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팀장 시절
입사 3년 차, 난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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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 남자 하나. 이렇게 4명이 한 팀이 되었다. 물론 그전에 몇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후임 중 임팩트 있는 녀석이 있었는데 입사 첫날부터 꾸준히 업무시간에 웹툰을 보더라.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온보딩에만 시간을 투자했는데 시종일관 웹툰을 보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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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해 내가 한마디 했다. “ㅇㅇ씨!! 지금 뭐 봐요? 그게 그렇게 재밌어요?” 그때 날아온 답변이 지금도 생생하다. ”엇 팀장님 이 웹툰 모르세요? 진짜 재밌어요~ 꼭 봐보세요 ㅋㅋ”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전의를 상실한다는 느낌이 이런걸까. 난 그 녀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사업가가 된 그와 심심하지 않을 안주로 그 때를 회상하며 함께 술 한잔 하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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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한 회사에서 3년 차로 접어들 즈음, 한 클라이언트의 마케팅을 담당하던 팀원의 의사소통 실수로 계획에 없던 모바일 사이트를 무료 제작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팀원은 별다른 보고 없이 고객사와 직접 소통하며 이야기를 번복했고, 난 분노했다. 내가 화가 난 건 실수 자체가 아닌 해결 방식의 문제였다. 책임감을 앞세워 절차를 무시하고 혼자 움직이는 팀원을 마주한 고객사가 가만있을리 있나.. 조직에서 선임과 후임이 존재하는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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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화를 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늘 밝고, 쾌활하고, 망가져도 나를 통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간혹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문제는 어느 순간 난 항상 유쾌한 사람이어야 하고, 화를 내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조직 생활에도 적용되었고, 그래서 비교적 포용 범위가 넓은 편이었는데 임계치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마비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주변에 불편한 기류를 주는 것과 업무가 마비되는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이것 또한 나를 갉아먹는 꼴이라 방법을 찾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지금은 나름의 방법을 찾아 잘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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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팀장의 행운이라고 할까. 신규 클라이언트가 점점 늘어나고, 팀 매출도 가장 우수했다. 충원을 해야 했고, 내가 처음으로 이력서 검토부터 면접까지 참여한 최초의 채용이었는데 대학원 졸업 후 여기가 첫 직장이라는 신입사원은 환청까지 들릴 만큼 일하는 내내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난 즐거웠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느껴져서 기특했고, 하나를 알려주면 항상 나에게 그 이상을 보여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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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입은 내가 디렉팅만 잘하면 무섭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동안 매주 1~2일씩 퇴근 후 시간을 할애하여 실무 교육을 해줬는데 내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신입들 중 노력의 양과 질이 달랐다. 참고로 그 신입사원은 현재 아이보스 교육사업을 이끄는 팀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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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직한 첫 직장에서 한동안 예스맨이었다. 안믿는 사람도 꽤 있겠지만 정말 그랬다. 팀장이 돼서도 대표님이 무언가 미션을 주면 대부분 예스를 외쳤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이상하게 못하겠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냥 어떻게든 부딪쳐 보자는 식이었는데 이게 반복될수록 죽어나는 건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이었다. 한 번은 내 바로 아래 후임이 나를 따로 불러 따끔하게 이야기하더라. "팀장님, 적당히 눈치껏 좀 하세요.. 대표님 이야기한다고 해서 제일 먼저 손들지 말고, 아무거나 다 그냥 넙죽 받아오지도 말고 좀..!!" 참았어야 했는데 후임한테 이런 소리 듣고 자존심이 상해서 한 소리 하고 말았다. "알겠어! 다음부터 진짜 안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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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미숙한 팀장으로서 가장 후회되는 게 2가지다. 첫 번째는 과잉보호. 난 내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하나 씩 올라온 과정이 모두 소중하지만, 아까웠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기 때문에 내 팀원들은 그러한 기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으면 했다. 좋은 취지로 세심하게 알려주려 노력했고, 낯선 땅을 밟을라치면 손수 첨병이 되어 길잡이가 되려 했다. 그때만 해도 난 그게 좋은 리더십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겐 또 다른 인사이트가 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박탈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때론 넘어질 때 스스로 일어나는 힘이, 지름길을 아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린 이미 모두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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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후회되는 건 팀원들에게 다양한 역량을 쌓도록 채근했던 것.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다른 역량도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내 욕심이란 걸 인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각자 잘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찾아내어 전체를 맞추는 게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고, 성향이 다르듯 각자 잘하는 걸 더 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마치 잘 팔리는 상품을 더 잘 파는 게 중요한 것과 비슷한데 그러려면 스스로를 마주하는 자기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나를 정말 잘 알고 있을까. 가장 나답게 일할 수 있는 게 어떤걸까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직장인이라면 여기에 특화된 웨이마크 진단검사를 한번 경험해보는걸 적극 추천 (오케이..자연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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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리더가 되고 싶냐, 좋은 리더가 되고 싶냐?라고 묻는 다면 난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 권위를 앞세워 팀원을 힘들게 하거나 부당한 일을 지시한 적은 없지만(아마도..?) 그렇다고 해서 미움 받을 용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불행히도 난 그 둘 사이 애매한 선상에 있었던 것 같다. 조금 재수 없고 불편하더라도.. '그래도 나중에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미움 받을 용기. 그거 정말 쉽지 않지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수 틀리면 그냥 직장 내 왕따로 가는 지름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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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직장이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주고 다니느냐, 받고 다니느냐이다. 학교는 내가 돈을 주는 대신 배움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면, 직장은 내가 월급을 받은 만큼 그 이상의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간혹 직장을 학교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배우기만 하기엔 직장이란 곳은 냉정하다. 혹시라도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 중 신입사원이 있다면 회사에선 반드시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맡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과 공부는 업무 외 시간에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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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꼰대 소리 듣는걸 각오하고 이야기하자면 첫 직장 입사 후 3~4년동안 11시 전에 귀가한 날이 거의 없었다. 월요병 따위도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너무 일이 하고 싶어 주말 중 하루는 회사 출근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미친놈 같아 보이겠지만 그냥 재밌었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몰두하며 노력할수록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는 주변일들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일이 많아 야근힐 때도 있었지만 나의 부족한 역량과 호기심을 채우는데 야근만큼 좋은 소스가 없다. 저녁까지 구내식당에서 공짜로 먹을 수 있었으니까 개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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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성장과 계단식 성장이 있었다. 신입사원 기준으로 초반 어느 지점까지는 우상향 형태를 띤 고속성장을 보이는데, 임계치에 다다르면 그때부턴 계단식 성장을 보이게 된다. 이때 우리는 보통 슬럼프, 정체기 혹은 매너리즘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도 일정 이상 수준에 도달한 경우에나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즐겁게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으로 전진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건 다른 방법이다. 제법 경력이 쌓이다보면 자꾸만 성공방정식을 찾으려하고, 관성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지금 어제는 맞았고 오늘은 틀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내가 아는걸 버리고 새로운걸 배워야 하는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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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신규 가망 고객사에서 나에게 이런저런 문의를 하다가, 내가 초임 팀장이라는 걸 알고 태도가 급변하면서 대표님과의 친분을 과시하더라. 그리고 자꾸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래서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럴 거러면 그냥 저희 대표님께 직접 요청하세요. 그래도 결국엔 저랑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대표님이 그 사람보다 나를 더 믿어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직에서 얼마나 신뢰받고, 인정받고 있는지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심리적 안전감은 조직과 개인 성장에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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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초임 팀장의 팀원 업무 분장은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업무를 줘야 하나. 이게 최선일까. 생산성이 정말 높아질까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하지만 누구든 팀장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그들 역시도 내 팀원으로는 처음이었다. 회사 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선택한 업무 분장 방식은 부끄럽지만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한 서로 간 솔직한 대화였다.
‘이건 내가 해볼 테니 나머지 것들에서 역할을 분배해보자'
'제가 전에 해왔던 거니까 그냥 그것도 제가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요‘
'해본 적 없지만 조금만 가르쳐 주시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안되면 같이 하면 되니까 그건 혼자 해보고 버거우면 이야기해줘'난 정말 운이 좋게도 이런 사람들과 일을 했었고 그들의 팀장이었다.
(속편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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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captain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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