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아이디어제작소 #월요일세시프로젝트
지난 주 수요일.
사랑하는 내 딸의 생일이기도 했던 그 날.
공교롭게도 계속 미뤄두었던
아버님의 대장내시경 검진을 함께 가드리게 되었다.
혈변이 조금씩 보인다고 말씀하신 게
사실 작년 어느 즈음부터였는데
그 땐 나도 광고회사에 얽매여
딸이며 남편도 챙기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막연히 어머님과 형님이 그래도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장내시경을 하지도 않으신 채
그로부터 일 년도 넘게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버님을 모시고 이것저것 간단한 검진을 했고
대장내시경 검진을 받으시는 동안 나는 그 근처 카페에서 일을 했다.
죽을 한 그릇 포장한 후
검진이 끝날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고
의사의 소견을 듣기 위해 아버님과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대장 속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었다.
기분 나쁘고도 못되게 생긴 녀석이 앉아있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일부 조직을 떼어놨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주에 보자는 말과 함께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말을 너무 심하게 아끼는 의사,
그리고 불길한 나의 예감이 찜찜하여
아버님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시는 동안
난 다시 의사 방으로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다.
- 저희 아버님, 상태가 아무래도 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많이 안 좋으신건가요?
- 실례지만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 며느리예요.
- 아까 아버님이 함께 계셔서 말씀 드리긴 좀 그랬지만...
제가 많은 환자들을 봐온 경험 상으로는...
아무래도 암일 것 같습니다. 진행도 조금 된 상태고요.
- 통증이 있다는 얘기도 없으시던데, 그럴 수도 있나요?
- 부위에 따라 아주 말기에 이르러서도
통증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뭐라 얘기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우리 아버님 어째...
의사와 얘기를 나눈 것도 모르시고 아버님은
집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 뭐, 혹 같은게 있는데. 암은 아닌 것 같아. 내가 보기엔..."
- 네... 아버님. 다음주 화요일 조직검사 한 것 알려준다 하니
그 때까진 아무 생각 마시고 푹 쉬세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과일을 사자고 우겨서
쇠고기 죽도 함께 들고 올라가
아버님 집에서 씻어 드렸다.
커다란 거봉을 한알 한알 씻고 있노라니
싱크대에 흐르는 물 소리에 묻어 울고만 싶어졌다.
그리고 결국 화요일보다 더 빠른 지난 주말.
병원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큰 병원을 하루 빨리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주말에 연락을 드린거라며.
결과는 악성 종양이라고 했다.
자기들끼리만 주고 받는 암호라도 써 놓은 듯한
진료의뢰서(소견서)와 내시경 사진들을 들고,
주말 동안 특진을 걸어놓았던 큰 병원 담당의를 찾아갔다.
직장암이라는 얘기를 담담히 건네며
정확히 몇 기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할 지 알기 위해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버님을 모시고 CT를 찍게 했고 이번 목요일은 MRI를 찍는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 정확히 몇 기인지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담당의와 얘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일에 치이고, 시간에 밀려서
이제서야 시아버님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안 좋은 소식을 내가 가장 먼저 접하게 되고나니
삶에 무엇이 중요했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이
내 앞에 행복하고 짜릿한 선물만을 안겨주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씁쓸하고 아픈 일들을 안겨줄 때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문득 무섭게 느껴진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내 삶에 중헌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이 뭣이 중헌지 깨달아가며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인생이란 바다를 현명히 노저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