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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물고기라고요?

기후위기 시대, 법이 생명을 지키는 기묘한 방식

by 김형범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판결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한 법원이 "벌이 물고기다"라고 인정했기 때문인데요. 얼핏 들으면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벌은 날아다니는 곤충인데, 어떻게 물속에 사는 물고기일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판결 뒤에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곤충 보호를 둘러싼 법률 해석의 치열한 공방과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한동안 벌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캘리포니아 멸종위기종법(California Endangered Species Act)에서는 보호 대상 생물을 ‘조류, 포유류, 어류, 양서류, 파충류, 식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곤충, 특히 육상 무척추동물인 벌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벌의 개체 수가 급감하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곤충 보호가 전혀 불가능했던 건 아닙니다. 법의 빈틈은 어류(fish)에 대한 정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법에서 '어류'는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물고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류'는 법적으로 '야생 어류, 연체동물, 갑각류, 무척추동물, 양서류 또는 이들의 일부, 산란물, 알'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었습니다. 이 정의를 바탕으로 “무척추동물에 벌도 포함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법원은 결국 이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 판결이 순조롭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닙니다. 농업 단체들은 벌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면 농약 사용이나 작업 방식에 큰 제약이 생긴다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벌과 농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만큼 서로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갈등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2020년에는 벌이 어류로 볼 수 없다는 하급심 판결이 내려졌고, 이로 인해 벌은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2022년 5월, 캘리포니아 제3항소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습니다. 법원이 내린 판결의 핵심은 ‘법률적 용어로서의 어류 정의’였습니다. 어류라는 말이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물속에 사는 동물을 뜻하지만, 법적으로는 무척추동물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땅 위에서 살아가는 뒤영벌(호박벌) 역시 어류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법의 해석이 달라지자 벌은 다시 멸종위기종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생태계 보호를 위한 또 하나의 장치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벌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법이 자연을 어떻게 정의하고,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생명을 대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듭니다. 벌을 물고기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법의 언어가 현실을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지금,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법적 장치는 더욱 섬세하고 폭넓게 작동해야 합니다. 벌 한 마리의 생존이 인간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이번 판결은 다소 기묘하게 보일지라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집니다. 자연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상식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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