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오주석 선생님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이란 책에 푹 빠졌다. 몰입에 필요한 지식은 부족했지만 선생님이 전하시는 한국의 옛 그림에 관해 깊은 의미와 풍부한 표현, 기법들에 경외로움을 갖게 됐다.
그중에서도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눈길이 자주 갔다. <송하맹호도> 소나무 밑 호랑이를 그린 그림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낸 터럭 표현이 예술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때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직접 김홍도의 그림을 보러 가자!' 어떤 그림이든 상관없었지만 <송하맹호도>를 볼 수 있다면 최고의 성취다.
김흥도 그림을 보기 위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단원의 고향인 '안산'이었다. 실제 단원 김홍도 미술관이 안산에 있기 때문에 방문했다. 하지만 원하는 작품은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은 용인시 '호암미술관'이었다. 가는 길이 대중교통으로는 참 어려운 길이었지만 내 작은 행복 하나를 위해 거리낌 없이 발을 내디뎠다.
호암미술관은 넓은 부지에 큼지막한 건물들과 멋진 작은 연못과 경치가 좋았다. 그러나 역시나 김홍도 그림을 소장하고는 있지만 전시는 하지 않았다.
꼼꼼하게 알아봤다면 가지 않아도 됐지만 뭐 어때? 내가 목표로 한 일에 대해 때로는 세밀한 계획보다 실행력을 발휘할 뿐이다.
세 번째는 방문도 못해보고 끝이 났다. 삼성의 '리움 미술관'에도 김홍도의 작품이 소장돼있지만 전시를 기획하지 않는 이상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그림 한 점 볼 수 없었지만 내게 목표 삼은 하나의 일을 위해 고군분투, 최선을 다한 일이었다. 그때가 내게 작은 행복을 주기 위한 일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2022년 7월 30일, 잊고 지냈던 내 작은 행복을 찾은 일이 생기게 됐다.
내 글을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런데이란 앱을 통해 달리기를 하고 있고 이번 7월 30일에는 비대면 마라톤에 참가하게 됐다.
비대면이지만 마라톤을 마친 뒤 근처 행사장을 방문하면 특별 선물과 음료를 제공해 주는 재밌는 마라톤이다. 그런데 어디서 하나? 바로 '서울 신림'에서였다.
나는 광주광역시에 살고 비대면 달리기라는데 꼭 서울에 가야 하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만 보고 싶었을 뿐이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달리기를 위해 모이는지 그 분위기를 알고 싶었다.
7월 30일 마라톤 당일, 30분 전부터 런데이 앱을 통해 참가자 등록 및 레이스 대기를 해야 했다. 주의사항으로는 휴대폰의 배터리 충전을 잘 해두는 것.
이유라면 참가자를 등록한 뒤 30분 동안 앱을 켜둔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 전원을 끄더라도 어플은 켜져 있으니 대기가 풀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뜨겁게 시원하게 놀RUN>은 서울 신림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참고로 참가는 두 가지로 나눠져 있었다. '기본 참가'와 '굿즈 참가'였다. 둘의 참가비도 다르고 말 그대로 굿즈 안 받는 것과 받는 것의 차이다.
대신 굿즈를 선택한 경우 신림 행사장에 마라톤을 마친 후 특별 이벤트 참여와 셀렉스 단백질, 커피 음료 등등이 준비돼있다고 한다.
신림에서 처음으로 달리는 시간, 평범한 일상이지만 광주가 아닌 낯선 곳에서로부터 달리기라는 게 내게는 특별한 날로 받아들여졌다.
아침 7시 40분인데도 도림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 중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달리기는 사람 등등 여러 목적과 방법이 달랐다.
햇빛은 벌써부터 뜨거웠고 하필이면 이날이 가장 더운 날씨였다고 한다.(폭염주의보였다...)
힙색을 챙기지 않아 휴대폰을 손에 들고뛰어야 했다. 생각보다 불편했고 어깨에도 좋지 못한 자극을 주게 됐다. 달리기 때에는 힙색은 무조건 필수라는 걸 느꼈다.
달리는 내내 아직도 남아 있는 오른쪽 골반 통증이 걱정됐다. 다행히 다리가 바깥으로 벌어지지 않게 그리고 케이던스를 높이려고 노력하자 뛰기에 충분한 컨디션이었다.
*케이던스 : 1분 동안 발이 지면에 닿는 횟수
최종 기록은 16'12"로 지난번 18'보다 2분을 단축한 시간이다. 다리 상태에 비해 속도가 빠르게 나온 것에 대해 지속적인 근력과 체력이 뒷받침 됐다는 걸 체감했다.
성별 전체 124명이 3km를 내달렸고 전체 순위 10위, 남자 중에서는 7위, 30대로는 3위를 달성했다. 별다른 순위를 생각하지 않고 뛰었지만 재미난 기록이라 생각했다.
랭킹과 결과를 확인해 보니 1등이 12'분대에 들어왔다. 적어도 1km를 4분대에 들어온 격이다. 거의 전력 질주와 다를 바 없는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나는 아직 5분 대가 적정 수준이다. 그걸 지키며 속도를 올릴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이번 마라톤 참가는 3km에만 총 115명, 아까 전 124명 중에서 참가 등록을 안 한 사람을 뺀 숫자인 것 같다.
남자 중에서는 내가 가장 첫 번째로 행사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카페 신림은 1~4층 건물로 1층에서는 참가 확인과 증정품, 카페 음료를 받을 수 있었다.
2층에서는 포토존 이벤트로 SNS에 촬영한 사진을 업로드하면 두 가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3층은 SNS 확인 및 선물 증정, 러닝 상담과 스트레칭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 4층은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편히 음료를 마시며 쉬는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아쉽게도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그건 갑자기 찾아온 소심한 성격 탓이었다. 휴우... 내가 광주에서 서울까지 찾아온 이유가 런데이팀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인데 제대로 말도 못 걸고 사진도 못 찍은 게 한이었다.
어색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촬영해 주시는 담당자님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기까지 하며 찍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나보다 열정 넘치는 촬영이었다고 확신한다.
내 서브 계정인 @simsindan_run에 드디어 마라톤 대회 참가 하이라이트를 생성했다. 프로필에도 3km 완주 시간대를 기록했다.
빠르게 바뀔 기록이지만 이날의 순간을 한동안 유지하고픈 생각이다. 나날이 더 좋은 기록을 쌓아야지. 나는 할 수 있고 나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확신한다.
사실 처음 마라톤 신청 후에 고작 3km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서울까지 와서 달리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작은 km로 행사장에 가도 괜찮을 걸까?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이렇게 고쳐먹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잖아.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보자. 서울에서 3km 달리고 행사장에 들어가 보자"라고
결국 고민의 결과 따위는 의미 없다. 행사장에 들어가니 몇 킬로미터를 달렸든 간에 모두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쳐주더라. 어색했지만 그들 덕분에 '다음'이라는 목표가 생기기까지 했다.
정말 행복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고 완주라는 성과까지 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서울에 올라왔고 행사장에도 다녀왔고 3km 시간 단축과 완주까지 했다.
비용적인 면으로는 비효율적인 소비였다. 그렇지만 내가 만족했고 충분했다. 단 하나의 작은 행복이라도 날 위한 것이기에 이런 소비는 좋다고 생각한다.
2017년 이후 거의 5년 만이다. 내게 이런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한 게. 이제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신경도 쓸 필요가 없다.
나는 계속해서 이 행동과 태도, 마음을 유지한 채 살아가려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날 위한 시간은 꼭 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 10km씩은 무조건 달린 것처럼 나 또한 달리기를 꾸준히 해낼 생각이다. 다시는 남에게 휘둘려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난 지금부터 굉장한 사람이 될 것이다. 많은 걸 이루고 해내고, 누구보다 낭중지추가 될 사람이라 확신한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충분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두고 보라.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