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절.

-그림(禪)

by 한정선

불교신자도 아니고, 절을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요즘 절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즐기며 다시 돌아갈

일상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여행을 한다.

거기에 개별적인 목적이 추가된다면,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감을 얻고자 여행을 한다.

단순한 관광보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머무르고 싶은 여행, 이런 여행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축소되거나 아예 포기되기도 한다.

절이 여행지가 된 것은 궁여지책, 내 목적과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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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목록에도 없던 절을 찾을 찾는 것은 순전히 남편 덕(?)이다.

느지막이 불교에 입문한 남편은 좌선과 불교공부에 푹 빠져, 출근 전 선방에서 두 시간 좌선하고 퇴근 후에는 내로라하는 스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겉 모양새로는 반 스님이 되어가고 있다.(금방 부처님이 될 줄 알았는데.. 역시 도의 길은 멀고 험한 듯하다.) 그러다 “지루한데 어디 좀 갈까?” 하며 내 의견을 묻는 척 이도시 저 도시를 들먹이다, 결국 유명 사찰이 있는 도시로 낙찰된다. 예를 들면, 내가 인천의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면 보문사, 전등사를 떠올리고 바로 옆의 강화 바다를 보러 가자 하고, 속초 여행에서는 낙산사를, 부여 낙화암을 보면서 고란사도 들리고, 북한산 둘레 길을 걸으며 진관사, 삼천사, 천안 성묘길엔 광덕사. 무엇이 주고, 무엇이 객인지, 순서는 뒤바뀌더라도 여행용 키트 속의 세면도구처럼 절은 언제나 여행지에 한 세트로 묶이곤 한다.

남편에게 모든 도시는 절로 통한다. 다행히 불교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국교였던 이유로, 산 좋고 물 맑은 도시와 명산엔 어김없이 유명 사찰을 남겼고, 절은 자연스럽게 관광의 일부분이 되었다.


절에 갔다고 언제나 절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절에 들어서면 보이는 단청, 처마, 문살, 대웅전, 그 외 삼성당, 공양간 등은 절의 크기나, 신축, 보수, 산세에 따른 절의 높낮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일반인의 눈에는 한옥이나 궁궐과 마찬가지로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와 달리, 주변의 나무, 정원의 꽃들, 장독대, 학인이나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 등은 조금씩 다르다.

신을 모셔놓은 곳이 아닌 사적 영역이어서인지 사람 냄새와 함께 각기 다른 취향도 엿볼 수 있어 그림의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때로는 멋있었어 그리다 그림에 건물 이름을 적기 위해 가까이 가보면 '해우소'일 때도 있다.

남편이 절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동안, 휘리릭 스케치 한 장하면 우리 여행은 각자 목적 달성, 윈윈 게임이다. ‘더 이상 뭘 바래’, 염불 대신 주문을 외운다.

한때, 뾰족한 첨탑, 둥근 돔에 매료되어 유럽의 성과 성당만 그리다 급기야 전시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했던 ‘궁(宮) 전시’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혹시 절 전시를 꿈꾸는 것은?

말 그대로 ‘어쩌다 절’ 일뿐이다.

부석사는 내가 원해서 갔던 절이다.

남편 따라 이 절, 저 절 다니다 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유흥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배흘림기둥'이 생각났고 그 기둥을 보고 싶었다.

남편은 예전에 간 적이 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부석사는 결혼초에 남편 형제들과의 나들이길에 잠시 들른 곳이었다. 내 뜻에 상관없이 따라갔거나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른 곳은 머릿속에서 금방 사라진다. 그나마 가족과 함께한 여행지중 기억에 남는 곳은 대부분 세 남자(남편, 아들들)의 사건,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가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여행지도 있지만. 아마 힘들고 아픈 기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억에 없다는 것은 무탈한 여행이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여행지는 연극무대의 1막, 2막, 3막처럼 모든 장면을 기억할 수는 없어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그리는 것, 어반 스케치는 여행지를 기억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동양 최고의 목조 건축물, 더구나 절이 이렇게 캐주얼할 수가.

단청이 없는 본당, 무량수전. 아무런 장식도, 문양도 없이 오직 나무만으로 만들어진

유려한 곡선. 옛날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처럼 친근하고 해학적이다.

비대칭, 비정상의 비틀림으로 어떻게 천년을 견뎠을까 하는 의아심도 잠시, 그 중심부의 불룩함이

무게중심이 되어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신기하다.

사람들을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기둥을 어루만지고 기대고 기원을 하고,

나는 그림을 그리며 그림 선(禪)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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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와 구례 여행 중 들른 화엄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평일이라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그 근처의 빈 숙소에 묵곤 했는데,

화엄사에서 그림도 그리고, 넓은 경내를 휘젓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더 늦기 전에 숙소를 구하려고 부랴부랴 나오는 중에 "언니, 그냥 여기서 잘래요?"후배의 말에 혹시나 하며 종무소를 찾았다.

템플 스테이(가격이 일반 숙소보다 2배나 비싸서)는 아니고, 그야말로 해는 지고, 갈길은 먼 나그네가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는 듯, 조금 애처로운 부탁에 스님은 관계자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게 해 주었고, 그 스님은 우리 뜻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흔쾌히 방으로 안내했다.

실내 화장실까지 갖춘 따뜻한 온돌방은 깨끗하니 새로 지은 방이었다.

처음에는 시골이라 절인심도 후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은 바로는 화엄사(또는 전라도 쪽 절)가 잘 재워주는 절로 유명하다고 한다.

열어놓은 방문으로 들어오는 무르익은 봄밤의 달콤한 기운, 풍경소리, 저녁 예불소리에 묻혀 세속의 온갖 소리들이 사라지고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새벽 알람에 맞춰, 옛날 대웅전이었던 고색창연한 각황전에서 새벽예불을 참배하고, 화엄사 산내 암자인 구층암 차방에서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인생 상담도 하고, 그야말로 예정에 없던 알찬 템플스테이를 했다. 약간의 성의표시를 하고 싶었던 우리는 방값 대신 각자의 이름을 쓴 등을 걸었고, 그 등은 당분간 우리의 숙박계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