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레미의 요양원에서
그 중에서도 가장 슬펐던 것은 그토록 따뜻한 우애로 이 모든 것을 베푼 네게,
그토록 오랜 기간 항상 나를 지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던 내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이 모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아, 내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기 힘들구나.
하지만 네가 내게 보여주었던 선량함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걸 가졌고 여전히 너를 위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 1889.4.21 -
작가노트
생폴 드 모졸 수도원의 요양소는 빈센트가 아를에서의 사건이 있은 후 스스로 입원을 희망해 찾아온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 그의 발작을 고통과 광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저는 회복과 삶에 대한 간절한 의지의 표출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스스로 요양소로 찾아간 것도, 계속해서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 것도 삶에대한 강한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빈센트는 이즈음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니가 없었다면 난 벌써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거라는 내용을 전하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다르고 삶의 이유도 다양하겠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어진 인간애가 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데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는지 알게 합니다. 물론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겠지만, 테오가 보여준 변치 않는 관심과 사랑과 지지가 그를 살게 하는 큰 이유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갑자기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주변에 이렇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또 다른 빈센트가 있진 않은지. 그는 겉으론 차갑고 멍하고 우울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선 삶의 의지와 끊임없이 싸우고,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과 믿음과 지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혹시 너무 가까이 있기에 보지 못했던 내 스스로가 빈센트는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