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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팍 Oct 18. 2016

시간이 가져다 주는 것들

#공동아이디어제작소 #월요일세시프로젝트

지난 주 수요일.  

사랑하는  내 딸의 생일이기도 했던 그 날.  

공교롭게도 계속 미뤄두었던

아버님의 대장내시경 검진을 함께 가드리게 되었다.


혈변이 조금씩 보인다고 말씀하신  게

사실 작년 어느 즈음부터였는데

그 땐 나도 광고회사에 얽매여

딸이며 남편도 챙기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막연히 어머님과 형님이 그래도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장내시경을 하지도 않으신 채

그로부터 일 년도 넘게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버님을 모시고 이것저것 간단한 검진을 했고

대장내시경  검진을 받으시는 동안 나는 그 근처 카페에서 일을 했다.

죽을 한 그릇 포장한 후

검진이 끝날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고

의사의 소견을 듣기 위해 아버님과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대장 속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었다.  

기분 나쁘고도 못되게 생긴 녀석이 앉아있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일부 조직을 떼어놨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주에 보자는 말과 함께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말을 너무 심하게 아끼는 의사,  

그리고 불길한 나의 예감이 찜찜하여

아버님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시는 동안

난 다시 의사 방으로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다.  


-  저희 아버님, 상태가 아무래도 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많이 안 좋으신건가요?
-  실례지만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  며느리예요.  

-  아까 아버님이 함께 계셔서 말씀 드리긴 좀 그랬지만...

   제가 많은 환자들을 봐온 경험 상으로는...  

아무래도 암일 것 같습니다. 진행도 조금 된 상태고요.

-  통증이 있다는 얘기도 없으시던데,  그럴  수도 있나요?  

-  부위에 따라 아주 말기에 이르러서도

통증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뭐라 얘기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우리 아버님 어째...

의사와 얘기를 나눈  것도 모르시고 아버님은

집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  뭐,  혹 같은게 있는데.  암은 아닌  것 같아.  내가 보기엔..."

-  네...  아버님.  다음주 화요일 조직검사 한 것 알려준다 하니

   그 때까진 아무 생각 마시고 푹 쉬세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과일을 사자고 우겨서

쇠고기 죽도 함께 들고 올라가

아버님 집에서 씻어 드렸다.

커다란 거봉을 한알 한알 씻고 있노라니

싱크대에 흐르는 물 소리에 묻어 울고만 싶어졌다.  


그리고 결국 화요일보다 더 빠른 지난 주말.

병원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큰 병원을 하루 빨리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주말에 연락을 드린거라며.

결과는 악성 종양이라고 했다.  


'Malignant neoplasm of rectum

Polyp of colon, unspecified'


자기들끼리만 주고 받는 암호라도 써 놓은 듯한

진료의뢰서(소견서)와 내시경 사진들을 들고,

주말  동안 특진을 걸어놓았던 큰 병원 담당의를 찾아갔다.


직장암이라는 얘기를 담담히 건네며

정확히 몇 기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할 지 알기 위해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버님을 모시고 CT를 찍게 했고 이번 목요일은 MRI를 찍는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 정확히 몇 기인지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담당의와 얘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일에 치이고, 시간에 밀려서

이제서야 시아버님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안 좋은 소식을 내가 가장 먼저 접하게 되고나니

삶에 무엇이 중요했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이

내 앞에 행복하고 짜릿한 선물만을 안겨주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씁쓸하고 아픈 일들을 안겨줄 때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문득 무섭게 느껴진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내 삶에 중헌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이 뭣이 중헌지 깨달아가며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인생이란 바다를 현명히 노저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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