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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창 Jan 01. 2018

영업도 전략이다(002)

1. LG전자에서의 첫 시작 (2)

한 번은 성질 고약하기로 유명한 대리점 사장 한 분이 내게 화를 내다 제풀에 지쳐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은 내가 매일 이리 욕을 해도 지겹지가 않나? 나도 새파란 사원 나부랭이에게 이리 잔소리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지쳐~~”

 

그러자 나는 씨익 미소를 지며 대답하였다.

“회사가 뭐 잘 한 게 있어야죠? 화내시고 욕하실만합니다. 그러니 저라도 이리 매일 와서 사장님 욕을 들어줘야죠. 제게 실컷 욕하시고 조금이나마 마음 푸시라고 욕먹으러 오는 것입니다. 하하~~”


대리점 사장은 나의 말을 듣고 덩달아 너털웃음을 토해내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신윤창 씨, 그런데 말이야. 우리 지역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그래서 TV도 소형, 냉장고도 소형이 주로 팔린다고. 그러니까 주문을 넣으려면 큰 것들로 하지 말고 작은 것들로 해줘. 그래야 나도 어떻게 하든 팔아먹을 수가 있으니....”

  

비단 대리점 한 곳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리점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의 꾸준한 방문에 대리점 사장들은 점차 화를 내는 것을 포기하고, 나중엔일개 사원인 내게 푸념 섞인 말과 함께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한 일은 그저 스트레스풀이 대상의 역할뿐이었다. 나는 내 얼굴 보기도 지긋지긋하다는 사장들에게 무엇이든 좋으니 내게 화를내시라고 하며, 담당인 내게조차 화풀이를 못하면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견디겠냐며 그들의 이야기를참고 들어 준 것뿐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뭔가 신뢰감 같은 것이 생겼다. 흔히들 영업에서 자주 말하는 마음이 통하는 관계인 라포(Rapport)가 형성된 것이다. 라포는 두 사람 상호 간에 신뢰하고 감정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의학적으로 정신치료에서 상담자와 환자 간의 관계 형성에 대하여 사용되었던 것인데, 지금은 영업에서 중요 거래처와의 관계에도 라포가 이루어졌다는 등으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라포를 중국 식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꽌시(关系)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나 물질로 청탁하기 위한 것이 아닌, 중국인들과 진정한 마음으로 맺어지는 진짜 꽌시(关系) 말이다.


드디어 나는 밀어내기가 아닌 대리점 사장들의 요청에 의한 주문서를 서서히 받아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방문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그 매장의 재고와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통계적인 수치를 통해, 시장의 특성에 따라 어느 것을 잘 파는 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인 시흥대로(금천구)를 사이에 두고도, 상권의 특성에 따라 어느 곳은 냉장고를 잘 팔고, 어느 곳은 TV를 잘 파는 식이었다. 나는 내가 밀어낸 제품이 재고로 쌓이면, 빠르게 이를 대리점 간에 재고 이동을 시켜주어서 상당 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며, 어쩔 수 없이 제품을 밀어내야 하더라도, 점차 대리점의 특성에 맞게 제품을 선택하여 재고 회전율을 높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나는 그 시기 놀라울 정도로 대리점에서 제품 인수거부를 하지 않는 영업사원으로도 인정받게 되었다. 사실 거기에는 나만의 또 다른 노력이 있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당시 양재동에 있었던 물류센터를 방문해서, 물류 담당자와 관계를 매우 돈독히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하며, 음료수 한 박스라도 사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밀어낸 것을 바로 배송하지 말고 내가 별도로 요청할 때 배송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 마디로 본사 물류창고를 나의 창고처럼 활용한 것이다. 


부피가 큰 가전제품의 경우, 대리점에서 재고가 증가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창고 공간의 부족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대리점에서 물건을 받고 싶어도 창고 여유 부족으로 못 받을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 내가 맡은 대리점의 매출 성장률은 계속 증가하여, 남들이 80% 목표 달성하기도 힘든 시기에, 나는 매월 100% 이상을 달성할 수가 있었다. 이는 지속적인 방문을 통해 각각의 대리점이 가지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를 파악하여 대응해 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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