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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an 12. 2022

101,2

빛과 조형의 조화  in Jeju

뚜벅이 제주여행은 버스 시간이 늘 관건이다. 오늘은 마침 101번 급행버스가 있어 생각보다 빨리 섭지코지 근처까지 도착했다. 우선 간단한 아침을 먹기 위해 베이커리 카페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가 내민 쪽지에는 사람에 대한 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직업의식을 발휘한 아저씨가 부산에 여행 가셨을 때 보셨던 이모저모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민 미술관은 그 유명한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다. 내부에 전시된 아르누보 양식의 유리공예품도 중요하지만 건물과 설계, 전시와의 연결도 세심히 살피며 전시를 관람했다. 유민 미술관 세 번째 섹션 '명작의 방'에는 에밀 갈레의 버섯 램프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램프의 광원은 3개였고 그 각각은 청춘, 장년, 노년을 상징한다는 설명이 쓰여있었다. 원형의 공간 한가운데 위치한 작품을 빙 둘러 바라보는 동안, 내 나름대로 버섯의 일생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제일 먼저 청년이라고 생각한 버섯 램프는 셋 중 가장 크기가 작았지만, 누구보다 강렬하고 반짝이며 집중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나를 봐, 내가 여기 있어!'


라고 외치는 듯한 그 모습은 한순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오래도록 지그시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반짝였다.


두 번째 장년은 청년보다 조금 더 키가 자랐고 버섯의 갓도 넓어졌다. 강렬했던 빛은 세기를 낮추는 대신에 빛이 드리워지는 영역을 넓히고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마지막 노년은 넓게 펼친 갓으로 그 아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자신의 빛으로 스스로를 뽐내는 대신에 아래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빛으로 감싸안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전시실에서 잠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시실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며 작품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각각의 버섯은 인생의 세 단계, 즉 청춘, 장년, 노년을 상징합 니다. 첫 번째 버섯은 이제 막 피어나 힘과 활기로 충만합니다. 두 번째 버섯은 균형과 조화의 성숙미로 빛납니다. 세 번째 버섯은 지나온 시간만큼 시들어가는 모습입니다. 금속 받침대의 푸른색이 각기 다른 빛을 띠고 있는 것도 자연적 요소들의 점진적인 노화를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작품 설명에 의하면 에밀 갈레의 표현 의도와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은 정확히 반대였다. 나는 작품을 본 순간 첫눈에 낮고 은은한 조도의 활짝 핀 버섯이 노년이라 느껴졌다. 굳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아도 주변을 감싸는 아우라와 그 에너지가 마치 위대한 예술가의 마지막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밀 갈레는 비록 조형적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가장 밀도 높은 빛을 뿜어내는 그것을 노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작품을 구상할 때,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식물학을 공부하고 자연에 대한 면밀한 탐구와 관찰 안에서 그 모든 과정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의 의도와 반대된 감상을 가지게 되면서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청춘의 당당함, 갖추지 못해도 빛나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고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더욱 좋은 모양을 갖추고 내적 외적으로도 성장할 자신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이 담긴 감상을 펼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타오르는 빛이든 꺼져가는 빛이든,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이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꺼지지 않는 빛을 발산하며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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