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위가 약했던 저는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할 때마다 부모님이 내밀던 작은 갈색 병을 기억합니다. 뚜껑을 열면 특유의 알싸한 향이 올라왔고, 한 모금 삼키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당연한 듯 곁에 있었던 약이, 단순한 소화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 약이 한때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한 세기 전, 조선의 거리에는 신기한 서양 약품을 파는 약장수들이 있었습니다. 한약이 익숙했던 시절, 작은 병에 담긴 약이 급체나 배탈에 즉각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 약을 만든 이는 한 기업의 창립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약을 팔아 얻은 수익을 독립운동에 지원하며 나라를 되찾고자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려 해도 자금이 필요했고,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품이 그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비록 약은 비쌌지만 효과가 뛰어나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활용해 독립운동가들은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창립자는 이 약의 수익을 독립운동가들에게 보내거나, 아예 박스째로 나누어주어 직접 판매하여 자금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약 한 병이 단순한 치료제가 아니라, 독립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이 약품을 둘러싼 독립운동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창립자는 자신의 회사를 임시정부와 비밀 연락을 주고받는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독립운동을 위해 조직된 대동단에 가입하여 왕족 출신의 한 인물을 상하이로 탈출시키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체포되었고, 오랜 시간 고문을 당하면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48세의 나이에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남긴 이 약품이 여전히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고,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이들이 회사를 계속 운영하며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독립운동은 총과 칼을 든 이들만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독립운동 하면 무장투쟁이나 거대한 시위를 떠올리지만, 실은 일상의 자리에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약 한 병을 팔아 그 수익을 독립운동에 보태고, 또 그 약을 구매하며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작은 행동이 모여 독립운동의 큰 물줄기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약품을 흔한 소화제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이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입니다. 한 세기 전, 이 약을 삼킨 사람들은 단순히 속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지원한다는 자부심으로 구입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것들 속에도 역사가 녹아 있으며, 그 역사는 현재의 우리를 만든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약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활명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