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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누나 Sep 07. 2021

[2017.12.26] 이땅의 천사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정욱이의 호중구가 500으로 올랐다. 혈소판도 계속 1만 대였다가 이번에 처음 4만 대를 찍었다. 다만, 백혈구가 잘 올라오지 않아서 단체톡방에 백혈구 헌혈을 부탁했었는데 모르는 학부 후배가 오늘 바로 병원으로 와주었다고 한다. 정욱이가 있는 무균실은 하루 1시간, 1명만 면회가 가능하다. 무균실 면회 시간엔 가족 모두가 병원에 가지만, 엄마만 정욱이를 보러 병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신다. 그러고 나면 가족들은 흩어져 정욱이나 간호사가 병실에서 필요하다는 물품을 사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부리나케 병원을 나선다. 그 와중에 길이 엇갈렸는지 일부러 와준 그 후배를 뵙지도 못했다. 그동안 내가 사회에 불신이 많았었나. 얼굴도 모르는 분이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피를 나눠 주겠다고 병원까지 오시다니... '누구나에게 친절하라, 그 사이에 천사들이 있다'는 말에서 처럼 정말 나와 같은 곳, 같은 시간에 살고 있는 천사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이 있다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균형을 맞추며 공존해 나가는 것이라 믿고 살아왔는데 이런 고난 중에도 그만큼의 감사할 것과 감동이 있음이 신묘하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천사로 쓰일 때가 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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