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톨레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
이 셋 중 하나는 작동하도록 특별히 깨어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 에크하르트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얼마 전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모임에 들어가 보니 이미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이 만든 강한 응집력이 느껴졌다.
그 누구도 특별히 자극을 준 사람이 없었지만 모임에 있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피곤함이 확 몰려들었다.
이래저래 생각해 보니, 뭐, 결국 내 것이었다.
분명 모임의 사람들 모두가 새로온 사람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함께 하는 것을 환영해 주었다.
세미나라는 성격이 있기에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토론과 논의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마냥 편안하게만 느끼지 못했을까.
에크하르트톨레가 말한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 이 셋 중 하나는커녕 그중 하나도 작동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
배움에 대한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아니고(새로 변경된 지도 교수님의 부드럽지만 강한(?) 권고로 참여함.)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발현해 보고자 참여하게 된 것도 아니고(부드럽지만 강한(?) 권고에 이어 어떻게든 논문을 써서 빨리 학위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훨씬 큼)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즉 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몰려 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바로 불편함의 이유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짝꿍에게 연신 투덜이가 되어 툴툴거려 고통을 안겨주고 있고
친한 지인에게 전화해 어려움을 호소하며 부담을 주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일 수도.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
비록 세 가지 모두를 다 작동시키지 못할지라도
이 셋 중 한 가지라도 작동될 수 있도록 특별히 깨어 있기.
그중에서도 오늘의 나에게는 먼저 받아들임이 가장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소리내어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