니! 면도 아니고 밥도 아닌 부자연스러운 조합. 게다가 꼴랑 네 식구가 밥과 면으로 갈라지다니 이건 아니다 싶다. 그는 본심을 드러내 보였다.
“그냥 다 같이 칼국수로 하자”
그가 그렇게 말을 하니, 그의 아내는 갑자기 입을 닫고 야구 감독처럼 수신호를 보냈다. 아내는 검지 손가락을 세워 제 입술에 댔다. 입 닫아라는 뜻이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아들 방을 가리켰다. 아들이 우리 대화를 다 듣고 있다는 신호. 마지막으로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우리 아들이 칼국수를 싫어해요.
허허 참! 기가 차서! 그는 약이 올랐다. 토요일 식사 메뉴 선택권은 내가 우선이지 왜 아들놈인가! 안 그래도 오전 내내 아들놈은 제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어서 못마땅하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일방적으로 아들 편에 섰다. 그는 배알이 꼬였다.
“아이고야, 상전이 따로 있었네.”
방에 있던 눈치 빠른 아들이 그 소리를 듣고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저는 괜찮아요, 칼국수 먹어요.”
그러고는 제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사러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모자는 칼국수가 아니라 우동을 사 왔다. 면을 좋아하는 그의 입장과 칼국수를 싫어하는 아들 입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아내는 오늘도 그와 아들 사이에서 중용을 지켰다. 우동으로!
아내와 아들한테 조금 섭섭했지만 우동은 변치 않고 맛있었다. 그래서 홀딱 두 그릇 비웠다. 배가 부르니까 마음도 너그러워졌다. 그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아내가 이렇게 냉정한 중립 일리가 없어. 그는 우동의 힘을 빌어서, 아까 아내가 보낸 현란한 수신호를 재해석 해보았다.
그러니까 아내는 제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갔다 대고, 아들 방을 가리키고 나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그는 오랜 동안 함께 살아온 이력과 표현 방식과 상황을 조합하여 이렇게 재해석했다.
“쉿, 조용! 이번에는 참으세요. 방에 있는 아들이 칼국수를 싫어하는 걸 알잖아요. 아들은 착하니까 아빠가 원하면 반대하지 못해요. 자기가 싫어하는 칼국수를 억지로 먹으려고 할 거예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까 남자답게 아무거나 다 잘 드시는 당신이 양보하세요. 그럴 수 있죠?”
그 말이 그 말인데 말투를 부드럽게 고쳐 되뇌어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는 아내 말대로 칼국수 대신 드신 우동을 진심으로 수용했다. 그러고 보니 뭔가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애매한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이런 날에는 재즈풍의 블루스 음악을 들어야 한다. 그는 며칠 전부터 글 하나를 쓰려고 수십 번 들었던 블루스 연주곡 '오방 블루스'를 켰다. 꽁지 떨어진 매처럼 풀 죽어 있던 기운이 보일 듯 말 듯 발가락 장단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