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s of Whom : Season 1 Ep 1.
나의 이면을 기록하는 시간.
스스로 돌보지 못했던 나의 조각들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Season 1 Ep 1.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
: 한기웅, 게임프로듀서 편
제가 여섯 살 때였을 거예요. 제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부왕부왕 하면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기억이 나요. 되게 높은 지대에 살았었는데, 밑이 고가도로였어요. 바퀴가 멈추질 않아서 저는 계속 고가도로로 떨어지고 있고, 형은 울면서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왔어요. 나중에 동네 어르신이 저를 발견해서 살려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형은 저를 되게 아들처럼 보호해줬어요. 아버지는 외국에 계셔서 일 년에 일주일밖에 집에 안 들어오셨거든요. 아버지라고 부를 만한 남자 어른이 형밖에 없었습니다. 제게는 정말 형이 아버지였어요.
한 오 년 전쯤인가. 형이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갑자기 피곤하다고 낮잠을 자더라고요.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몇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질 않았어요. 깨워도 깨어나질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신장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던 거예요. 평생 아버지 같던 형이, 이제는 내가 보호해줘야 할 사람이 되었어요. 1982년의 형과 2013년의 형. 형을 볼 때면 항상 두 모습이 같이 서 있습니다.
다음 시리즈에서 공주는 또다시 납치됩니다. 마리오는 다시 공주를 구하러 가죠.
제가 어릴 때부터 게임을 되게 좋아했어요. 게임마다 다 다른 스토리와 주인공이 있지만, 결국엔 다 악당이 세상을 어지럽히면 그 어지럽혀진 세상을 정리해 나가는 흐름이거든요. 슈퍼마리오를 보면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피치 공주를 쿠파라는 악당이 잡아가고, 마리오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계속 뛰어다니죠. 한참을 뛰어다니며 쿠파를 이기고 공주를 구해 게임을 클리어하면, 다음 시리즈에서 공주는 또다시 납치됩니다. 마리오는 다시 공주를 구하러 가죠.
20대 때 전 굉장히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갔어요. 아버지가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게임기들까지 다 압류당했습니다. 부모님은 누가 찾거든 모른다고 하라시며 몇달 간 자리를 비우시고, 그 자리엔 빚쟁이들과 빨간 딱지들이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변화를 전혀 소화하지 못했고, 체한 듯 울컥울컥 올라오는 부정적인 마음들에 힘들어했습니다.
‘내 인생도 게임처럼 긍정적인 결과가 정해져 있다’란 걸 믿게 됐어요.
여느 날처럼 게임을 하다가, 불현듯 인생도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클리어 하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이죠. 다만 확실한 건, 엔딩에 다다라선 주인공이 역경을 헤치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겁니다. 제가 괴짜일지는 모르겠지만, 몇십 년 넘게 게임을 하면서 ‘내 인생도 게임처럼 긍정적인 결과가 정해져 있다’란 걸 믿게 됐어요.
경제적 궁핍, 인간관계의 어려움. 내게 닥친 암울한 상황을 하나의 게임처럼 받아들이고 나니까 그제야 문제들이 소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과정이 모두 즐거웠다고 할 순 없지만, ‘stage clear - 이 모든 걸 극복했음’이라는 엔딩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으로 찌그러진 저를 두드려 펴 온 거죠. 게임을 하듯, 자잘한 성취의 반복과 결과에 대한 믿음이 하루를 살아내게 한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Seoson 1 Ep 1.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
: 한기웅, 게임프로듀서 편
옆에서 찍은 증명사진 마냥 살짝 비껴본
누군가의 모습을 그가 있는 장면과 함께 기록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기록을 모아 이번 겨울에 책으로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와 말이 이 곳에 잠시 머무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 겨울
*인터뷰는 이홍근, 위은혜, 류지영, 류송이 작가가 함께 편집하고 내용을 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