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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위키드: 포굿>에 열광하지 않을까?

화려한 마법의 뒤편, 씁쓸한 현실의 거울을 마주하며

by 김형범

<위키드> 1편이 스크린에 걸렸을 때,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쉬즈 대학교의 낭만, 두 마녀의 풋풋한 우정,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며 날아오르는 엘파바의 비상(飛上)은 우리에게 완벽한 판타지를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2편, <위키드: 포굿>으로 넘어가는 순간 객석의 공기는 사뭇 달라집니다. 1편에서 느꼈던 가슴 벅찬 희열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때로는 스토리를 따라가기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2편에 1편만큼 열광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는 단순히 영화적 연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위키드>가 감추고 있던 구조적 한계와, 이 이야기가 결국 도달해야만 했던 서늘한 도착점에 있습니다.


1. 음악적 카타르시스의 부재: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이야기


첫째, 1편의 엔딩이 너무나 완벽한 '정점'이었기에, 2편은 필연적으로 그보다 낮게 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닙니다. <위키드>를 관통하는 음악적 테마는 단연코 '언리미티드(Unlimited)'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금기를 넘어설 때 터져 나오는 도파민은 1편의 마지막 곡 'Defying Gravity(중력을 거슬러)'에서 폭발합니다.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 관객의 감정도 함께 최고조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미 하늘로 올라가 버린 이야기에는 더 이상의 상승 곡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2편은 비행 뒤에 남겨진 추락과 착륙, 그리고 수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중창을 부른다 해도, 이미 중력을 거슬러 버린 1편의 충격을 넘어서는 시각적,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다시 제공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즉, 2편은 시작부터 1편의 에너지와 싸워야 하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2. 장르의 급격한 전환: '관계'에서 '정치'로


둘째, 장르의 전환이 가져온 몰입도의 저하입니다. 1편은 전형적인 '학원물'이었습니다. 학교라는 좁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티격태격하는 케미스트리는 관객을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편의 무대는 비정한 '정치판'으로 옮겨갑니다. 학교는 사라지고 오즈의 통치 체제, 레지스탕스 활동, 대중 선동과 같은 무거운 소재들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두 주인공의 물리적 분리입니다. 도망자가 된 엘파바와 권력의 중심에 선 글린다는 각자의 정치적 상황을 해결하느라 함께 호흡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관객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두 사람의 상호작용이 줄어들고 복잡한 정세 설명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1편의 경쾌한 리듬을 잃고 맙니다.


3. 불편한 진실: 오즈의 마법사의 거울상(Mirror Image)


셋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대중이 기대하는 '꿈과 희망'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주인공이 고난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루는 서사에 환호합니다. 하지만 <위키드> 2편은 잔혹하리만큼 현실적입니다.


평생을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엘파바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악한 마녀(Wicked Witch)'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숨어 살아야 하고, 자신이 선하다고 믿으며 사랑받기를 원했던 글린다는 대중을 기만하는 '착한 마녀'라는 가면을 쓴 채 허수아비 권력으로 남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자신의 원래 목표와는 정반대의, 혹은 원치 않았던 삶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고전 <오즈의 마법사>가 성립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이자, 그 이야기의 '거울상'으로서 <위키드>가 짊어져야 할 숙명입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결말을, 대중적인 오락 영화로서 마냥 즐겁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입니다.


마치며


결국 <위키드: 포굿>이 1편보다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1편이 달콤한 환상과 성장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다면, 2편은 그 환상이 깨진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씁쓸한 현실의 뒷맛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웅의 비상에는 열광하지만, 영웅이 현실과 타협하거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모습에서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과 씁쓸함이야말로 <위키드>가 단순한 동화 비틀기를 넘어,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비추는 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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