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다양한 표정으로 감출 수 있는 앞모습과는 달리,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보여주기 위함의 의도가 없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들키고 마는 무방비의 뒷모습,
포장되지 않은 뒷모습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뒷모습을 묘사한 글뿐 아니라, 뒷모습만 찍는 사진작가도 있는가 하면,
요즘은 책 표지에도 뒷모습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뒷모습이 독자에게 다양한 상상을 유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는 것, 들리는 것보다 분위기나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이 더 사실적일 수 있다.
유난히 뒤태를 챙기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옷을 살 때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앞모습을 본 후, 나에게 옷을 입혀
뒷모습을 살폈다.
나 역시 비슷한 과여서, 둘이 쇼핑을 하면 이것저것 뒤집어 보다 파장을 하곤 했다.
신발 속, 가방의 안쪽, 코트의 안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쓴 물건의 보이는 부분은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반 스케치에서 사람 그리기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다.
지하철이나 카페, 그 외 기차역, 터미널 대합실, 공원, 영화관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가능하다.
내 경우에는, 일부러 장소를 찾아가기보다 일이 있을 때 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가서 스케치를 한다.
가끔 주, 객이 뒤 바뀌어서,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온 친구에게
벌써 왔냐며 타박(?)을 준 적도 있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자칫 한 마리도 못 잡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있으면 시간을 감지하지 못한다.
'얼음'이 통하지 않는 시간이 오직 내 그림에만 멈춰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처음부터 뒷모습만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림의 모든 장르에서 인물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어반 스케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현장성'이 기본정신이므로 사진으로 작업하는 여타의 인물과는 다르다.
눈앞의 먹이를 낚아채듯이, 순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특징을 캐치하고, 재빨리 그려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스케쳐들이 이구동성 외치는 철칙이 있다.
철칙 1. 그리기 시작하면 떠난다. 멀쩡히 앉아있던, 또는 서 있던 사람들이
그리다 보면 일어나든지 가버린다. 당연하게도 그들 나름의 떠나야 할 이유가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는 모델료(?)도 안 준 사람들을 대놓고 마주 보며 그릴 수는 없는 법,
슬쩍슬쩍 곁눈질로 그리지만 시선을 느끼고, 움직이거나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
(스케쳐들이 처음으로 해야 하는 과제가 이런 시선의 극복이다. 염치 불구하고 뻔뻔해져야 한다.)
철칙 2. 모델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생긴다. 전신상을 그리려고 했으나 그리는 도중,
다른 사람이나 물건들 (주로 차나 짐.)로 가려져 반신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눈치 보지 않고 그릴 수 있는 뒷모습에 집착(?)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안과 밖, 겉과 속은 편의상 정해 놓은 것이지 수학 문제의 답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뒤집힐 수도 있다. 뒤집었을 때 상황이 더 나아질 수도, 내용이 더 분명해질 수도 있다.
가끔 나는 티셔츠의 앞뒤를 돌려 입거나, 솔기가 예쁘게 박힌 옷은 뒤집어 입기도 한다.
(예전에는 지적해주는 사람이 꼭 있었는데, 요즘은 서로 바쁘고 무관심해서, 또는 취향이라 생각하는지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양 면을 입게 만든 '리버시블'스타일은 죽어라 한 면만 입게 된다.
보편적인 것, 일반적인 것, 누가 봐도 타당한 것에 숨이 막힐 때 '뒤집기'는 잠시 공기를 바꾸어준다.
뒷모습, 뒤태, 뒤집기는 말 그대로 반전 매력이다.